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마셔도 되나요?(2편)

by 그루터기

내가 모 점포에 근무 중 고객인 베테랑 간호사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치매인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고 내가 말을 꺼내자 간호사는 오랜 세월 동안 고생할 각오를 하라고 조언을 했다. 이와 비교를 하여 췌장암 사례에 관해 부연 설명을 이어갔다.

“어느 전문의가 자신이 췌장암 최종 진단을 받았어요. 그 즉시 배우자를 비롯한 자녀에게 재산 배분을 마친 후 개원 중인 병원의 셔터를 내렸습니다. 그 후 부인과 장기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제일 깔끔(?)한 병입니다.”

간호사인 내 고객은 매우 사무적이고 무표정한 말투로 마무리했다. 이런 기억이 되살아나니 공포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식자우환’이란 말이 딱 어울렸다. 어쩌면 공포감은 아는 만큼 그에 비례하여 더욱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이 평소 내 생각이었다. 이러다 보니 나는 주위 지인들에게 특정 질병에 관해 상세하게 문의하여 자문을 구하거나 검색을 하여 더 많은 부분에 관해 일부러 알아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들려오는 것만을 듣고 볼 뿐 일부러 더 많은 관련 지식을 얻으려 자진하여 나서지는 않았다.

이런 평소 내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는 좀 달랐다. 그저 유야무야 하여 넘겨버릴 수 없는 상황이 아님에 틀림이 없었다. 피하려고 해도 그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고 정면 대응이 유일한 길이었다.

검진 기관 전문의 안내로 자신들과 협력 관계인 국립 S대 병원에 최대한 이른 일정으로 정밀 검진 날짜를 예약했다. 예약 확인 문자 메시지를 받아 든 나는 벌써부터 기겁을 했다. 두 부위 모두 예약한 곳이 암병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암환자와 아직 암에 걸리지 않는 사람으로 나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이미 암환자가 된듯했다. 이 사실을 집사람에게는 물론 점포장에게도 즉시 알렸다.

비교적 걱정이 덜한 갑상선 부위는 3개월 후, 췌장 부위는 2주 후로 진료일이 잡혔다. 이러니 이후 3주간은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회사에 휴가를 신청할 수도 없었다. 근무를 그저 이어갔다. 모든 신경은 3주 후로 잡힌 검진일에 쏠렸다. 그동안 평소 좋아하는 술도 내 몸에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느라 멀리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모여 사는 고향 동창 3 총사 모임에도 나설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술자리에 일단 모이더라도 메인인 술은 입에 댈 수 없고 안주나 기타 사이드 음식만을 먹으며 그저 멀건히 이야기만을 할 수 없지는 않은가.

여기서 또 하나의 불길한 증상이 나타났다. 최근 온몸이 심하게 가려웠다.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피부과를 다녀왔다. 예전보다 내 몸의 알레르기 종류와 양이 대폭 늘어난 때문이라 했다.

평소 질병 관련하여 인터넷 검색을 별로 선호하지 않던 나로서도 이번엔 어쩔 수가 없었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췌장 쪽에 문제가 생기면 지금의 나처럼 온몸이 가렵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좀 더 깊이 있고 편안한 상담을 위해 나와 연고가 있는 피부과 전문의의 자문을 한 번 더 구했다. 하지만 속 시원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평소 자주 연락을 하는 누나가 한마디를 더 보탰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췌장암과 가려움증 알레르기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하더라.”

이러다 보니 나는 온몸이 더욱 부들부들 떨렸다.

“준서야 무슨 일이 있어? 이번 건강 검진 결과 때문이지? 어느 곳이 문제인데?”

같은 울타리 안의 고향 절친 선준이는 질문을 연속해서 쏟아냈다. 이에 나는 나중에 알려주겠노라고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밖에 응대할 수 없는 내 맘을 알 리가 없었다. 명확하게 대답을 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은 오히려 더욱 내게 궁금증이 늘어난 것 같았다. 그저 대략 넘겨버리고 다음을 기약하면 될 것이었다. 친구들은 야속하게도 계속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월요일로 예정된 검진일(외래 예약일) 직전 주말 이전이었다. 마지막 근무일인 금요일 오전이었다. 지점장은 나의 상담 부스로 직접 걸음을 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진심을 꺼내 들었다.

“다른 곳이라면 모르겠는데. 췌장 쪽이라니 어떡하지요?‘

나를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은 충분이 이해가 갔다. 그럼에도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나는 이미 월요일 하루는 휴가가 예정되어 있었다. 내가 자리를 빈 월요일 오전 전 직원 미팅 시간이었다. 나의 이런 사정을 전 직원에게 공표해 버렸다. 조직관리 차원에서 어쩌면 긴요한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의 아주 예민한 건강 정보에 관한 것이라서 그런지 나는 매우 야속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평정심을 찾으려 무던 노력을 했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출근 후 근무 시간 중은 물론 퇴근 후 내 보금자리에서도 나는 앉거나 서거나 눕기를 반복했다. 어느 자세 하나도 편하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몸은 뻣뻣해졌다. 어깨는 무거워져 온몸을 짓누르고 몸은 천근 만근이 되었다. 아빠인 내가 보기엔 두 아들은 아직도 삐약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두 아이에게 당연히 표정 관리에 최선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