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우연히 김용민 의원이 '조선이 무능해서 망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질의하는 모습을 보았다. ‘1910년에 대한제국이 망했는데, 나라를 빼앗은 일본이 잘못한 것이냐. 나라를 빼앗긴 대한제국이 잘못한 것이냐.라고 묻는다. 이에 이창양 장관이 즉답을 하지 못하자. 화를 낸다. 왜 이런 (당연한) 질문에 신속하게 답변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단순히 김용민 의원 개인에 대해 가타부타 말할 것이 아닌 듯하다. 김용민 의원이 보인 분노는 그저 한 개인의 특유한 모습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 사이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정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몇 년 사이에 일본에 대한 몇 권의 책들을 읽으면서 머리가 복잡하던 차에 영상을 보고 생각을 간략하게 적어봄.
'조선이 무능해서 망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조선왕조의 무능 때문이라고 답한다면 비난받아야 할까. 조선왕조의 무능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고 한들, 그것이 일본의 야욕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조선이 침탈당한 것은 조선왕조가 쇄국정책을 고수한 채 근대화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조선이 침탈당한 것은 중립외교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와 같은 답변은 역사의식이 없는 무지한 답변이자, 반민족적이며 일제의 침탈을 정당화하는 악질적인 답변이고,
오로지 '조선이 침탈당한 것은 일제의 야욕 때문이다.'라고 답해야만 민족정기를 잇고 치욕의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주어를 다음과 같이 바꿔보면 어떨까. 김용민 의원과 함께 분노한 이들은 아래 내용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까.
우크라이나가 침탈당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가진 지정학적 이점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침탈당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중립정책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침탈당한 것은 푸틴의 야욕 때문이다.
2. 반일교육을 받고 자라서인지 일본 역사는 언제나 후순위였다. 중국 역사서를 거부감 없이 읽었지만, 일본사는 언제나 후순위였고 일본여행조차 가고 싶지 않았다. 우연히 연수기회가 생겨 2012년에 처음 일본에 가보고 나서야. 일본이 우리나라와 매우 유사한 나라라는 점을 알았다.
비록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읽지는 못했지만, 길거리와 지하철의 안내판에 적힌 글자가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청소년기에 새롭게 배우고 사용하면서 뿌듯함을 느꼈던 용어들을 일본에서 그대로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사용하던 상당수 단어들이 우리나라가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일본에 의해 도입되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일본을 너무나 몰랐고, 일본을 모르면서도 무시했고, 일본을 알고자 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왜 일본에 의해 더럽혀진 오욕의 근대사를 냉정하게 분석하지 않는 것일까? (오욕의 역사를 애써 무시하려는) 순수함, 완벽에 대한 강박 때문일까. 아니면 다양한 원인을 역사를 단선적으로 이해하는 무지 때문일까. 아니면 역사를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반일감정을 고취시켜 지대를 추구하려는 욕심 때문일까.
한국전쟁 발발 후 불과 70년 밖에 지나지 않은 휴전국가에서 '종북' 비판이 사상검증이므로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친일' 딱지를 붙이는 것엔 응당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냉정히 분석하고자 하는 작업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래야 하지 않을까.
'친일'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니 논리적인 토론이 어렵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다. 불신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이 막대한데 이를 과연 언제쯤 줄일 수 있을지 난망하다. 역사를 냉정하게 분석하지 못한다면, 그로 인한 위험과 손실 또한 우리 몫이다.
최소한 개인적으로라도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왜 일본에 지배당했고, 왜 일본에 ’ 강제로‘ 근대화되었는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사실을 들어가며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