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레스트 Sep 30. 2024

짝사랑이 왜 이래 (2)

이렇게 지독한 사랑은 난생처음이라

귀국까지 약 한 달이 남았을 무렵, 내가 평생토록 가장 사랑할 도시 시드니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간 즉시 매일 친구들을 만나며 서로가 없는 동안 어떻게 지냈고 함께했던 우리의 추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밤 클라이밍 짐을 발견하게 되었다. 호주에서 클라이밍 짐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므로 신기한 마음에 건물 내부 쪽으로 가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를 봤다.


사실은 그의 뒷모습과 옆모습과 매우 닮은 남자를 봤던 것이었다. 그때는 그 남자가 그일 거라는 확신에 빠져 있었기에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지 못하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왔었다. 호주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만나 지금까지 가장 친한 관계로 남아 있는 나의 친구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열변을 토하더니 그만 자기 연민에 빠져 있으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 혼자 하는 사랑놀음에 그만 놀아나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잘 지내냐고, 혹시 어제 저녁에 클라이밍 짐에 갔느냐고. 짧게 물었다.


그는 그 당시 그곳에 있지 않았고 운동이라면 농구밖에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긴장이 확 풀리고 마음이 놓였다.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이상한 자신감도 생겼다. 고작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사랑으로 발전했냐고 묻는다면... 그러게 말이다. 언젠가부터 그가 언제 어디에 있건 무슨 일을 하건 늘 행복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근사한 사람이니까, 어디서든 사랑만 받기를 하는 바람 같은 것이 그를 떠올릴 때마다 내 마음에 잔잔히 퍼져 나갔다.


마침 그와 연락이 닿았겠다, 우리가 함께 일했던 곳의 또 다른 동료의 생일 파티가 다음 주에 열리는데 혹시 시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그녀가 괜찮다고 하면 자신이야 좋다고 말했고 나는 재빨리 그 친구에게 그가 와도 된다는 확인을 받았다. 어디까지나, 다른 소중한 사람들처럼 한때 많이 좋아했던 사람까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고 싶다는 욕심에 불과했다. 그렇게, 그날이 찾아왔다.


그녀의 생일 파티는 오후 내리 그녀의 집에서 진행될 예정이었기에 나는 부러 늦게 갔다. 일찍 가면 온종일 그가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파티 참여자 중 마지막 전 마지막으로 온 사람이었고 그는 이미 와 있었다.


그날 아침부터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길까지 계속 그를 곧 만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기 때문에 그녀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를 의식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선을 두지 않는 것은 나의 빈약한 의지로도 가능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먼저 인사를 나눈 다음 마지막으로 그에게 시선을 돌리며 장장 6개월 만에 인사를 나눴다.


“Hi, how are you?(안녕, 잘 지냈어?)”


오랜만에 본 그는 여전히 멋있었고, 귀여웠다. 짜증나는 구석도 여전했지만 그것 역시 그를 사랑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형식적인 이야기를 길게 나누었고 나는 잠깐씩 진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물론, 좋아하는 마음은 최대한 마음 한편에 숨겨 둔 채로. 파티가 정리될 즈음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는 이따금씩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충실히 답했다. 그렇게 시간은 빛처럼 지나갔고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본 채 손을 흔들다 말고 나는 마음속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짝사랑이 왜 이래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