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항상 잘하고도 부족하다고 느낄까

칭찬은 흘려보내고, 비판만 내면화해 온 방식에 대하여

by 제이

너, 참 잘한다는 칭찬을 받으면 알레르기 반응이라도 올라오는 건지,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지.’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셀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대며 내 안의 천사와 악마가 싸워댄다. 가까운 사람이 칭찬을 하면, 오히려 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 ‘가까운 사람이니까 하는 말이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하는 말이지.’ 가까운 사람이 칭찬할수록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칭찬을 애써 털어낸다.


연예인들이 악플에 시달리고,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뉴스를 접한다. 그런 글에는 또 이런 댓글이 빠지지 않고 달린다. ‘칭찬하는 댓글이 얼마나 많은데, 악플은 그냥 안 보면 되는 거 아니야?‘ 나는 연예인도 아닌데, 그들에게 공감이 간다. 나도 악플만 보인다. 도무지 칭찬하는 말은 내 마음에 쌓이지를 않는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던진 한마디는 그냥 쌓이는 걸 넘어서 내 마음을 후벼 파고 거기에 자리를 잡는데, 칭찬의 말은 왜 이렇게 가볍게 날아가는지. 놀이공원에서 풍선을 놓친 아이처럼 날아가는 칭찬을 마냥 바라보기도 하고, 엉엉 울기도 한다.


영화 ‘원더’에서 주인공 어기의 엄마가 외모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들 어기에게 ‘너는 못생기지 않았어 ‘라고 이야기하자 어기가 ‘그건 엄마니까 하는 말이지!‘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엄마는 단호하게 말한다. ‘엄마의 말이라 중요하지 않아? 너를 제일 잘 아는 엄마의 말이니까 더 중요한 거야! 너를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걸 알아 ‘라고. 이마를 탁 짚었다. 내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한 걸까. 나와 가깝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지나가는 사람 중에 말의 무게를 싣는다면 당연히 전자인데, 나는 왜 후자에게 더 큰 힘을 쥐어준 걸까.


나는 왜 잘하고도 항상 부족하다고 느낄까라는 제목도 사실 거짓말이다. 나는 잘한다고 느끼지도 못하니까. 완벽주의라는 말도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한다. 나는 완벽하지도 않으니까. 토익 985점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토익 만점자가 한국에 얼마나 많은데, 유학 다녀온 내가 985점 받은 건 사람들이 인정도 안 해줄걸? 심지어 토익 만점을 받고도 이 소리를 또 했다. 여전히 무언가가 부족한 거 같아서 그 빈칸을 채워줄 자격을 얻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계속됐다. 물론 나에게도 변명할 거리가 있다. ’ 유학 다녀왔으니까 영어는 기본인데, 만점은 당연한 거 아닌가?‘ 무언가를 성취할 때마다, 귀신같이 꼬투리를 잡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내가 그런 목소리들을 이기질 못한다는 거다. 취준생도 아닌데, 여전히 나는 계속해서 세상에 나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다시 생각해 보자. 사실 나한테 아무도 그런 말을 직접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설령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진짜 만에 하나 있더라도 그 말을 한 그 사람이 진짜 이상한 거다. 그럼 결국 남은 건 나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한 이상한 사람은 나 자신인 것이다.

‘긁힌다’라는 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화나는 말이다. 긁은 건 상대방인데, 흥분하고 화내면 나에게 이유가 있어 ’ 긁혔다 ‘는 말이 되어버린다. ‘저런 말들을 떨쳐내지 못하는 건 사실 네가 진짜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니야?‘ 에라이, 또 긁혀버렸다.


결국 문제는 내가 어떤 목소리에 힘을 실어왔는 지다. 나는 그동안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을 가볍게 넘기고,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목소리에 지나치게 많은 무게를 실어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내면화해,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내 목소리인 것처럼 스스로를 공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