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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Mar 11. 2024

새로운  단골이발소 개척하기(1편)

                    

나는 오늘 늦은 점심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읍내로 나섰다. 요즘 식욕이 떨어졌고 입안이 까칠까칠 해졌다. 오랜만에 추어탕으로 한 끼를 뚝딱 해치웠다. 읍내로 향하는 길에 볼일을 몰아서 해결하고자 했다.      


나는 내 애마 하얀색 아반떼를 @@역 인근 무료주차장에 세우고 예전에 보아 두었던 역전 이발소란 간판을 찾았으나 실패했다. 아마도 이곳은 문을 닫은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검색기능을 활용하기로 했다. 여러 곳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공간을 갖춘 곳을 찾기란 만만치 않았다. 결국 돌고 돌아 @@역 길 맞은편 한 곳인 3층 건물 중 1층이 자리한 이발소로 들어섰다.   

   

이발요금은 얼마인가요?”

“15,000원입니다.”

     

내가 종래부터 좀처럼 단골을 바꾸지 못하는 것에는 몇 가지가 있다. 치과병원과 안경점이었고 이발소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최근에 두 번째 귀촌을 했다. 이 세 가지는 아무리 단골이지만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어지면 종래의 단골만 고집하기란 쉽지 않았다.    

  

서울엔 단골 미장원을 대전엔 친구가 소개해준 요금 10,000원인 옛날식 이발소가 있다. 만약 다른 일이 있어 서울이나 대전을 갈 일이 생기면 이 단골집 두 곳을 찾으면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오로지 이발을 하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는다는 것은 전혀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곳 고향에도 새로운 단골 이발소를 마련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이곳도 ‘그야먈로 옛날식 이발소였다. 고향 절친 광수에게 자신은 읍내에 자리한 공중목욕탕을 찾아 목욕과 이발을 동시에 해결한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목욕과 이발을 하는 주기가 딱 맞아떨어지기는 쉽지 않았다. 수도권에서 생활할 적엔 나도 근무지에서 가까운 목욕탕 안의 이발소를 가끔 이용하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새로운 단골 이발소를 개척하는데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것도 사실이었다. 근무지에서 가까운 @@클럽이란 가성비가 좋다는 이발소를 찾았으나 내가 선호하는 헤얼 스타일과 거리가 멀어서 당일 다시 다른 곳에서 머리를 한 번 더 다듬는 해프닝을 겪은 적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 찾은 이발소에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한 번의 이발비용을 그저 버릴 각오를 하는 것이 어느덧 내 하나의 습관으로 굳어졌다.      


면도 없이 이발만 하면 요금이 달라지나요?”
 아닙니다. 똑같이 15,000원입니다.”     


이발소 3개의 의자 중 가장 왼쪽으로 나는 안내를 받았다. 그런데 잠시 후 7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면도부터 해주겠노라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딱 잘라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아니, 코 밑과 턱 쪽에 피가 보이네요. 왜 그런 건가요?”
 손님께서 방금 말씀하셨듯이 피부가 약해서 그런가 봅니다.”   

  

면도 중엔 나는 살갗이 따끔거린다고 몇 번이나 이 면도사에게 어필을 한 후였다. 처음부터 면도를 받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던 터였다. 그랬는데 참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면도날이 무뎌졌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면도사의 실력이 모자란 탓이었는지 둘다였는 지 도무지 구분이 어려웠다. 그 정확한 원인이 무엇이었든 나는 이 면도사의 대응 태도가 도대체가 맘에 들지 않았다. 손님에게 면도로 인해 피까지 보게 했다면 사과부터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과부터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목소리의 톤을 제법 높여 호되게 나무라자 이 면도사는 그제야 옆구리 찔려 절하듯이 내게 마지못해 사과하는 시늉을 했다. 이 정도로 내가 강하게 어필을 할지는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오랜 세월 동안 금융서비스업에 종사한 나로서 도저히 용납이 되는 않는 응대 태도였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나는 당연히 자리를 박차고 이발소 문을 나섰을 것이 분명했다. 순간 그러고 싶은 생각이 굴뚝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내 고향이기도 했고 이제 나도 이 정도의 연배가 되었으니 세상 모든 일에 좀 너그러워져야 한다는 또 다른 생각이 앞섰다. 내가 화장지나 연고약을 찾은 후에야 이를 대령하는 주인장의 태도도 내 마음에 들 리가 만무했다. 그럼에도 순을 코 앞에 두었다는 주인장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갖추는 것이 옳다는 판단도 이에 한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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