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지금 풀숲에서」 (신경숙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 中, 2011년. 문학동네)
「왼손」 (한강 소설집 노랑무늬영원 中, 2012, 문학과지성사)
아이를 제법 낳았던 때, 사정상 손이 덜 갔거나 형제들보다 뒤처진 아이를 가리켜 ‘아픈 손가락’으로 빗대어 이야기하곤 했다. 결국엔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라며 끝을 맺었지만, 그 많은 아이 중 ‘아픈 손가락’은 꼭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손은 두 개라 이 중 어느 손이 아픈 손인가?라고 물으면,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주권(主權)을 옳은 손이 가지므로 틀린 손인 왼손이 그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십여 년 전 신경숙의 글을 탐독하던 무렵, 에일리언 핸드 신드롬을 다룬 글을 만났다. 일명 외계인 손 증후군이라 불리는 이 증상은 손이 주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으로 일각에서는 뇌의 신경손상과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그가 지금 풀숲에서」(창비 2004년 여름호에 수록된 작품)
저자는 도로변 풀숲에 내동댕이쳐진 채,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그’를 통해 이야기한다. 언제부턴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아내의 왼손은 시누이의 스카프를, 남편 접시 위의 탐스러운 꽃게를 탐한다. 마트에서는 배드민턴 채와 농구공을 카트에 넣더니, 회사 일로 사흘 만에 집에 들어간 남편의 뺨을 억세게 후려친다. 그는 풀숲에 누워 여동생의 말을 생각한다. “오빠, 올케의 왼손이 사실은 오빠에게 하고 싶은 올케의 말을 대신하고 있는 거 아니야?” 아수라장이 된 집에서 아내는 왼손에게 “제발 이러지 마”라며 애원하고 있었고, 그는 깨진 꽃병으로 아내의 왼손을 내리친다. 그리고 그 밤, 아내의 왼손은 그의 목을 조른다. 그런 아내의 왼손은 친정집 두릅나무를 정겹게 쓰다듬다가도 다시 ‘그’에게 오면 발작을 일으킨다. 아내는 더는 남편을 후려치지 않기 위해, 그는 수치심과 분노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장모의 전화를 받고 아내가 있는 제천으로 향하던 중 인적이 드문 국도변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그가 지금 풀숲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아내 그리고 아내의 왼손을 이야기한다.
남편을 가차 없이 후려치는 아내의 왼손을 부러워했던 기억을 소환하는 한강의 단편소설은 「왼손」이다.
「왼손」 (문학수첩 2006년 가을호에 수록된 작품)
대부계의 이 대리는 오늘도 쳇바퀴 돌 듯 도는 샐러리맨의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상사로부터 받아야 할 질책을 과하게 받은 날, 그의 왼손은 상사를 향해 날아간다. 그동안의 성실하고 무던했던 그를 기억하는 그를 포함한 모두에게 그의 왼손은 자기를 드러내기로 결심한 듯하다. 집에 가기 위해 탔던 버스에서 왼손은 10여 년 전 대학에서 만났던 여자의 가게 앞 정류장 벨을 누른다. 그날 밤 그녀를 향해 끈질기고 대담하게 나아가던 그의 왼손은 어느 날 후배 여직원의 블라우스 앞섶에 붙은 실밥을 떼어주고, 반짝이는 은빛 새 동전을 슬쩍 와이셔츠 앞주머니에 넣는다. 왼손은 그의 말을 막으려 그의 코뼈를 가격하고, 나아가 그도 그녀도 거부하는 섹스를 하기 위해 돌진한다. 그는 결심한다. 그조차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는 그의 왼손을 처단하기로. 그를 대변하는 오른손과 왼손은 망치와 칼을 들고 두 마리 짐승같이 엎치락뒤치락하던 한순간, 그의 울부짖는 비명으로 막을 내린다.
신경숙의 왼손은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을 없애지만, 생명이 있는 한 왼손의 저항은 유효하다. '깊은 어둠 저편 웅크리고 있던 검은 짐승들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다가오는 기척이 들린다.’(「그가 지금 풀숲에서」 본문 p117)
반면 한강의 왼손은 그(스스로)의 심장에 칼을 꽂음으로 존재의 소멸을 이룬다. ‘충혈된 눈가의 끈적이는 얼룩을, 피 묻은 왼손이 어루만져 붉게 물들였다.’(「왼손」 본문 p187)
두 작가의 '왼손' 사용법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