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캐릭터가 주위에 널려 있었다. 그런데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런 행태도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은 것이 더욱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의견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상명하복’의 원리가 엄격하게 작동되는 군대 사회에선 이런 일을 관찰하기란 훨씬 수월했다. 자신의 부하는 물론 동료들로부터 공감을 받거나 칭찬을 받기는커녕 늘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당하는 등 지탄의 대상이 되는 자가 있다. 대신 자신의 직속상관이나 윗선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이들은 남보다 더 앞서가고 좋은 보직을 꿰참은 물론 승진도 이들의 차지가 되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에 동원하는 방법이나 수단이 무엇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이번 꽃동네 자원봉사 활동 프로그램에서 같은 차수에 입소했던 정 차장과 오 차장을 나는 이후 오랜 직장생활 동안 지속적으로 추적해 보았다. 봉사활동의 백미로 불리는 거동 불편 입소자들을 돕는 궂은 요양보호사 역할을 거뜬히 해냈던 정 차장은 안타깝게도 이른바 ‘비주류’의 길을 계속 걸었다. 직장 생활 말년엔 상대적으로 고령에다 근속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잦은 전보발령 등 인사상 불이익을 감당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 차장에겐 임원이란 자리는 넘사벽이었다. 화려한 꽃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저 남의 일이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이 전혀 없었다. 겨우겨우 오랜 기간 조직생활을 마무리하는 데 그쳤다.
이와 달리 이른바 토목 조경팀에 합류했던 목소리가 크고 요령의 달인이었던 오 차장은 정 차장과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오 차장은 임원 자리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혜택과 보상을 실컷 누렸음은 물론이었다.
조직 리더나 중간 관리자들은 아직도 이런 정·오 차장의 프레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양자의 실체를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알고 있음에도 각각에 합당한 대우, 평가, 보상을 해주지 않는 진정한 이유를 나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언제나 이런 궁금증이 풀릴지 요원하다. 이 프레임의 실체가 어느 쪽이든지 모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아직 모자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세상은 본래 그런 것이라고 지적을 받는다면 나는 기꺼이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꽃동네 봉사활동 훨씬 이전이었다. 내가 중참 대리로 수도권 @@@지점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노조원 준법투쟁의 일환으로 양복 정장이 아닌 간편복장으로 정시 출퇴근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 점포에 같이 근무하던 조 대리였다. 조 대리는 평소 남보다 목소리가 컸고 자신의 선명성을 남들 앞에서 늘 자랑하던 직원이었다.
조 대리를 제외한 다른 초임 책임자들은 전날 지점 내 모든 조합원들과 약속한 대로 간편복 차림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업무준비를 모두 마치고 대기 중이었다. 평소와 달리 그 시각까지 조 대리 자리는 비어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직원들 중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조 대리는 정문 철제 셔터가 올라가기 직전 객장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여기서 전혀 예기치 못한 장면이 벌어졌다.
누구보다 그렇게 투쟁 의지를 굳게 외치던 조 대리였다. 조 대리는 어제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복장 그대로였다. 오히려 양복 정장 재봉선이 눈에 띌 정도로 말끔히 다림질한 흔적이 보였다. 콤비도 아닌 검은색 싱글 양복 정장에 넥타이도 단정히 꾸미고 그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것도 늦은 시각에 맞추어 객장으로 당당히 들어선 것이었다
초임 책임자인 대리들은 물론 휘하 창구 남녀 직원 모두는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조 대리는 오랜 세월이 지나 내가 꽃동네에서 만난 오 차장의 원조로 보아도 무방했다. 조 대리에게 전날 노조원 간의 약속은 헌신짝이 되었다. 자신은 간편복 착용을 합법 투쟁 방법으로 택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미리 밝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오늘 보여준 자신의 행태가 오랜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변명이라도 듣고 싶었다. 다른 노조원들 모두는 아침 일찍부터 보기 좋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이 분명했다. 조 대리가 뒤통수를 때려준 덕분에 모든 노조원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업무 개시 전에 긴장도를 높일 수 있었다.
"선임 대리가 왜 그래? 솔선수범해야 되는 것 아니야? 다른 아래 직원들이 노조 지침에 따르겠다고 하더라도 나서서 말려야 하는 것 아니야? 앞으로 지켜볼 거야."
당일 업무 시간 중 점장은 직접 나를 호출했다. 나는 이를 나름 호된 꾸지람으로 들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설교에 가까운 경고였던 것이었다.
이런 노조원 간의 사소한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마당에 노조원이 함께 뭉쳐 회사를 상대로 무슨 투쟁을 하여 소기 목적을 달성한단 말인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일’이었다.
“누구 하고도 속 깊은 이야기는 삼가세요. 누가 프락치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인생 이모작에 나선 내게 절친이 던진 충고 한마디였다. 나는 이를 향후 좌우명으로까지 삼고 살아내야 할 처지가 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릇 진정성은 목소리 크기와 결코 절대 비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