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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변의 잡설 Jan 26. 2024

김판곤 감독과 축협


1. 어제 경기의 주인공은 김판곤 감독이 아닐까. 김판곤 감독은 지난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으로서 벤투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데려온 분이다. 카타르 월드컵 이후 김판곤 감독이 축협에서 나온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월드컵 직후 인터뷰를 보면 김판곤 감독은 벤투 선임에 직접 관여한 당사자로서, 후임 감독이 벤투호가 한국 축구에 남긴 자산을 잘 계승하여 더욱 발전시키기를 바랐다. 


그러나 벤투 감독의 후임으로 온 클린스만 감독은 전술가와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었다. 매주 선진 축구를 보며 전술적 기대치가 한껏 높아졌고 '축구는 감독놀음'이라는 걸 알게된 축구팬들에게 클린스만 선임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이었고 상당한 논란이 일었다.


김판곤 감독은 클린스만 선임, 선임 후 대표팀 평가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과 벤투 감독이 남긴 자산이 초기화되는 것을 보면서 참담하지는 않았을까. 최소한 긍정적인 평가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축협에서 나온 뒤 말레이시아 감독으로 부임하여 아시안컵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하필 한국과 붙었다는 것은 우연에 불과하겠지만, 김판곤 감독에게는 자신이 지난 카타르 월드컵을 준비하며 지향한 방향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할 기회이기도 했을 것 같다. 그리고 김판곤 감독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위권 팀을 이끌고 우승 후보로 꼽히던 한국과 맞붙어 3골이나 넣었다. 어제 경기 덕분에 클린스만호에 대한 비판이 대대적으로 일게 되었으니, 이는 김판곤의 공이다.





2. 더불어 축협의 국대감독 선임절차에 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축협 정관 규정을 살펴보면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국가대표팀 감독은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의 소관업무임. 


나.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희의 소관업무는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함.


다. 이사회의 승인은 이사회 결의로 이뤄지며, 재적 과반수 출석 및 출석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됨.


라. 이사회는 회장, 부회장, 전무이사, 이사로 구성됨.


마. 부회장 및 이사는 회장이 추천한 자 중에서 총회에서 선임함.


(이사 중 성별, 비경기인, 출신 대학 별 쿼터 제한 규정을 둠)




축협 정관 규정에 따르면, 축협 이사회 구성원은 회장 및 '회장의 추천을 받은' 이들로만 구성되는데, 이사회 구성에 관하여 정관에 위와 같은 규정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가? (대한체육회도 정관에 동일한 규정을 두고 있기는 하다)


만약 이렇게 되면 자칫 이사회는 회장의 거수기 역할에 그칠 우려가 있지 않을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사회 내에서 회장의 영향력이 상당할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사가 본인을 추천해준 회장의 심기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동을 하기란, 한국 사회와 같은 풍토에서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사실상 정몽규 회장의 작품이라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는데, 그 배경에는 위와 같은 이사회 의사결정 구조가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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