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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방인 Dec 01. 2023

아프면 나만 손해

할말하않, 의료서비스

내가 뉴질랜드에 터를 잡은 지도 어언 N년. 사실, 여전히 이곳에 내가 얼마나 살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 이유는 할말하않, 의료서비스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부터 꽤나 병원을 다니던 사람이다. 툭하면 허리를 삐끗해서 한의원에 종종 가서 침을 맞고, 환절기면 비염이 도져서 이비인후과, 내과를 전전하며 최소 보름 이상은 골골댔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치아가 건강하지 못한지라 치과도 참 자주 다녔고, 앞으로도 다녀야 하는 사람이다.


사실 처음 뉴질랜드행을 결심했을 때는, 어리석게도 난 이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20대 초반의 젊은 학생이 잠깐 왔다 갔기에 그 기간에 의료서비스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내가 와서 겪은 의료서비스는… 처참했다.  먼저, 뉴질랜드는 GP 등록제가 있다. General Practitioner라고 하며 쉽게 생각하면 가정의학과 같은 곳이다. 한 병원에 내 담당? 의사로 지정을 해두는데 아무나 할 수 없다. 최소 워크비자 2년 이상 소지했거나 영주권자 그리고 시민권자가 해당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병원이 GP를 만나려면 ‘예약‘을 필수로 해야 한다. 워크인이 가능한 병원이 있지만, 그건 진짜 손에 꼽을 정도다. 그리고 내가 등록한 GP의 시스템에 따라서 전부 예약제면 병원에 가기 위해 예약을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이해 안 되는 시스템 중의 하나다. 이건 뭐 GP를 만나려면 내가 아플 걸 예상해야 한다는 건가.


# 나는 여기서 지내는 동안 꽤 많이 병원을 갔었다. 늦은 밤, 별 보러 간다고 해변에서 놀다가 구덩이를 보지 못하고 넘어져서 발목을 삐끗한 바람에 다음 날 집 근처에 있는 병원을 갔다. 이 당시 나는 GP를 등록할 수 없는 학생 신분이었고, 집 앞의 그 병원은 예약 환자를 받지 않고 워크인(당일방문)으로만 환자를 접수받았는데,  아마 의사를 5분 만났나… 의사는 괜찮아 보인다면서 아프면 먹으라고 파나돌을 처방해 줬다. 심지어 파나돌도 한가득 처방해 준다.  Panadol(파나돌)은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약으로 해열 진통제이며, 뉴질랜드에서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파나돌.. 약국 가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데 난 진료비 70여 불을 지불하고 쉽게 말하면 타이레놀을 처방받았다. 결국 한동안 걷는데 불편함을 느낀 나는 찜질해 주며 자연치유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두드러기와 함께 소양증이 나타난다. 이 증상을 겪어 본 사람을 알겠지만, 온몸이 간지럽고 두드러기가 올라오면 잠을 잘 수도 없다. 수년 전에, 한국에서 뉴질랜드 올 준비를 하면서 이 스트레스와 퇴사 직전의 스트레스가 겹쳐졌고 결국 밤에 울면서 잠도 못 자고 출근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면서 치료를 받다가 2달 만에 다행히 치료를 끝내고 왔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몸서리쳐질 정도다. 몇 년 동안은 증상 없이 잘 지냈는데, 나의 시한폭탄은 터져버리고 말았다. 올 초에 취업을 하면서  이사를 갔고, 그 집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집 구경을 갔을 때 보이던 쿨해보이는 주인은 이사 들어가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화장실을 셰어 하는 옆방 플랫메이트는 내가 자꾸 싫은 소리를 하게 만들었다. 집에 편해야 하고 내 방이 제일 편해야 하는데 그 집은 내가 제일 불편한 곳이 되었다. 거기다가 취업을 한 회사 사장의 성희롱은 자존감을 깎아버리고, 일에 대한 의욕마저 떨어트렸다. 내 생활의 전반적인 부분을 담당과는 일과 집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니 내 몸은 이때다 싶었던 거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증상이 나오지 않은지라 내가 가진 비상약 중에서 항히스타민제는 없었다. 아침이 밝아오는 대로 약국을 가서 급하게 사나 사서 먹었는데 결국 그때뿐. 결국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 증상을 다 사진 찍어서 내가 GP등록한 병원에 이메일을 보냈다. 처음에 전화예약을 시도했는데, 이번주는 예약이 다 차서 시간이 없다는 답뿐이라 나는 내 상태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는 힘들겠다면서 취소 환자 나오면 올 수 있게 대기자명단에 올려주겠다고 해서 수락을 했고 이틀 만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3시간 뒤의 환자가 취소했으니 올 수 있겠냐는… 어쩌겠는가. 급한 사람이 맞춰야지. 결국 서둘러 병원을 갔고, 병원에서는 2달간 항히스타민제를 매일 먹고 상태를 두고 보자고 했다. 결국 처방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GP를 등록해 놔서 18불에 항히스타민제를 2달치를 무료로 처방받은 것뿐이다. 한국에서는 피부과 전전하며 치료받을 당시 마지막에 주사 한 방이 너무 효과가 좋았는데 여기서 주사는 정말 보기 힘든 처방이다. (주사를 살포시 GP한테 얘기했다가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그럼 그렇지. 하하)



#더 여러 일들이 있지만 마지막은 교통사고가 났을 때 일어난 일이다. 나의 부주의로 교통사고가 났었다. 차는 엔진 부분은 완전히 찌그러져버렸고, 사고 당시 충격방지로 활성화된 에어백은 그 자체가 터져버렸다. 운전석을 제외한 문과 사고 당시 차가 충돌 후 뒤로. 튕겨져 나가면서 전봇대에 들이받게 되면서 트렁크 문까지 전부 찌그러져 문을 열 수가 없었고, 그 자리에서 의심의 여지도 없이 폐차처리를 받았지만 아주 아주 다행히도 나는 큰 외상은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안전벨트로 인해 벨트 모양으로 피멍이 들었고 차가 부딪히는 충격으로 왼쪽 무릎도 피멍이 들고 살짝 까졌다. 큰 외상보다도 이런 사고는 처음이라 너무 무섭고 놀라고… 쉽게 말해 눈의 초점도 풀리고 멘털이 나갔었다. 현장에서 경찰의 간단한 조사를 받고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그 당시 내가 눈의 초점이 사라지고 멍해지니 앰뷸런스 안에서 응급구조사가 계속 말을 걸었던 것을 기억한다.) 병원에 도착 후, 간호사들이 와서 기본적인 바이탈 체크를 하고, 피검사를 하겠다고 채혈을 하는데 간호사 몇 명이 실패하다가 의사가 와서 채혈하는 와중에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와서 어디가 아프냐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눈에 보이는 부상만 말했더니 딱, 그 부분만 엑스레이를 찍었다. 놀란 마음에 사실 어디가 아픈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두통이 조금 있어서 말했더니 간호사가 약을 갖다 줬다. 병원에 들어가서 이렇게 8시간 정도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나는 채혈과 엑스레이, 두통약 처방을 받은 게 전부다. 하필 베드도 응급실의 스테이션 바로 앞이어서 멍하니 혼자 베드에 앉아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저기요 나 보여요?”를 내내 생각했다. 멘털이 나가서 생각이 안 날 수도 있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정말 아. 무. 것. 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의사는 2일 정도는 두통이 있을 수도 있으니 (파나돌) 약을 먹고, 증상이 지속되면 GP한테 가라는 전달뿐이었다. 결국 나는 뇌진탕으로 몇 달간 고생했고, GP에게 연락했지만 처방은 결국 파나돌. (아니 무슨 만병통치약이야!!!) 사실 교통사고를 계기로 내가 뉴질랜드 의료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곤 좀 더 자잘한 경험들이 있지만, 병원과 친한 사람들이라면 해외에서 사는 건 다시 한번 고려하라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안과, 피부과, 내과 등등 내가 원하는 진료과목에 맞춰서 병원을 갈 수 있지만 뉴질랜드는 무조건 GP를 통해야, GP가 레퍼런스를 써주면 전문의를 만날 수 있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그런 부분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출국한 사람이 여기서 개고생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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