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마셔도 되나요?(3편 완)

by 그루터기

드디어 오늘은 가부간 결정이 나는 심판의 날이었다. 예약된 시각보다 충분히 여유가 있게 도착한 나는 초조하게 내 차례를 기다렸다. 개인 정보를 중히 여기는 요즘 추세에 병원 측도 따랐다. 환자의 성명이나 주민번호 대신 일정 부분 암호화된 문자와 숫자로 변환이 된 접수증을 손에 쥐었다. 이것으로 진료실을 입장할 때 비로소 본인 확인을 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내 순번 앞 환자들의 진료 시간이 누적으로 밀리는 바람에 예정 시각보다 약 30분 늦게서야 교수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동안 방문하는 병원마다 눈여겨본 환자용 의자는 어느 곳이나 모두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의자는 예외 없이 등받이는 없었고 우리가 유년 시절 가끔 드나들던 빵집 의자와 유사했다. 아래 받침 부분, 즉 엉덩이를 올려놓는 부분은 좌우로 돌릴 수가 없는 구조였다. 나는 병원마다 한결같이 의자 등받이가 없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진료를 하는 의사에 비해 환자에겐 결코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 것이라 추정했다.


그저 환자라는 신분만으로도 이른바 ’을‘의 입장인데 이에 더하여 환자는 결코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없게 만들어 더욱 주눅이 들도록 하는 의도가 숨겨진 것으로 보였다. 의사의 지시나 상담 내용을 무조건 수용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도구였던 것이었다.

”현재 불편한 곳은 없나요? 췌장이란 워낙 예민한 장기이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 당장 검사는 필요하지 않고 3개월 후 CT 검사를 하십시다.”


교수는 이미 나의 검진기관 소견서와 초음파 영상 등은 일찍이 검토했음은 물론이었다. 이미 이상 증상이 았는가를 물어보는 것으로 읽혔다. 오늘은 가부간의 결정을 예상하고 병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직도 3개월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더 기다려야 하다니 마음고생을 더 이어가야 했다.

나는 거의 100일 기도 수준의 근신을 마쳤다. CT 촬영을 마친 후 드디어 결과를 보러 가는 심판의 날이 밝았다. 그런데 지난번과 달랐다. 이번엔 지정 교수가 암병동이 아닌 일반 병동으로 자리를 옮겨 외래진료를 보고 있었다. CT 촬영 결과 별 이상이 없는 것이 밝혀져 이제 나는 바야흐로 암병동에서 벗어난 것은 아닌가 하는 단순 무식한 생각도 했다. 환자 접수증 상의 A, B 표시란 것이 또 암환자와 아닌 자를 구분하는 의미가 혹시 아닐까 하는 등 별의별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목구멍으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에 나는 스스로 깜짝 놀랐다. 드디어 간호사의 호출을 받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나는 얼른 교수의 눈치부터 살폈다. 교수는 표정 관리를 아주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이른바 ’ 포커페이스‘였다. 자신의 책상 위 PC 자판을 ‘토닥토닥 토다닥’ 능숙하게 두드렸다. 이어 조회 키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눌렀다.

“예 물혹이네요. 물혹으로 밝혀졌습니다. 좀 사이즈가 크긴 한데 치료를 할 필요는 없고 1년 후에 다시 보겠습니다.”

교수는 사무적이고 무미건조한 말투로 마무리했다.

“저~~ 여쭤 볼 것이 하나 있는데요. 혹시 술은 마시면 안 되지요?”

“예 그것은 아니고 그저 한두 잔씩은 드셔도 됩니다.”


술은 마셔도 된다고 하는 의사는 흔히 볼 수 있는 경우는 아니었다. 의외였다. 운동을 열심히 하라거나 어느 음식은 삼가라는 등 구체적인 요구 사항은 전혀 없었다. 환자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모든 것은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인지 나로선 제대로 된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모든 이가 알고 있듯이 암이란 병은 본래 예방 백신이 없다. 그러다 보니 예방이 가능하지 못함은 물론 현존하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이 암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단 건강에 좋지 않다는 흡연이나 지나친 음주 등은 자제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에 적절한 운동도 곁들이는 것말고 특별히 따로 대처할 수 있는 방도는 없어 보였다.

이번 검진 결과 이상이 없고 악성이 아니라는 것이 내게 영원한 면죄부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정기적인 검진이나 체킹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중증 질병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은 인류 공통의 바람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담낭과 췌장의 물혹이 커졌네요. 이제 6개월 후에 다시 보겠습니다. 크기와 모양이 문제입니다. 아직 그리 위험한 단계는 아닙니다.”

어느덧 '밤새 훌쩍 크는 아이'가 된 것이었다.

최근 약 6개월 전의 일이었다.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의견을 내었지만 나에겐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나는 이제 6개월 내지 1년 ‘계약직 직원’으로 전락했다. 아니 ‘시한부 계약직 인생’을 이어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계약 기간 중 실적이 뒷밭침 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직자가 될 수 있었다. 이는 계약직 인생에도 똑같이 적용이 됨은 물론이었다. 중간중간 검진 결과 예후가 좋지 않을 경우엔 언제든지 내 일상생활이 종말을 고할지도 몰랐다.

그날이 온다면 나는 이제 이 한두 잔의 술도 기약이 어려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