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독이기 위한 또 한 번의 끄적임
오늘은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상태에서 점심 약속을 나가야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빼고는 그 어느 때보다 멀쩡한 정신과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각들. 평소에 잠을 많이 자 둔 덕분인지 오늘의 오후는 예상했던 것과 달리 기운이 이상하리만큼 넘쳤다.
관계가 두텁지는 않아도 한때 서로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 있어 주기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오늘 만난 오래된 친구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단둘이 본 적은 처음이었지만 예전부터 그에 대한 애정이 유별났기에 그와 오늘 나눌 이야기가 무척 기대됐었다.
한국 친구들과의 만남 코스가 으레 그렇듯 우리도 점심 - 노래방 - 카페 순서를 정성스레 밟았다. 각자의 삶을 일구는 동안 우리 사이에는 1년 이상의 시간적 거리가 생겼었지만 그것을 따라잡는 일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근황과 미래 계획, 서로가 몰랐던 과거의 일들까지 톺아 보며 삶의 경계선에서 맞춰지는 공통 분모를 발견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친구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취업하고 싶은 곳에 대한 목적이 확실해 보였다. 나는 졸업까지 최소 2년이 남았지만 나 역시 하고 싶은 것과 할 것이 분명해 졸업 이후의 계획까지 명확히 설명할 수 있었다. 다만 어째선지 조급해지는 마음은 달리 이해할 방도가 없었다. 평소에는 고민 한 번 않다가 왜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인지. 아무래도 잠이 부족한 탓인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이었다.
버스에서 짧게나마 눈을 붙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산뜻해졌다. 아까의 감정 변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힘이 생겼고 내가 어떠한 이유에서 흔치 않게 감정 기복을 겪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지난 기억을 찬찬히 돌이켜봤다.
나는 빨리 직장을 갖고 싶었던 것이었다. 호주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다녀오고 귀국 후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 시간이 자그마치 2년이었으므로 당연히 내 또래 친구들은 일반적인 루트로 삶을 살았으면 지금쯤 취업 전선에 뛰어들 준비를 마친 상태일 것이다. 그런 친구들을 보고 있으려니 나 또한 같은 상태에 있고 싶어진 거겠지. 그러나 그것은 한낱 과욕일 뿐이다. 원하는 것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시간대를 살기로 결정하였고 짧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 결국 그것을 쟁취해 냈음에도 여전히 다른 이들의 삶을 탐했다. 내게 주어진 길은 따로 있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잊은 채로. 그러나 이 역시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도 안다. 사람이라면 무릇, 자신의 성취는 금세 잊고 타인의 성장을 더 눈에 담는 법이니.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식으로 내 감정을 불안케 만들고 싶지 않다. 지금껏 걸어온 길이 앞으로의 길 역시 꽤 가 볼 만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니까. 현재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살고 있고 미래에 하고 싶은 일들은 저만치서 나를 웃으며 기다리고 있다. 그것들은 표정 한 번 안 바꾸고 나를 울릴지도 모르지만 결국에 우리 모두 웃으며 작별할 것도 안다.
내가 온전히 누리고 싶은 삶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무언가에 자주 맞닥뜨릴 수도 있다. 허나 매 순간 내린 나의 선택에 내가 진심이었다는 것만 변치 않는다면 나는 오래도록 행복할 자신이 있다. 예상보다 더 어렵고 아플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나는 절대 나를 놓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그래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지?
나를 위하는 삶. 그러므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자주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어 정신을 아늑히 채우고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 운동으로 살아 있음을 감각하는 삶. 다양한 언어 학습과 기타 취미 생활로 일상을 다채로이 꾸리는 삶. 본업에 충실하여 자기 효능감을 수시로 채우고 주변 공동체로부터 소속감을 느끼는 삶. 내가 사랑하는 환경에서 이 세상 모든 존재들과 어우러지는 삶. 그런 삶을, 간절히 바란다.
그런 삶을 얻기 위해선 내 편의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계속해서 불편하고 두려운 상황에 놓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샅샅이 찾아야 한다. 그 모든 것이 어느 순간 날 고독하게 만들지라도. 그러니까 괜찮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라 해도 네게 주어진 삶을 충분히 누릴 때까지 너의 삶은 쉽게 끝나지 않을 거야. 그 무엇이 널 혼란케 한대도 금방 다시 평온을 되찾을 거야. 그 평온을 갖고 또 잘 살아갈 거야. 그렇게 긴 시간이 흘러 결국 넌 네가 바라던 자리에 서 있을 거야. 그러니 아이야, 이제 그만 다음 장으로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