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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안남 Apr 26. 2024

10년

여운


스토리텔링의 구조를 다루는 책을 읽다가

밑줄을 그어둔 정의가 있다


여운..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는 것.



여운을 다루는 일을 하는 나는,,

그 담백한 정의에 밑줄을 긋고

오래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여운은 내 안에서

깊은 강물에 천천히 내려가는

 물의 파장과 깊이를 연상시키는 감각을 준다.


작고 예쁜 반질반질한 조약돌이

내 마음 바닥과 테두리에 천천히 닿아가는 과정,


그것이 내 마음에 닿았을 때

그 파장의 울림을

강물 밖 표면에 꺼내어 표현하기를 시도하는 것이

상담실 안에서의 시도들,  몸짓들, 표정들이라면


여운은 노을 아래 윤슬 같은 것이 아닐까




이런 순간이 있었다.

청소년 내담자와 종결을 했던 날.

그 후 두 분 정도 더 만나고


상담실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상담실은 6층에 있기에

6층에서 1층으로

그리고 걸어서 지하철 역 지표면에서

지하로 몇 차례 계단을 타고 내려가고..


그리곤

건대 입구역에 다다라


지하철을 갈아타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맨 위에서 맨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내 안에서는

그날 종결하면서 나눴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말하자면

 종결의 파장이

내 마음 밑바닥에 닿아

울리기 시작한 것.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기 전,

더 큰 세상을 맞이하게 될 청소년 내담자.

내내 어른으로의 이행기를 준비해 왔지만

여전히 막막하고 불안한 마음에 대해

하지만 분명, 앞으로 삶의 시간 속에서

 자기 안의 더 풍부한 것들을 발견해 나갈 A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최선의 말은


"10년 뒤에 다시 보자였다."


나도 10년 앞으로도 쭉 이 자리에서

잘 살아갈 테니

너도 앞으로 10년 다양한 자리에서

잘 살다가 다시 만나기로 하자....."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나는 가만히 내 안의 파장을 바라보았다.

시간의 정지와 움직임을 동시에

조약돌처럼 쥐고 있는 심정이었다.


우리가 나눈

말의 파장이

노을 지는 하늘 아래 윤슬처럼 빛나는 듯했다.




밑으로 밑으로의 움직임 안에서

내가 그에게 했던 말이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다짐하게 되었다.


아.. 나 정말. 앞으로 10년도

그러니까 잘 살아야 하는 거구나... 싶었다.


배를 항구에 단단히 메어두듯

나를 내 말에 잘 묶어두기로 했다.


헤어짐의 순간에

헤어짐의 시간을 내다보며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은


말로 미래의 좌표를 세워두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것이 A에게 얼마나 한 힘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겐

6층에서 1층으로

지표면에서 지하로

또 더 깊은 내면의 깊은 진심으로 닿아가는

마음의 파장과 여운을 오래 기억하는 힘이 되었다.


폭깊은 당부이자

속 깊은 다짐이었다.



이따금

A는 긴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오곤 한다.

그러면 나는 A가 걸어 나가고 있을

이국의 표면과 그 모든,,

 이제는 내가 다 들을 수 없는  마음 동선의 시간들을 가늠하며

가만히 기도하곤 한다.


하루,라는 시간의 단위로 일상을 걸어 나갈 때

10년은 긴 시간 같다.

때론 그 시간 앞에서 막막한 마음에 휩싸여

 몸을 웅크리게 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한 묶음으로 시간의 흐름을 꿰어가고

상상할 수 있는 힘을 또 가지고 있어서

십 년이 될  오늘, 을 씩씩하게

다시 걸어 나간다.


내 마음의 강물 안에 흐르는

 무수한 조약돌들의 여운을 간직한

또 새롭게 다가올_ 오래된

마음의 파장과 흐름 형태를 감지하고 나누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 나간다.


물 위에 뜬_ 점멸하는 흰빛들이

 우리 마음을 감싸주는 이유를

나는 그렇게 감지한다.


그 빛들을 마주하며 ,

당부하고 다짐하며


밑으로도 옆으로도 앞으로도

모든 곳으로도... 우리를 향해 밀어가고 나아가며

십 년 뒤의 좌표를 미리 찍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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