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인간다움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된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이 책으로 노벨문학상, 퓰리처상을 받는 영예를 누린 그는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이주 노동자라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고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어내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읽으면서도 감탄을 금치 못했던 것은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세세한 묘사로 공감을 이끌어낸다. 산업자본주의를 상징하는 트랙터가 들어오면서 이제는 사람이 일일이 밭을 일구고, 수확하는 일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대공황시기를 배경으로 산업이 발달하면서 실업자는 넘쳐나고, 일자리는 한정되어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한정된 일자리도 없어져버리는 상황에서 굶주림이라는 것이 뭔지, 굶주림이라는 것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얼마만큼이나 바닥을 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땅이라는 자연 속에서 땅을 느끼고, 소통하는 노동자의 삶과 발달하는 기술 사이에서의 딜레마. 소작농인 톰 조드의 가족들은 트랙터로 인해 집도 잃고 땅도 잃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가는 66번 도로에서의 여정 속에서 인물들 한 명 한 명에 대해 애정을 느끼면서 공감하고 이해하는 독서의 여정이었다.
땅을 빼앗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상황 속에서 대지주인 소수의 사람들은 굶주리는 그들을 위협한다. 조그마한 땅만 있어도 굶주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그들에게 주어지는 땅은 없다. 트랙터가 등장하기 전까지 자연과 소통하며 밭을 일구어 가족들을 부양하며 살아가는 그들은 부를 가진 소수들에게는 위협만이 될 뿐이기에 어딜가도 하대받는 그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지주들은 놀리는 땅을 가지고 하는 일은 없다. 넓은 땅을 가지고 부를 누리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들과 대비되는 장면은 우리에게 분명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수천만의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66번 도로에서도 이주 노동자들만의 집단생활이 시작된다. 커다란 사회 안에 작은 사회들이 만들어진다. 그들만의 울타리와 법을 만든다. 이 수많은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모여 결국엔 하나의 세상을 이룬다. 그래서 읽다보면 무언가가 많이 뒤틀려있다는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음과 동시에 의문이 든다. 이 사람들은 어디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에 가면 일자리가 많겠지. 거기가면 집도 얻고, 잘 살 수 있을 거야. 오렌지를 따고 포도따는 일을 하면서 함께 즐거운 미래가 있을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런 건 없다. 제대로 된 일자리도, 적정한 임금을 받고 일하는 곳도 없다. 그들을 위협하는 위기들만 있을 뿐. 헛된 희망을 품고 계속 나아간다. 소수에게 집중된 부로 인해 적절한 임금을 받고 일해야 할 사람들,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일자리는 없다. 노동력이 많으니 임금은 계속해서 낮아진다. 노동력 착취로 이어지는 불합리 속에서도 굶주리지 않기 위해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을 한다. 거리로 내몰린,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끼리의 연대는 높아지고, 서로 그들만의 아픔과 고통을 나누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며 고통 속에서도 위로와 안위를 삶는 그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사람은 자기만의 영혼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커다란 영혼의 한 조각인지도 몰라요.
저는 사방에 있을 거예요. 배고픈 사람들이 먹을 걸 달라고 싸움을 벌이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경찰이 사람을 때리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사람들이 화가 나서 고함을 질러댈 때도 제가 있을 테고, 배고픈 아이들이 저녁식사를 앞에 두고 웃음을 터뜨릴 때도 제가 있을 거예요. 우리 식구들이 스스로 가꾼 음식을 먹고 스스로 지은 집에서 살 때도, 저는 거기 있을 거예요.
톰 조드란 인물은 어디에나 있다. 그것은 나도 될 수 있고, 우리 가족,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다. 살인죄로 형을 살고나온 톰은 그렇게 이야기하고서 공동체의 어떤 일을 위해 떠나고, 톰이 한 말은 힘든 여정 속에서도 공동체를 돌보아야 하는 우리의 어떤 사명감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부의 재분배, 권력의 재분배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큰 이슈가 되는 문제고, 대공황이라는 과도기적 시절을 지나 오늘날 노동자들을 위한 권리나 안전에 관련한 법이 많이 바뀌었지만, 더 나은 세상, 살기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