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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Dec 19. 2024

유연함을 배울 시간

한 달간의 무기력증에서 탈피하다

무기력증을 달고 살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약 한 달 전부터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감각이 내 몸 안에 퍼지는 일에 익숙해져 결국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는 습관을 들이게 된 것은. 원래도 일을 미리미리 끝내 놓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휴학을 시작한 후부터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최대한 빨리 그 일을 마치는 데에 익숙해진 터라 급격하게 바뀌어 버린 나의 상태에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어떠한 이유에서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일단 미루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미루는 것은 나의 성정에 맞지 않았기에 해당 자료를 틈틈이 붙들고 있었지만 마감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오기 전까지 유의미한 진전 같은 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영어 캠프 자료를 제작하고 있었는데 영어 수업 자료가 아닌 야외 수업 시 이동 동선을 어떻게 짤 것인지에 관한 자료를 만드는 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참고 자료를 봐도, 검색을 하거나 담당 관리자에게 질문을 해 봐도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 자료를 만드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만드는 동안 즐겁기까지 했지만 후자의 경우 반대의 상황만 펼쳐졌으므로 자료 제작하는 데만 기가 빨려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의 주말은 어째선지 유의미한 활동을 하지 않음에 초점이 맞춰졌고 그 다음 주에는 3일 연속의 근력 운동으로 정신력 회복을 이끌어 내려 했던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몸살 감기에 걸리고 말았고 그쯤에서 번아웃을 의심하게 됐다. 우울한 주말은 그 주에도 이어졌고 새로 맞이한 평일에 다시 일어서려 노력했지만 주말만 되면 어김 없이 무너졌다. 꾸준히 책을 읽고, 한 권의 독서가 끝나면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자주는 아니어도 종종 요리와 운동으로 나를 챙기는 일도 잊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나 보다. 아니, 애초에 그것들로 충분할 수가 없었다. 내 몸과 마음을 무기력으로 휘감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진로 고민에 대인 관계 고민까지 한번에 들이닥쳤다. 아마도 내 중심을 잃어 버린 탓에 외부적인 일들에 쉽게 민감해지고 감정적으로 변한 탓일 터. 그러면서 과거의 일들까지 다시 소환되어 결국 자기혐오의 길로 빠져들고 말았다. 나의 우매함, 허영심, 오만함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괴롭고 힘든 순간이 와도 나를 부정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는데 이토록 나의 안 좋은 면만 들여다보고 있게 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정말 단지 자료 제작하다가 매번 막히기만 한 이유가 다였을까?


사실 난 그런 줄 알았다. 그렇게 여러 번 나를 좌절시킨 자료 제작의 일은 한 번의 피드백 과정을 거치고 나서도 자꾸만 미루게 되었고 그래서 연말을 무기력, 그리하여 형성된 우울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일로만 채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작 그동안 나는 계속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일상 루틴을 복구하고자 매번 노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의미 없이 흘려 보내는 주말 동안에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아늑한 침대 위에서 보드라운 이불과 함께 누워 있는 행위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지만 새벽 외의 시간에도 온종일 그러고 있는 것은 썩 건강치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일 내리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다 마침내 그 어디에도 의무적으로 나가야 하는 일이 없는 날이 되면 그저 아무 생각도, 아무 행동도 하고 싶지 않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토요일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일요일에는 불안감에 몸부림치며 생산적인 활동을 조금이라도 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 이렇게 쓰고 보니, 자기 계발의 괴물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좀 씁쓸하다.


그런데 오늘 어떤 선생님과 대화를 길게 나누면서 그것만이 이유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내게 많은 깨달음을 안겨 주신 선생님은 약 3년 전에 교내 언어교육원에서 수강했던 토익 수업의 강사님으로, 영어 교사가 되고 싶다는 -찰나의- 꿈이 생겼을 무렵 문득 선생님이 떠올라 같이 밥 한 끼 하고 싶어 연락을 드렸던 것이 오늘 만남의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과 근황 얘기를 주고받다 내가 최근에 무기력증에 걸렸단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그간 내게 있었던 모든 일을 털어놓게 되었는데 선생님의 관점으로 봤을 때 내 무기력증의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앞으로의 계획에서 중심에 있었던 일을 온전히 나의 실수로 그르치게 됐던 것.


원래 나는 소프트웨어공학과로 3학년 전과 복학할 생각이었다. 호주에서부터 계획했던 일이고 워낙 굳건하게 다짐했던 일이라 다른 경우의 수는 생각해 놓지 않았었다. 그런데 귀국하자마자 영어를 쓸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겨울 방학에 진행되는 외국 영어 캠프 영어 강사 자리에 지원하게 되었고 전과 일정이 그 캠프와 동일한 1월에 진행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같은 시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에 구직 + 교환학생 준비 + 토익 공부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J인 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캠프에 합격하고 나서도 충분히 취소할 수 있었지만 그 무렵에는 브런치 연재 + 영어 말하기 대회 준비 + 교환학생 면접 + 학원 강사 일 등 여러 일이 있어 일정이 그렇게 꼬인 것을 여전히 인지하지 못했다. 사실 취소할 수 있었던 시기에 인지했지만 당시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 학사관리과와 해당 과사에 전화해서 면접 일정에 대해서 양해를 구해 보고 학과장 -으로 추정되었으나 사실 아니었던- 님께 메일로 사정을 말씀 드려 봤지만 결국 안 된다는 거였다. 찾아보기로 해당 과는 전과 시에 시험이 없다고 나왔지만 교수님 말씀대로 시험이 있는 거라면 한국에 있지 않는 한 당연히 난 지원이 불가했다.


전과를 하지 못한다면 복수전공으로 하면 됐지만 그러면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본전공-사학과-의 남은 학점까지 채움으로써 졸업이 더 늦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적잖게 받았다. 그래도 전과를 하지 않는 대신 이미 가지고 있던 교직이수를 통해 졸업 시 교원자격증을 얻을 수 있어 졸업이 곱절로 늦어질 수는 있어도 일자리의 기회는 넓어지므로 이쪽도 마냥 나쁘진 않은 선택지이기는 하다. 꼭 교직이수를 가지고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10대의 반절을 역덕으로 보냈던 만큼 역사학도의 마무리를 제대로 지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일정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지 않은 실수를 통해 정말 중요한 교훈을 이번에 배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일정을 더욱 꼼꼼히 확인해서 그것이 중복되는 실수를 결단코 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


지금에야 전과/복전 문제가 커 보이지만 나중 가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경험 많이 했으니 졸업이 늦어지는 것은 감수해야 하나 이 또한 나중 가면 다 똑같아진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지금까지는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고 또 그것이 통하는 순간을 주로 맞으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세상의 굴곡에 부딪힘으로써 유연성을 배울 차례라고. 살아 보니 어떤 분위기에든 잘 녹아들어 사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고, 그 사람들은 그 어떤 실패를 맞아도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식으로 금방 일어난다고. 그러니 너도 무기력에 빠져 너 자신을 갉아먹고 있을 게 아니라 이제는 문제 해결에 집중해 보라고. 결국 내가 지금 키우고자 노력할 것은 ‘회복 탄력성’이었다.


호주에서는 높았던 회복 탄력성이 한국에 돌아와서 낮아진 이유까지도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다른 것을 쥐기 위해 놓은 것(전과)에 집중하느라 실제로 쥐고 있는 것(해외 영어 캠프)에 집중하지 않으면 그건 잘못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전과 대신에 가게 된 이번 캠프에 대해 좀 설레하길 바란다고. 호주에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 결정한 문제에 대해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걸었다. 그래서 전에 선택할 뻔했던 사안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일 따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한 달 동안은 그 반대로 살았다. 짧게 생각하고 선택해서 계속 뒤를 돌아보았고 결국 그 선택을 하기 전으로 돌아가기를 몇 번이고 바라게 되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분명 이번 실수에서 얻는 것이 있을 것이고, 오히려 이렇게 되어서 말도 안 되게 좋은 점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거기서 하게 될 일들, 만날 사람들, 마주할 순간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더없이 자랑스러운 내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선생님께서는 결과가 나의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기대했던 만큼 못할 수도 있고 그만큼 해 낼 수도, 그보다 훨씬 더 잘해 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온전히 너의 것이 결코 아니라고. 결과가 좋든 나쁘든 간에. 그러니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고 하셨다. 결과는 나의 몫이 아니라 상황의 몫이니까. - 이 부분이 특히 기분 좋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과가 내 것이 아니라니. 처음 들어 보는 조언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하나 더 생긴 기분이다. - 결론적으로 나는 정말 어린 나이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아 앞으로 해야 할 게 많겠지만, 나는 충분히 다 하고도 남을 아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새삼 휴학생으로서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값지게 시간을 보냈는지 여실히 느껴졌다. 그래, 내 삶은 이토록 감사한 일로 가득찼었는데. 이걸 또 잊고 살았었구나.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일어나는 게 죽기보다 싫을 정도로 기상이 힘들었다. 그래서 무기력의 굴레에 더 깊게 빠진 기분이었는데 그것이 사실은 반동의 징조였다는 것이 나를 미소짓게 만든다. 회복은 늘 그렇게 고통의 최고점에서부터 시작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온몸으로 부르짖는 순간, 삶은 언제나 그렇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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