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덕후의 기나긴 외사랑 이야기
이 애증의 역사를 톺아보기 위해서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전까지는 역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태초의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2012년에 방영된 퓨전 사극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본방사수하며 한국의 역사에 대해 처음으로 인식하게 됐었다. 그때까지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서점의 냄새, 책의 촉감, 좋아하는 노래, 즐겨 하는 게임 정도뿐이었는데, 그 드라마 배경으로 나오는 조선의 풍경이 새롭게 내 마음을 건드렸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한국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기억이 맞다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교과목으로 역사가 등장했는데, 그 무렵 친구 따라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해당 학원은 전 과목을 가르치는 학원으로, 수학과 영어, 국어와 역사, 심지어 과학까지 가르쳤다. 그곳에서의 역사 수업은 암기 형식이 아닌 스토리텔링 위주로 이루어졌고 안 그래도 가장 흥미로웠던 과목이었던 역사는 학원 가는 일마저 기대되도록 만들었다. 한편, 당시 학급 내 따돌림을 당하고 있을 때라 쉬는 시간에 책을 읽거나 교과서를 읽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것이 없었는데, 한때 사극 드라마를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 주로 역사 교과서를 탐독했었다. 두 시기가 맞물려 내 인생을 뒤바꿔 놓은 첫 번째 사건이 발생했고, 그 계기를 만든 것이 바로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었다.
발단은 여느 때와 다름없던 학원 선생님의 역사 수업이었다.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세워지기 전 혁명의 순간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나는 근원지를 알 수 없는 불꽃 같은 것이 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신진 사대부와 신흥 무인 세력이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그려졌다. 수많은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들이 품고 있는 꿈과 분노, 정치관이 형체 없이 나를 마구잡이로 헤집어 놓았다. 그날 저녁의 수업은 전에 없던 기대감으로 나를 부풀게 했고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읽으며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자각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이성계의 이름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국사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학교에서 틈 날 때마다 역사 교과서를 읽었고, 학교 진도와 상관없이 한국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계속해서 살폈다. 일상에서 심심할 때는 조선 왕조의 계보나 시인 윤동주의 시를 외웠고, 한국사 연대별로 카드 나열하기 게임을 했으며, 한국사를 재미있게 알려 주는 어플을 통해 매일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수집했다. 그런 시간이 꽤 쌓이다 보니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보고 싶어졌다. 당시 설민석 강사의 유튜브 영상을 보며 역사 영화에 대한 관심도 생겼었는데 그 인연으로 그의 한능검 인터넷 강의까지 수료하게 됐었다. 현대까지의 역사를 다 공부하진 못했지만 결국 1급을 따 냈고,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역덕이 되었다. 이듬해 부처님 오신 날에는 혼자서 사찰에 다녀왔고, 그해 1월에는 친구와 함께 서울로 역사 투어를 다녀오기도 했다. 내가 역사를 좋아하고 다른 것에 비해 이 분야를 잘 안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부터는 개인적인 활동을 전부 역사와 관련된 것만 했다. 동아리도 역사시사 토론 동아리에 들어갔고, 봉사 활동도 대체로 역사 박물관에서 했으며,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에 이름에 역사가 붙은 것이 있으면 무조건 참여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사 박물관 큐레이터의 꿈을 키우게 되었고 어느새 역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생활기록부를 가득 채운 사람이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초반 때부터 사학과로의 진학을 희망했다. 대중에게 역사가 얼마나 흥미롭고 배울 점 있는 분야인지 알려 주고 싶다는 열망이 컸기 때문이다. 나는 박물관을 유독 좋아했는데, 얼마나 좋아했냐면 박물관 청소하는 일로 먹고 살아도 평생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좋아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에 갈 때마다 그 생각을 했다. 사실 내가 사랑했던 것은 학문적인 내용이 아니라 눈과 귀로 느끼는 역사의 흔적이었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어릴 적 간절히 품었던 꿈을 현재까지 간직하고 있었을까?
그토록 바라던 사학과에 왔지만 내가 바라던 교육은 없었다. 수업 계획서만 보면 하나같이 흥미로운 것들이 강의가 시작되기만 하면 따분하고 지루한 실체를 드러냈다. 수업 내용이 재미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의자에 앉아 글자로 가득한 역사만 살펴보려 하니까 점점 안광을 잃어 갔던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단 한 과목에서만 역사를 배울 수 있었기에 그것이 활자 속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래도 마냥 좋았다. 하지만 대학교에 올라와서는 교양을 제외한 모든 과목이 역사와 관련된 내용이었고, 그렇기에 변화를 원했지만 현실은 기대와 많이 달랐다. 정정하자면, 내가 선택한 현실이. 다만 2학년에 접어들면서 어떠한 이유로 다시 한능검을 치러야 했고 그렇게 접하게 된 최태성 강사의 한능검 강의를 들으면서 이번에는 역사 교육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생겼다. 물론 그마저도 호주로 워홀을 가면서 완전히 바스라지게 되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원했던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였다. 내가 역사에 빠지게 된 것도 순전히 이야기 덕분이었고, 유적지나 박물관에만 가면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에 휩싸이는 것도 모두 그곳에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언젠가 그곳에서 살고 있었을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하늘 아래 있진 않아도, 같은 땅 위에서 자신들의 삶을 일궈 냈을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입었던 옷과 살았던 건축물, 먹었던 음식과 향유했던 문화 같은 것들이 언제나 나를 울먹이게 했고,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아이처럼 어찌 할 줄 모르게 했다. 그 모든 것들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나는 그것을 그 어떤 것보다 사랑했다. 그들이 남긴 지혜와 물려 준 흔적이 나를 역사가 아니면 안 되게 했고, 그래서 착각하게 했다. 역사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사실은 더 다가가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사랑이 증오로 변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양풍 음악을 들으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느려지면서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궁궐이나 사찰을 볼 때면 어김 없이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곳을 지은 사람들, 그곳에 살았을 사람들, 그곳을 지나쳤을 사람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워 그 안에 슬픔과 기쁨, 행복과 한 같은 것들이 하나로 뒤엉켜 마치 제 것인 양 내 감정을 지배했다. 오늘도 그런 순간을 겪는 어느 오후에 지나지 않았다.
영어 캠프 대면 교육과 절친과의 1년 만의 상봉을 위해 지난 금요일에 미리 서울로 상경했다. 개인 시간에 특별히 따로 하고 싶거나 보고 싶은 것은 없었고, 가능하다면 경복궁을 오랜만에 다시 들르고 싶었다. 마지막이 언제였는지는 가물가물하나 첫 번째로 갔던 때는 2017년 1월이었고 대체로 그때의 기억으로 경복궁을 회상하고는 했기 때문에 얼마나 변했는지, 지금은 어떤 풍경을 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오늘 오전에 시간이 남아 들른 경복궁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정말이지 눈물나게 아름다웠다.
처음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정말 많았다는 것이었다. 거의 시드니 외국인:한국인 비율 수준으로 외국인이 많았는데, 한복을 입기까지 한 외국인 역시 많았다는 점에서 매우 놀랐다. 남녀노소 국적에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한복을 착용한 채로 경복궁을 구경하고 있었고 그들의 모습을 멀찍이 바라보면서 나는 자꾸만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오려는 것을 간신히 내려보냈다. 하지만 과거에 한복을 제작하는 데 기여한 사람들이 지금 이 땅에서 펼쳐지고 있는 변화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생각만은 떨칠 수 없었다. 그토록 전통을 중요시하던 국가였는데, 그 전통이 현재 전 세계에서 널리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당장이라도 휩쓸릴 것 같았다. 우리의 고유함을 지키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싸워 왔다는 것을 알기에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싶어졌다.
약 8년 전에 보았던 것과 많이 다른 모습을 한 오늘의 경복궁은 발 딛는 곳마다 동양의 정취를 풍겼고, 나는 그것을 한껏 음미하며 내가 사랑했던 한국의 역사를 오랜만에 가슴 깊은 곳까지 아로새겼다. 건축물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을 눈에 담으며 나를 멀고 먼 곳으로 데려갔다. 나의 언어로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를 곳곳에 담고 있는 이곳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더없이 씁쓸해지기도 했다. 결국에 나는 이곳을 떠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어디에도 나의 언어로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를 담은 곳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내 땅에서 벌어진 역사를 사랑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일 테고, 그것이 견딜 수 없이 그리워지면 이곳에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 안에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무한의 행복에 젖게 만드는 이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