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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Mar 11. 2024

의사의 본분과 영업마인드(1편)

                     

심원장, 나 왔네.”

물리치료는 받았어?”

아니, 오늘은 실손보험 관련 서류를 챙기러 왔어.”     

내 고교동기 심원장은 수도권의 한 도시 중심가에서 정형외과의원을 꾸려가고 있다. 내가 이곳을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40대 초반이었다. 내가 연고자가 운영하는 병원을 찾는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이다 보니 연고자인 의사를 대하기가 편한다는 데 있다. 다른 개인 병원이나 이보다 상급 병원 특히나 대학병원을 찾을 경우엔 가장 치명적인 애로가 따로 있었다.  

    

의사와 대면시간은 기껏해야 3분 내외에 그쳤다. 이러니 세세한 부분까지 물을 형편이 되지 않았고 때론 민감한 프라이버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래서 나는 부득이하게 대형병원이나 대학병원을 찾아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고교 동기 선후배 또는 대학 동문이 꾸려가는 병원을 찾기 마련이다. 

    

내가 이곳 정형외과를 처음 찾을 때부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1층 대기실 공간엔 언제나 20여 명의 최소 60대 이상의 환자들로 북적인다는 것이 가장 독특한 풍경이었다.  

    

이 노령층 환자들은 같은 정형외과 진료를 받으려고 이곳에 오긴 했지만 치료나 처치를 받는 부문은 각자 달랐다. 그럼에도 본격적인 진료를 받기 전에 물리치료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었다. 자신이 치료를 본격적으로 받기 전후로 이곳을 들어설 때마다 일단 최소한 한 번의 물리치료 코스를 거치도록 심원장은 환자들에게 권유를 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환자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노령층 환자들을 지켜볼 때마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저분들은 향후 자신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물리치료를 끊임없이 이어갈 형편으로 보였다. 물리치료란 것이 금세 효과가 나타나 병세가 즉각 호전되는 경우란 드물었다. 나는 이 물리치료부문의 진료에서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이 각각 부담하는 금액의 정확한 수치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에 딱 맞는 것으로 보였다. 이 물리치료란 것이 병원에 적지만 꾸준한 수익을 안겨줄 것이라는 점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은행의 일시 예치금을 총칭하는 용어로 LCF란 것이 있다. 이는 아예 이자가 없는 당좌예금이나 아주 낮은 금리가 적용되는 보통예금 저축 예금 등 만기가 따로 정해지지 않은 요구불 예금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LCF 자금의 평잔이 높을수록 은행에 기여하는 수익은 대단히 높다. 조달비용이 아예 없거나 매우 낮기 때문에 이를 대출 재원으로 활용하여 생기는 예대마진은 어느 정기예금 등 보다 훨씬 커지게 마련이다. 이 병원의 물리치료는 은행의 LCF예금에 딱 맞았다.   

   

선생님,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물리치료를 받고 오시랍니다.”

나는 오늘 낮 12시 정각에 만나기로 이미 심원장과 약속을 마친 후 이곳을 방금 들어섰는데 좀 황당했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나는 왼쪽 팔의 인대가 늘어나 이를 치료하기 위해 이곳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도 물리치료를 권유받은 바 있었지만 개인 일정을 이유로 완곡하게 거절한 바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를 거절하기란 좀 난처했다.  

   

이번에 내게 인대 치료를 해준 심원장은 종래와 달리 내게 의료비를 결제토록 했다. 그러면서 실손보험에서 일부를 받아낼 수 있다고 귀띔을 했다. 내가 현역 시절 수시로 병원과 약국을 드나들었다. 이때 지불한 소소한 의료비와 약제비를 실손보험으로 처리를 하지 않았다. 금액이 크지 않았고 청구절차가 간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제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은 비용은 청구가 가능하다는 정보를 나는 최근에 얻었다. 이래서 그간 미루었던 의료비와 약제비의 상당 부분을 보험사로부터 받아낼 수 있었다. 적은 금액도 모으니 제법 커졌다. 심원장이 내게 아주 좋은 팁을 알려준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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