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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Apr 01. 2024

한기(寒氣)와 허기(虛飢)

그리고 취기(醉氣)

한기(寒氣)     

제주의 날씨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잘 생겼지만 성격은 좋지 않은 남친를 사귀는 느낌이다. 여기에서 지낸 4개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쓴 말은 ‘아, 추워~’ 일 것이다. 바람의 전조를 느끼며 하똘이와 바다를 건너왔고, 간단히 먹을 것을 사서 친구와 임대한 집에 도착할 즈음엔 이미 어둠과 함께 비와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렇게 ‘아, 추워~’로 시작한 제주살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술 더 떠서, 주위 사람들에게 추위를 전파하고 있다. ‘춥지요?’ ‘왜 이렇게 추운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은 ‘봄엔 실내가 실외보다 더 춥게 느껴져요.’ 라며 부드럽게 넘긴다, 실제로 여기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남단에 위치한 섬이며 한겨울에도 무와 배추, 브로콜리가 밭에서 그대로 월동하는 곳 그리고 한 겨울에도 여기저기 꽃을 볼 수 있는 지역이다. 대한민국의 중반부에서 살다 온 내가, 이렇게 춥다고 하는 건 뭔가 이상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평소에 입지 않던 내복을 2벌 사고, 이불 2채를 겹쳐서 덥고 지냈다.   

  

말일이 되어 공과금을 내는 날. 나는 지인들이 많이 다녀간 달의 난방비를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난방을 조금 더 높일걸. 이게 뭐라고,.. 이 정도는 가능하잖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 추위가 난방을 올려서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안다.


허기(虛飢)     

그다음으로 많이 쓴 말은 ‘아, 배고파’이리라. 보조교사가 되기 전 혼자 대충 끼니를 때울 때, 갑자기 허기가 지면 고기를 사다 먹거나, 혼자 식당을 가기도 했다. 이제 직장을 다니며 하루 한 끼는 1식 3찬의 식사를 하니 그런 욕구는 없어졌지만 배고픈 느낌, 허기는 여전하다.     


뭔가를 허겁지겁 많이 먹는 이들을 보면, 낯설었던 그런 상황이 내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먹고 나면, 내 뱃구레는 그 양을 감당하지 못해 힘들어한다. 즉 소화가 안 돼 더부룩하고 제대로 삭여 지지 않은 채 배출되곤 한다.      


이렇듯 한기와 허기는 지금의 상황을 내 몸이 반응하는 바이고, 내가 느끼는 실제 느낌이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라기보다는 낯선 이 몸의 느낌이 뭐지? 그리고 너희들 언제까지 있을래? 라며, 지내는 시간이다.      


취기(醉氣)

아이, 많이 먹지도 못하면서... 친구는 늘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좋아해도 딱 2캔(물론 큰 사이즈)이면 취기(醉氣)가 오른다. 나는 좀 많이 먹고 싶은데, 맥주는 배가 불러 많이 먹기 어려운 주종이라 상황에 따라 1캔 추가 정도이다. 물론 매일 먹으면 중독이라고 하지만, 매일 커피 2-3 잔을 마시는 것과 맥주 2-3 캔을 먹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커피는 사람을 각성시키고, 맥주는 취(醉)하게 해서 나쁜가? 건강에 나빠서?


술을 빌미로 꼭꼭 감춰두었던 본성을 드러내 주위를 피곤하게 하지 않고, 건강에 이상이 생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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