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비대에서 최 연장자인 팀장의 후임을 똠방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만약 이 똠방의 일이 성사된다면 아마도 국내외를 통틀어 경비업계 최연소 팀장이란 무시무시한 타이틀을 거머쥐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근무자 중 휴가 등으로 공백이 생기면 어차피 휴게시간은 반밖에 쓸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수시로 내뱉었다. 이 중생은 자신이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모두 한 손에 틀어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근무규칙을 자신의 입맛대로 정하고 해석하고 실행했다.
경비원 채용 시엔 취업컨설팅회사와 모종의 커넥션마저 의심되기에 충분했다. 이 아파트 단지는 입주가 완료된 지 이제야 겨우 만 1년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경비대원으로 근무를 하다 짧은 기간 내에 이곳을 떠난 이는 무려 13명에 달했다. 입사를 위한 면접시험에서 최종결정권을 갖는 이는 용역회사 임원이나 아파트 경비팀장이 대세였다.
그래서 면접시험이 마무리될 즘 ‘@@취업 소개로 왔습니다.’라는 멘트는 양자 간에 서로 주고받는 ‘암구호’가 된 지 오래였다. 면접시험을 통과한 후 입사가 최종결정되면 1개월분의 세전 급여 10% 상당액을 취업정보회사에 건네어야 하는 것으로 약정이 되어 있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에 딱 맞았다. 채용과 퇴사가 비번하게 이루어지다 보면 이 컨설팅 명목의 수수료도 제법 쌓일 것은 분명했다.
주식 매매를 업으로 하는 브로커가 매매회전율
을 높이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이곳은 @@취업의 소개가 없인 면접시험 통과가 어려워 보인다’는 말이 널리 회자되고 있었다. 이러한 소문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관련 당사자의 ‘계좌추적’에 나서면 그 진상이 일거에 드러날 것은 명백해 보였다.하지만 이 정도의 사안에 검찰이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의 발부를 신청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사정당국이 거들떠보지 않은 사각지대로 오랜 기간 살아남을 듯했다.‘네가 아니라도 이곳에서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줄을 서고 있다’며 대원이 이곳 팀장과 똠방의 등쌀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두 손을 들고 떠나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최준수 대원, 오늘 야간 근무시간이 어떻게 편성되어 있지요? 아하 그러면 오늘은 해당 사항이 없네요. 야간 촬영작업을 할 일이 있어서요.”
이런 똠방의 제안에 다음날 팀장은 한술 더 뜨고 나섰다.
“야간 근무 시간 중 의자에 앉아 양쪽 다리를 쭉 뻗어 책상 위에 올리고 거리낌 없이 잠을 자는 대원이 있다고 입주민의 민원이 들어왔어요. 이 현장을 최대원이 직접 촬영해주셨으면 합니다.”
“박대원과 최대원의 야간 근무시간표가 똑같이 편성된 날을 택해야 합니다. 핸드폰을 이렇게 동영상 촬영 모드로 세팅한 후 상의 저고리 왼쪽 위 주머니에 꽂아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 다음 이쪽 근무지로 복귀를 하면 임무는 종료되는 것입니다.”
똠방은 우리 초소를 방문하여 내 앞에서 문제의 ‘동영상촬영’이란 미션을 몸소 구분 동작으로 세심하게 시연까지 마쳤다. 참으로 경악할 일이었다. 박대원을 근로계약기간 만료 전에 몰아내려는 특수 공작활동에 나를 행동책으로 내정을 하고 이의 실행을 종용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공작을 어떻게 기획하고 같은 동료 대원인 나를 자신들의 하수인으로 끌어들여 이 미션을 완성하려 했는지, 21세기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자체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음모의 전모를 박대원에게 공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이곳을 당장 떠나기로 작정을 한다 해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이 구정물 투성이인 공작의 소용돌이에 내가 발을 담근다는 자체가 내 정체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 나아가 보통의 인간으로서 해서는 아니 되는 최소한의 한계로 보였다.
이곳 사이코 팀장과 똠방은 무얼 그리 자신 있게 믿는 바가 있어 ‘안하무인’ ‘기고만장’한 태도로 나대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간쓰레기 조합의 결정판’이라고 불러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듯했다. ‘고삐 풀린 망아지’에 다름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