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 그는 다이너마이트다
니체를 생각하면 신은 죽었다 라는 5글자가 내 머릿속을 관통한다. 기독교적 사상에 반기를 들고 나온 위대한 사상가라 불리우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고서는 그를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니체의 삶을 읽는 동안 그저 목표는, 뭔가 이제는 자기계발을 넘어선 어떤 것을 사유하고 싶다는 열망, 철학이란 본래 인생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고, 나는 항상 나의 내면 속에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끝없는 물음이 솟구치고 있었지만, 바쁜 현대 사회 속 일상에 지쳐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면서 이제는 그만 미루고, 사유의 폭을 넓혀 세상을 보는 시각, 처음 내가 책을 읽기로 결정했던 그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성경과 하나님,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 그의 뜻에 따라 내 인생이 결정된 듯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를 벗어나서는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내 10대시절을 돌아보았을 때는 안타깝고 씁쓸했다. 기도해야 돼, 예배드려야 돼. 은총을 받아야지. 하는 그런 여러 말들.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약한 내 자신. 끝없이 내려가는 자존감. 왜. 왜 그랬을까. 니체가 말했듯, 그냥 나는 나로 살고 진정한 내 자신이 되기 위해 더 노력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니체의 사상들로 기독교를 이야기하자면, 신은 죽었고, 이제 인간들은 어떤 극복되어야 할 존재다. 이 세상은 위도 없고, 아래도 없는 허공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 그 세계 속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흐름 속 무언가로 계속해서 변화되어지는 상태에 있다.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자신들은 고정된 상태가 아닌, 힘에의 의지로서 끈임없이 변화해가는 존재다. 반복적인 흐름 속에 있는 존재로서 자칫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위버멘쉬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답을 제시하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말하는 초인, 위버멘쉬는 신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회의론과 허무주의에 굴복하지 않는 인물이며, 종교에서 벗어난 자유로 자신의 삶을 더 강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불확실성과 무상함에서 오히려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는 자유로운 인물이며, 니체는 우리 자신들의 진정한 힘을 활용해 긍정적인 변화를 목표로 하는 자유로운 사람,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살아가라고 한다. 정치나 종교, 집단의 부품으로서 존재하지 말고, 오직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추구하고, 자기자신을 극복해 자기자신과 평화를 이룬, 위버멘쉬로서의 진정한 성취감을 맛보라고 이야기한다. 기독교적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와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살아가라는 니체의 말은 기독교적 권위가 높았던 그 당시의 사회에 자신의 사상으로서 망치를 들고 깨부 사회적,지적의 근간을 부숴버린, 다이너마이트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내 운명을 안다. 언젠가 내 이름은 어떤 놀라운 회상과 관련될 것이다. 지상에 한 번도 없었던 위기, 가장 깊은 양심과의 충돌, 이제까지 믿고 요구되고 신성시되었던 모든 것에 반하는 결정에 관한 회상과 접목될 것이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그렇다하더라도,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예수까지도 부정하는 것인가한다면 니체는 예수는 존경의 표시를 했지만, 르상티망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기독교신앙의 기반으로 된 도덕을 부정했다. 그 당시 도덕의 기준은 기독교 사제들로 인한, 열등한 자들에 의해 왜곡되어진 것이라며 부정했다. 원한과 복수심을 뜻하는 르상티망은, 권력있고, 잘 사는 사람들,흔히 귀족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기 때문에 저주받을 것이라는 노예도덕. 칸트를 비판한 이유도 이제는 이해가 간다. 칸트의 정언명령은 니체의 입장에서는 상위의 집단이 질서를 유지하게 하려는 공식적인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계속해서 위버멘쉬를 통한 자기극복, 자기혐오와 르상티망에 빠지지 않고, 온전한 자신으로서 지금,현재에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 그가 다이너마이트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런 것들을 다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어떤 창조를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생각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자기가 신이라고 헛소리를 하면서 미쳐간 것은 아니었던 건지. 니체는 어떻게보면 사유하는 사명을 지닌, 인간사에 대한 어떤 막강한 책임과 짐을 어깨에 지고 인생을 살아갔던 것은 아닐까.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고통을 얻었던 게 아닐런지.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인생에서의 의미나 가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영원회귀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생각해봤을 때, 니체가 말했듯, 세상은 무도회장이고, 무도회장에서의 신성한 우연속에서 긍정의 반응을 통해 의미가 찾아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순간이 반복되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1분 1초가 굉장히 소중해진다. 지금,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어떤 우연들의 연속이 펼쳐진다면 그 속에서의 긍정을 찾고, 최선을 다해 힘에의 의지를 발현하여 최고의 내 자신으로서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신은 죽었다. 하지만 인간의 방식으로 볼 때,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동굴은 앞으로도 수천 년 동안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그림자와도 싸워야 한다. _ 즐거운 학문
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산기슭에 그대들의 도시를 건설하라!_즐거운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