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이젠 읍내 이발소를 통 틀어도 20여 곳이 남지 않았어요. 요즘 미장원을 더욱 많이 찾기도 해서요.” “@@면에 사신다면 혹시 박경호라고 아세요?”
“예 제1년 후배입니다.”
이곳에 들어선 후 내가 주인장과 일종의 ‘호구조사’를 마친 상태였으니 비록 면도사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더라도 나는 그대로 넘기기로 했다. 불친절한 면도사의 태도에 이어 만약 이발 후 두발 스타일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을 한번 더 찾아 머리를 다듬을 각오까지 했다.
나는 주인장과 사람 사는 이야기 등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주인장은 일찍이 13세란 어린 나이에 이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서울 용산지역에서 무려 50여 년이란 긴 세월 동안 직접 이발소를 꾸려왔다. 그 이후 낙향하여 이곳에 새로이 자리를 잡은 지도 어언 약 15년이 지났다.
주인장이 슬하에 둔 두 아들은 각각 @@면사무소와 @@군청에서 팀장으로 근무 중이었다. 큰 아들은 중사로 전역을 한 후 새로이 공무원의 길을 가고 있었다. 무릇 세상의 부모들이란 자식 사랑은 기본이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자식자랑을 하고 싶은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부모가 자식자랑을 하는 일을 결코 탓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예전과 달리 최근 젊은이들은 물론 장년을 넘어 노년층도 이발소 대신 미장원을 찾는 것이 어느덧 대세가 되었다. 내가 이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이발소는 평소에도 항상 많은 손님으로 붐볐고 특히 명절 무렵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자신의 차례가 돌아왔다. 그래서 때론 이발사 아저씨들은 끼니도 거르면서 손님을 받는 중노동에 시달렸으나 이는 즐거운 비명이기도 했다. 그런 호시절에 오랜 기간 이 업종에 몸을 담았으니 제법 돈을 모을 수가 있었다.
지금 이 이발소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대지의 평당 시세는 500만 원을 호가했다. 대지면적이 100평이니 5억으로 쉽게 계산이 되었다. 5억이면 대단히 큰돈이라고 내가 맞장구를 쳤더니 이곳은 3층 건물이니 그 가액엔 전혀 팔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을 이어갔다. 건물은 별도이고 대지 가격만 그렇다는 뜻이라고 내가 금방 내뱉은 말을 얼른 주워 담았다.
회색빛 플라스틱컵에 손잡이가 뭉뚱 하고 숱이 많은 솔로 비누거품을 만들어 손님 면도에 나서는 등 그야말로 옛날 방식을 고집하는 곳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은 스산한 느낌마저 들었다. 경사가 적지 않게 가파른 계단을 올라 조명도 없는 통로를 지나야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곳이 연상될 정도였다. 범죄단체에서 인질을 잡아 상대방과 흥정을 하는 공장의 빈터가 떠올랐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가 좀 부족했다. 시설투자에 인색했다.
오늘 찾은 이 이발소는 면도사의 손님에 대한 응대 자세나 주인장이 머리를 다루는 실력이 내 기대치엔 많이 모자랐다. 하지만 한 갑자 이상이란 긴 세월을 오로지 성실하게 묵묵히 한 우물만 판 주인장의 내공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딴 곳으로 한 눈을 팔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고 두 아들도 훌륭하게 키워냈다.
내 마음에 꼭 맞는 이발소를 새로이 찾아 단골로 만드는 일이란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다시 한번 경험했다. 이곳 고향에 자리 잡고 있는 친구들에게 다시 추천을 받아 단골 이발소의 개척에 또 나서고자 한다.
다음 날 나는 어쩌다 보니 머리 감는 일을 빠뜨렸다. 내일은 꼭 머리를 감은 후 내 두발상태를 다시 살펴보려 한다.만약에 내 성에 차지 않을 경우엔 다른 곳을 찾아 머리를 한 번 제대로 더 다듬고 싶다.조만간 예정된 고교동기 모임날엔 대전으로 나들이를 나서는 김에 단골 이발소를 들르는 것도 그중 하나의 선택지로 생각 중인 것은 물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