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만난 친구 L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렇게 물어온다. 너 어떻게 살았니? 내가 미친년이지. 이런 대답은 더 이상 대화의 진전은 없다.라는 선전포고와 같다. 이만 대화 끝. 그리고 우리는 자러 갔다.
어쩌다 전혀 관계없는 A와 친구 L이 내 숙소에서 며칠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A는 나의 경고(?)를 잊었나 또 가족, 친구, 수십 년 전 고향집 일화로 돌아간다. 나는 내심 유연한 척하지만, 이러다 불쑥 A에게 살갑지 않은 말이 내 입에서 나갈까 조심한다. 왜 A의 저런 면이 나를 자극하는 걸까?
몇 년 전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C가 불쑥 ‘야, 너는 다른 사람이야기 좀 하지 말아.' 다른 사람? 난 가족과 친구들의 안부를 물었을 뿐인데... 그게 왜? 어때서? C가 솔로라 그런가? 나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 C는 그때 ‘너는 어떻게 살고 싶어?’ ‘우리 삶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나는 **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등 ‘우리, 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었는데, 나는 지금의 A처럼 남편이 뭐를 했네, 아이들이 어느 학교 어느 직장을 다니네, 된장찌개는 멸치 육수로 해야 하고 김장은 몇 포기나 담아야 하나 등을 이야기했으니... 친구 C가 지금의 나처럼 얼마나 짜증이 났을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친구 중 하나로 나를 분류해 놓았어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다행히 친구 C는 아직 그때의 짜증이 간간이 묻어 나오긴 하지만, 나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친구 L에게 다시 대답한다. 응 나를 방치하고 살았어. 가족, 직장, 지인 등 타인을 중심으로 살았지 뭐야. 가족이 뭘 잘 먹는지. 남편이 어디를 가는지? 자식들은 무슨 공부를 하고 결혼은 하려 하는지? 친구 누구누구는 어디서 사는지? 청소기는 어디 제품이 좋은지? 장아찌의 간장과 설탕, 식초 비율은 어찌해야 하는지? 등등. 그때는 그게 내 삶을 온통지배하고 있었어. 아마 누군가 내 머리채를 잡고 패대기쳐도, ‘저 잘살아요.’ 하며 웃었을 걸.
L은 ‘네가 감쪽같이 연기를 한 거지. 너는 늘 난 이렇게 잘 살아요.라고 온몸으로 표현했어. 그러니 누가 지금의 네 상황을 이해하겠니? 아마 남편, 딸들도 납득하기 어려울걸?’ 이라며 지금의 이도 저도 아닌 나와 가족과의 관계를 객관적 입장에서 설명한다.
그래서일까? 오래전에 성인이 된 딸이 ‘엄마, 여기 안 올 거지? 올 거야?’ 하고 천진하게 물어오는데, L의 말이 증명되기라도 한 듯하여 가슴이 철렁하다. 그런가? 진짜 내 연기가 딸들도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의 Hollywood action이었던 거야? 혹은 이 모든 상황이 나의 망상이 만든 작품인가? 너무 혼란스러워 병원을 다시 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