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이곳에 출근한 날은 ‘1일이 여삼추’였다. 본디 내가 근무를 명 받은 1 초소의 내 자리는 비워두고 2초소 동료대원의 빈자리를 메꾸는 역할이 주어졌다. 동료 박대원은 코로나 감염으로 휴가 중이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그저 반장이 시키는 대로 잘 따라서 근무하면 됩니다.”
군대의 신병교육대에 입소를 마치고 정식으로 훈련 일정을 소화하기 전 ‘대기병’ 신분에 다름이 아니었다. 머리받이가 없는 보조 의자에 앉아 잔뜩 긴장한 채 반장의 명령만 기다리는 로봇이 바로 그것이었다. 연병장의 제초작업 등 허드레 일을 하는 신분으로 전락했다.
“이제 1 초소에 내려가서 먼저 점심 식사를 하고 바로 올라오세요. 제가 식사 약속이 있기 때문에 제가 식사를 다녀온 후 휴게시간으로 1시간을 보장해드릴 겁니다.”
“팀장님, 오늘 점심은 순대국밥으로 하시지요? 제가 잘 알고 있는 맛집입니다.”
똠방은 오늘도 팀장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근로계약서에 정해진 식사와 휴게시간 스케줄을 제멋대로 바꾸었다. 나는 작은 계란을 깨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양손으로 쥐어 무릎 위에 얼려놓는 부동자세를 지키며 똠방의 명령을 기다릴 뿐이었다. 굴지의 금융기관 근무를 정년으로 마감한 후 이제 몇 년이 지난 내가 이런 형편에 처하다니 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똠방은 나와 연식이 같았다. 이 똠방이 팀장의 점심식사를 챙기는 것이 어쩌다 있는 일이 아니었음이 다음 근무일에 밝혀졌다.
“팀장님, 오늘 점심은 꼬리곰탕에다 김치로 드시면 괜찮겠지요? 어서 초소로 오세요. 제가 집에서 모두 준비를 해왔습니다.”
“김치는 건드리지 않았네. 지금 내가 임플란트를 여러 개 한꺼번에 시공 중이거든.”
똠방은 자신 집에서 챙겨 온 특식 꼬리곰탕을 식탁에 올렸다. 팀장이 식사를 마친 후 자신은 따로 혼자서 점심식사를 이어갔다. 참으로 보기 드문 진풍경이었다. 내가 길고 긴 학창 시절,군복무, 30여 년이 넘는 긴 직장생활 등 엄청난 세월 동안 조직생활 경험이 풍부했지만 이런 풍경은 처음 구경하는 일이었다.
“최대원 님은 이곳 지원 근무 때나 겪지만 매 근무일마다 바로 코 앞에서 지켜보아야 하는 저는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똠방과 같은 초소에 근무 중인 박대원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팀장의 점심식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전적으로 매일 똠방이 책임지고 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공지의 사실이 되었다. 똠방의 이런 태도 하나만으로 직장상사를 잘 모시는 태도와 자세를 따져볼 때 나는 이를 아주 높이 받들거나 ‘존경’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도 나름 오랜 세월 동안 성실하고 처절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똠방의 행태를 지켜본 순간 현장에서 즉시 꼬리를 내리고 똠방에게 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세상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한둘이 아니었다.
똠방으로부터 이렇게 칙사대접에다 맹목적인 충성을 받고 있는 팀장은 똠방을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었다. 오래전 모 메이저 방송국에서 방영된 적이 있는 ‘5 공화국’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권력서열 사실상 이인자가일인자 비위를 맞추려 갖은 재롱을 떠는 모습이 이 똠방의 작태에 겹쳐 보이는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었다.
나는 연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더하여 구역질까지 나오는 것은 웬일일까, 내가 다른 보통 사람보다 예민한 탓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평소 똠방과 한조를 이루어 일을 하고 있는 박대원으로부터 똠방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똠방은 그 잘난 쥐꼬리만 한 권력을 가지고 마음대로 휘둘렀다. 자신에게 편한 대로 식사시간, 휴게시간, 취침 시간을 줄이거나 그 순서를 마음대로 배치했다. 팀장과 미팅이나 식사 또는 업무 수행 시엔 박대원의 개인 사정을 전혀 고려함이 없이 자신에게 편한 대로 정했다. 나아가 엄연한 자신의 근무시간에도 휴게실에 들어 멋대로 나자빠져 쉬기도 했다.
똠방은 내가 근무 중인 1 초소를 수시로 방문하거나 또는 휴대폰으로 호출하여 지시를 내리거나 내 동향을 감시하곤 했다.내가 본디 새벽형 인간에 해당된다는 것은 주위 사람들이 널리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런 내가 아침 6시로 정해진 출근, 교대시각을 제대로 지키는지 살피기 위해 수시로 불시에 들이닥치곤 했다.아침 이른 시각엔 오직 출근 체킹만을 위해 이곳에 들렀기 때문에 때론 다른 용무를 잊은 채 돌아가 스스로 멋쩍어하기도 했다.
방재팀 근무자의 협조를 받아 초소 내에 설치된 cctv 조작 방법을 익힌 뒤 자신의 능란한 기술을 맘껏 자랑하기도 했다. 자신의 휘하 대원들이 혹시 딴전을 피거나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일거수 알투족을 촘촘히 챙겨 아주 꼼 작달싹을 하지 못하게 했다.
“최대원 님,지금 재활용품 정리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입주민이 출입구 바로 왼편에 세워둔 매트리스에 스티커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 좀 해주시겠어요?”
이 중생은 대원들의 작은 움직임도 놓치면 대단히 큰 사고라도 날 듯이 과잉대처롤 이어갔다. 어쩌면 자신은 처음부터 아파트 경비대 반장을 하기 위해 작정하고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