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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Dec 23. 2024

사진 1과 사진 2

어머니의 사진 : 아이들의 사진

사진 1.     

1932년 생인 어머니는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대학을 졸업한 분이다. 서울에서 우연히 동향인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고 당시의 여성들처럼 남편을 앞세워 자기주장을 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을뿐더러 모든 집안일은 어머니에게 일임하고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셨다.      


무엇이든 손을 대면 성과를 내야 했던 어머니는, 이미지가 드러나는 사진 작업에 빠지셨다. 우리들의 사진은 물론이고 일가친척과의 경조사 및 부모님 당신들의 행적을 각각 앨범으로 정리하고, 몇몇 특별한 날의 사진은 근사하고 커다란 액자에 넣어졌다. 나이가 드시면 좀 덜 하겠지 했지만, 어머니의 사진에 대한 애착은 돌아가시기 전 몇 년의 와병 생활을 빼곤 한결같았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염하는 날, 염습실에 안 들어오시길 바랐지만 어머니는 들어오셨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어머니가 든 사진기를 밀쳤지만, 어머니는 마치 다큐멘터리 작가처럼 당신 남편의 주검을 찍었다. 나는 자식, 손주들에게 주고도 늘 넘쳐나는 어머니표 앨범에 진저리를 쳤고, 액자들은 눈에 안 띄게 창고에 처박아 두었다. 그리고 버렸다.      


그런 내가 어머니의 사진을 아쉬워했던 적이 있다.

어머니, 당신의 장례식.

내가 사는 지역으로 오시며, 주민등록증을 새로 만들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사진관에 갔다. 검은 망사옷을 입은 어머니. 예전의 어머니 같으면 그런 검은 옷을 입지 않았을 텐데, 핑크를 좋아하던 어머니는 어느새 검은 옷을 입고 당신의 영정사진이 될 수도 있는 사진을 아무렇지 않게 찍으셨다. 결국 그 사진은 영정사진이 되었고 나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어머니가 아끼던 아름다운 어머니 사진들을 걸지 못해 죄스러웠다. 어머니 가시는 길에 아름다운 당신이, 당신을 배웅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겨우 찾은 액자 하나를 어머니 제단 아래 놓았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 엄마가 이렇게 아름다우셨어요. 저 아래 사진으로 저희 엄마를 기억해 주세요.”      


사진 2.

- 돌아가신 어머니를 소환한 건, 이 글을 쓰기 위해서다.      


3년간 유치원, 어린이집 교사로 일했던 딸은 어느 날 “엄마, 내가 사진사야?”라며 울먹였고, 나는 딸이 말하고자 하는 맥락을 이해했다. 전 국민의 손에 손전화가 들려지며, 유아교육기관에서도 손전화로 부모에게 교육, 공지 사항을 알리고 소통하는 상황이 되었다. 처음에야 종이도 아끼고 업무의 번거로움을 줄이는 등의 이점이 있으리라 생각했겠지만, 결과는 교사들에게 또 하나의 일이 늘었다는 것이다. 사진 보내기, 앨범 만들기, 달력 만들기 나아가 영상편집, 릴스, 밈 등의 작업으로의 진화를 위해 교사들은 아이들을 봐야 하는 눈과 마음을 손전화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몇 년 만에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돌아온 나는 아이들과 있으면서도 늘 손전화를 사용해야 하는 교사가 아니라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걸 왜 해요? 부모님들이 원해서요. 아이들도 줄어들고, 경쟁에서 살아나려면 이렇게 해야 좋은 어린이집이란 소리 들어요. 요즘 부모들이 그렇게 멍청해요? 총량의 법칙이란 것도 모르나요? 사람이 쏟을 수 있는 애정, 시간, 에너지가 그렇게 무한대가 아니잖아요. 아이들에게 가야 할 것들이 손전화, 부모의 입맛에 맞춰 가는 게 맞나요? 부모들이 그걸 모르나요? 혹은 교사들은 슈퍼맨이길 바라나요? 낮에는 아이들 보고, 밤에는 작업하는 교사? 피곤함에 절은? 절레절레.    

  

인생의 저물녘, 삶이 바라던 바와 다르니 어머니는 뭔가를 잡으려 했던 것 같다. Image. 그렇게 어머니는 연출된 이미지를 조합하며 당신만의 방을 만드셨다.

앞으로의 뭔가가 아닌, 과거의 이미지인 사진으로.

하지만 태어나서 4~5년이 채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되돌아볼 과거가 뭐 그리 많고 중요한가? 앞으로 나아갈 아이들을 위해 과거의 이미지에 매달리지 말기를, 부모와 교사가 서로를 탓하지 말기를 바라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기를 바라며 나는 보조교사를 그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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