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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변의 잡설 Nov 13. 2023

사기 사건을 변호하면서

기소가 되어 형사재판을 받게 되면, 피고인에게는 2가지 선택지가 있다. 무죄를 다투거나, 유죄를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는 것. 


사기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은 법정에서 모든 것을 인정했다. 나는 그의 변호인이 되어 피해자와 합의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의뢰인은 구속 중이어서 구치소에 있었으므로, 내가 부득이 직접 피해자에게 전화를 해야만 했다. 


피해자는 1억 원이 넘는 돈을 사기당했기 때문에, 사기당한 돈 전액을 돌려받기를 원했다. 그는 단호하게 '사기 친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합의해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사기당한 돈을 돌려받지도 못했는데, 사기꾼과 합의해 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여의치 않았다. 피해자가 돈을 전액 돌려받기란 쉽지 않았다. 피고인은 이미 구치소에서 상당한 기간을 보냈다. 이제 형이 확정된다고 해도 그에게는 구치소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심지어 '모범적으로' 구치소 생활을 한 덕분에 가석방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가족들이 여차저차하여 겨우 마련한 돈은 몇천만 원. 작은 돈은 아니지만 사기 친 금액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다. 피고인은 '이 돈으로 합의가 안되면 그냥 몸으로 때울게요'라고 말했다. 


피해자에게 그러한 현실, 그러니까 '이 돈이라도 받으셔야 해요. 지금 이 돈을 받지 않으시면 앞으로 돈을 받을 확률은 아예 없습니다'라는 말을 전해야 했다. 그러자 피해자와 그 배우자는 나를 꾸짖듯 말했다. '이 돈을 내가 어떻게 번 줄 아느냐', '겨우 한 푼 두 푼 모아서 빌라라도 분양받으려고 했는데 사기당했다', '변호사님 같으면 이 돈 받고 합의해 주겠느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피해자의 말이 몹시 타당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합의를 권했다가는 무례가 될 것 같았다. 


사기꾼이 5억 원을 사기 쳐도 3년가량만 살고 나오면 되는 현실. 심지어 구치소 안에서 모범적으로 생활하면 가석방도 노릴 수 있는 현실, 피해자가 사기꾼에게 민사소송을 해서 승소한다 한들 집행이 불가능하여 판결문은 종이쪼가리로 전락해 버리는 현실, 그렇게 사기꾼이 출소한 뒤에 배 째라면서 돈을 갚지 않아도 피해자는 더 이상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는 현실. 그리고 이런 시궁창 같은 현실을 피해자에게 '죄송하지만 이게 현실이에요'라고 말해야 하는 현실이, 내가 참 싫었다. 


자조로 글을 끝맺으려다가, 그러면 배설에 불과할 것 같아서 약간의 생각을 보태야겠다. 재산범죄의 형량을 대폭 높이고, 다만 피해재산을 돌려주면 (형이 확정된 이후에도) 형을 감경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 최소한 재산범죄에 있어 피해자가 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 피고인이 절대로 가석방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 돈이 생존을 결정짓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재산범죄는 생명, 신체에 대한 범죄와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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