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랜 기간 이어가던 사법시험 수험생 시절을 마감한 후 밥벌이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금융기관 한 곳에서 직장생활을 정년으로 마감했다. 인생 2 모작을 위해 최근 @@자격시험을 준비에 매진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런 날벼락을 맞았다. 명색이 그래도 민법학 석사에다 사법시험 1차 민법 시험에선 92.5점이란 기록적인 고득점을 얻었던 이력도 있는 터라 그 충격은 감당하기기 쉽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내가 예전 공인중개사시험장에서 어르신이라 이르던 연령대에 이미 깊숙이 들어선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하는 진단에 이르기도했다. 하지만 수험공부에 관한 한 나는 아직도 당시의 20대 초중반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다.
고개를 돌려 사법시험민법(A)과 @@자격시험민법(B)을 대비해 보았다. 두 시험 모두는 5지선다 40문제로 출제된다는 점에선 전혀 차이가 없었다. 시험 범위에선 A가 B보다 훨씬 방대했다. 가장 큰 차이는 딴 곳에 있었다. A는 단편적인 지식으로 해결되는 단순 암기형 문제가 많았으나 B는 비교 종합 문제가 압도적이었다. 더욱이 지나온 긴 세월 동안 쌓인 판례는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양을 자랑했다. 또한 B는 기출문제를 변형하지 않고 다시 문제지에 올리는 경우는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문제마다 지문이 워낙 길다보니시간 부족에 시달릴 정도였다.
게다가 이름도 생소한 이른바 ‘박스형 문제’ 유형도 자주 등장했다. 모두 옳은 것, 또는 모두 틀린 것을 고르라는 문제가 사람을 잡았다. 이 박스형 문제 유형보다는 차라리 단답형이나 약술형이 득점에 유리할 듯했다. 이 박스형 문제도 당연히 선다형이었지만 아주 완벽하게 알고 있지 않은 한 정답을 골라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한 세대란 세월이 훌쩍 지났다. 그간 각종 시험영역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을 인정해야 했다. 대학입시만 보더라도 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예비고사’에서 ‘학력고사’를 거쳐 ‘수능시험’에 이르고 있다. 가장 큰 변화를 들라면 이른바 통합교과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모든 시험문제 수준은 상상이상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우라 나라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압축 성장을 했고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보아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이에 걸맞게 젊은 세대들의 학력이나 스펙, 지적 수준도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아야 한다.
“요즘 초등학교 3학년 생 수학문제를 풀어보세요. 아마 과락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회사 후배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제 우리 나이가 적은 것이 아니야...”
고향친구 모임, 또는 고교 이상 학교 동기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마 20대 후반부터 이제껏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인중개사 시험장에서 우리가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어르신’ 연령대의 한가운데 나도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나는 이해력, 암기력, 추정력, 응용력 등 지적 능력의 현격한 감퇴 내지 추락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다.
‘소장기예’의 잔존만기를 계속 늘려가고 싶다.꾸준히 몸과 정신활동을 이어가는 회계학에서 이르는 이른바 ‘자본적 지출’을 늘려가면 소장기예의 유효기간이 늘어나지 않을까라는 것이 내 소박한 생각이다.
“이제 우리가 이런 모임에 얼마다 더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각종 동기 동창회나 경조사 때마다 친구들 사이에서 오가는 자가진단이다. 하지만 나는 이에도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저 갈 수 있을 때까지 가보자는 것이 나의 흔들림 없는 주장임을 숨기고 싶지 않다. 이러자면 육체와 정신 두 부문에서 모두 왕성한 활동을 계속 이어가야만 할 것이다.
비록 @@자격시험에서 젊은이들이 나를 ‘어르신’으로 부르고 대접할지라도 이런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언제 어느 시점에 잔존 만기가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불확정 기한부 삶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소나기를 굳이 미리 당겨 맞을 이유는 없지.”
평소 외치던 아버지의 명언이 오늘도 내 귓전을 맴돈다. 나는 이번 @@자격시험 민법과목에서 종래 기록이었던 92.5점을 넘어서기 위해 오늘도 수험서 정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