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한 지 5년이 넘었는데, 수임한 지 4년째 진행 중인 사건이 있다. 대형 사기사건의 피해자들을 대리하여 사기 상대방을 상대로 민, 형사 사건을 수행해 왔다. 상대방이 사기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음에도 여전히 돈을 돌려주지 않았고, 나는 자원하여 피해자들의 채권추심업무를 수행해 왔다. 이런 사기피해 사건은 채권이 추심되었을 때 비로소 종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 사건을 수임한 것 자체가 실책이었다. 이미 상대방이 피해자들로부터 편취한 현금을 공중분해시킨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채권을 추심할 수 있단 말인가. 업계 관행대로 상대방을 형사고소하고, 민사소송을 걸어 확정판결을 받아내면 그걸로 될 일이었다. 하지만 개업 초기에는 사기꾼을 응징하고 피해자들을 구해야 한다는 의욕이 앞서, 위난을 자초하고 말았다.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사기꾼을 원망하다가, 사건이 장기화되자 나를 원망하고 있다. '피해자들이라 그렇지..'하고 선해하고 넘어갔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나도 점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몇몇 의뢰인들의 날 선 반응에 거침없이 응수하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이내 잠잠해졌지만 여전히 채권추심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과 나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다. 이미 갈 데까지 간 사건이니, 끝을 보지 않으면 내 마음도 개운치 않을 것 같다.
요 며칠간 마음을 추스르면서 문득 내가 연수 및 몇 번의 여행 과정에서 보았던 일본인들이 떠올랐다. 이 글에서는 일본에 대해 느꼈던, 지극히 짧지만 한편으로는 깊은 인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2.
연수 및 여행 과정 내내 만났던 일본인들은 언제나 친절했다. 그 ‘친절함’이라 함은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기준에 따른 것일 테지만, ‘야사시’로 일컬어지는 일본인의 싹싹함과 친절함은 이미 많은 외부인들을 매료시켜 왔으므로 이러한 느낌을 나의 애정결핍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나고야 국제공항에서 짐을 찾아주던 공항 직원, 나고야 시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교수님의 제자 분들, 우리가 방문했던 대학의 학생들과 교수님들, 심지어 야심한 시각 편의점의 알바들까지 내겐 모두 하나의 인상으로 남아 있다. 언제나 이 분들은 일본을 처음 방문한 이방인에게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해 주었다. 또한 길거리를 걷다 미미하게라도 접촉이 있게 되면 즉각 정중하게 소리를 내어 사과하는 모습도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모습들이었던 것 같다.
(예전 나리타 공항을 잠깐 경유했던 것을 제외하면) 처음 일본이라는 곳을 방문한 내게는 이러한 모습들이 크게 반색할만한 것이었다. 웃으며 반겨주는 듯한 얼굴들 앞에서 적어도 상처를 받을 이유는 없으니까.
사실 이런 얼굴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이미 한국에서도 전화번호를 안내해 주는 114 상담원이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치고, 곳곳의 상점에서도 점원들이 대개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고객만족(CS)'의 개념이 기업경영에 도입됨에 따른 것으로 인위적인 성격을 지닌다. 또한 이러한 친절함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며, 대체로 개별 영업조직의 지침에 따라 마련된 것이고, 손님을 냉대하여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한 상점도 많다.
또한 이를 마냥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는, 웃음 뒤에 감춰진 고단함이 너무나도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고객’을 상대하는 콜센터 직원, 판매점원, 기타 영업을 주로 하는 직업군들의 주된 애로사항은 바로 ‘감정노동에서 오는 스트레스’라는 연구결과가 있고, 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데 따른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알려주는 정보들은 이미 차고 넘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한국에서의 ‘친절함’에 염증을 느끼던 내가, 왜 친절한 일본인들에게 쉽게 매료되었을까. 단순히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설렘 때문에,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친절함의 속살을 이성적으로 짐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너무나 친절했다.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저런 식의 (과도한) 감정노동은 스스로를 황폐화시키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첫날 나고야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
3.
루스 베니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take one's proper station)’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썼다. 베네딕트의 이 저작물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적어도 그가 지적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다는 의미는, 곧 조직의 질서에 자신을 맞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제약하고 검열하여, 조직의 일부분으로서 전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지상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직분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종래 일본의 봉건적 사회는 덴노(천황)를 최정점으로 하여 쇼군-무사(사무라이)-농민-공인-상인-천민 순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카스트 제도를 근간으로 구성되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배와 이에 대한 철저한 복종, 그리고 집단 내부 구성원 간 감시체제가 필수적인 요소였다. 또한 이러한 질서를 온(恩), 기무(義務), 기리(義理), 런(仁), 진기(仁義) 등의 가치를 통해 스스로 내면화할 것 역시 요구되었다.
자본주의 사회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구조는 다각화되었지만, 상하질서를 토대로 한 지시복종관계는 고객과 상인 간 우열관계뿐 아니라 학교, 기업의 서열에도 적용되어 여전히 일본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상대방과의 관계에 맞추어 자신이 취해야 할 자세를 파악함에 따라, 진정한 ‘나’의 모습은 날 것 그대로 외부에 드러나지 못한 채 수면 깊숙한 곳에 잠재해 있다. 각자가 자신의 영역을 지킴에 따라 전체 조직은 평화롭게 유지되며, 동시에 각 구성원들은 자신들만의 영역을 온전히 보장받는다. 이는 동시에 자신에게 허용된 영역에 타인을 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로 이어지게 되는 것 같다. 결국 자신만의 사적인 가치관, 감정은 철저히 ‘사회’에 의해 통제되어 있지만, 이를 표출하려는 것은 인간 본연의 성정이기 때문에 결국 자신을 자기 자신만의 사적인 영역에 유폐시키고 철저히 그 영역 내에서 이를 다양한 형태로 구현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일본의 ‘히키코모리’, ‘오타쿠’ 현상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4.
대학에 들어와서 줄곧 가슴 한편에 부담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이들 모두와 친해지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모든 이에게 쉽게 다가가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해야 하며 결국 그 이상 가까워지지는 못한다. 그저 안면만 있을 뿐인 사람에게 웃으며 던지는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인사말에 대해서도 늘 회의감이 들었다.
서로가 이미 그 이상 친해지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있다면, 모든 정을 다 줄 것처럼 함박웃음을 짓는 것이 적절할까? 피상적인 관계나마 ‘네트워크’, ‘인맥’이라는 이름 하에 이렇게라도 유지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되, 그 마음이 내면에 진입하지는 못하도록 막으면 되는 것일까?
소위 ‘스펙’이나 진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법한 고민들을 잔뜩 나열해 놓고는 몇 년째 답을 내리지 못하다가, 언젠가 이 질문들이 결국 상처받지 않으려는 몸부림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숙연해졌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대학 새내기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굳건해졌고, 지금의 나는 지극히 ‘무난한’ 인간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나는 그 몸부림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을 쉽게 주지만, 그만큼 쉽게 떼지 못한다.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어 준다면, 아마 나는 그 손을 덥석 잡고 절대 놓지 않을 것이다. ‘감당하지 못할 상처’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전전긍긍할 것이다. 결국 모든 질문들은 도돌이표를 안고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몇 번의 일본 여행에서 보았던 일본인들의 모습은 내게 특별한 감흥을 남겼다. 물론 이는 나의 철저히 자의적이고 오만하기까지 한 해석에 기초한 것일지 모른다. 직접 그들이 되어보지 못하고서는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지, 감정노동으로 인해 얻은 상처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해석은 그들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고, 나를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일본인들은 한결같이 내게 친절한 미소를 보여주었고, 그 미소 속에 그들의 진정성이 담겨 있는지, 아니면 그저 페르소나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인지 나는 판단할 능력도 자격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미소가 이방인을 일부분 무장해제 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진심에 의문을 갖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미소를 접하는 순간만큼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차피 ‘각개약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관계는 가면을 통해 유지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가면 속에는 어쩌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서로가 미소를 띠고 응대하는 관계는 서로에게 포근함을 주는 동시에, 외로움을 남긴다. 서로의 상처 입은 모습까지도 감당하고 감싸 안을 수 있는 관계가 성숙한 관계일 테지만, 인간관계, 특히 계약관계에서 이 모든 것들을 충족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모든 관계에는 주도권이 걸려있고, 언제든 권력관계로 치달아도 전혀 낯설 것이 없다.
결국은 배려심과 외로움, 그리고 공감의 문제가 남는다. 자신의 감정을 알아달라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도 쉽사리 ‘쌩얼’을 드러내는 것이 한국에서의 인간관계라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상처는 조용히 홀로 삭히는 것이 바로 일본인의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듭 말하면, 결국 이 모든 해석들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적극성, 네트워크 형성, 사교성 등등의 단어들이 사회인으로서의 나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이 다 넘어 간다. ‘험난한 사회에서 살아남기’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단어들은 긍정적인 의미를 띠고 있음에도 내겐 마냥 서글퍼 보였다.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똘똘 뭉친 상태에서 일본 땅을 밟았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친절한 미소 역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나 역시 누군가를 따뜻하게 데워주기 위해 '선제적으로' 일본인들의 웃음을 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냥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게 바로 인간이라는 깨닫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로 자세를 낮추고 두리번두리번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지만, 알고 보면 그저 상처받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조금은 긴장을 풀고 함박웃음을 짓다 보면, 의도치 않게 내게도 따뜻한 순간이 다가오지 않을까. 나도, 일본인들도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