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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늘 Jul 01. 2024

250701

내가 사는 이유

짐을 쌌다. 웅동의 매캐한 매연이 손에 묻어 나오는 듯하다. 이 공장단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처음 활동복을 입고 정식 소방관으로 임용되던 그날을 떠올렸다. 2년 하고 반년 전, 그때 난 엄청나게 헤맸다. 컴퓨터가 낯설고, 키보드가 어렵고, 커서가 두려웠다. 핸들을 잡고 센터로 향하는 아침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건지, 내가 이상한 건지, 세상이 이상한 건지 묻고 또 물었다.

그래도 상황은 점차 나아졌다. 해답은 시간이었다. 동기 형님은 "사람이 하는 일은 사람이 배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니 맞는 말이었다. 사람이 만든 시스템, 프로그램, 규율과 법칙들, 그건 사람이 만들었기에 나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도 똑같은 사람이니까. 다만,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난 모르면 해보고, 또 해보면서 업무를 점점 손에 익혔다. 숨을 고르고 하루를 천천히 버텨내니 하루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적응이 되니 업무 너머의 것이 보였다. 난 아무리 봐도 앉아서 무언가 하는 체질이 아니었다. 우선, 못했다. 난 지독하게 컴퓨터 작업을 못 했다. 그에 비해 내 사수는 척척 잘했다. 숫자를 만지는 도급 업무도, 윗사람과의 사람 관계도,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난 못 하는 걸 잘하려 하기보다 잘하는 걸 더 잘하자고 다짐했다. 난 남들보다 신체가 조금 더 건강하니, 현장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자. 그것이 나의 소방 생활 첫 다짐이었다.

'컴퓨터 앞에선 바보라도 현장에선 믿음직한 동료가 되자.' 그 문장을 쫓다 보니 부산소방학교에 와있었다. 전국에서 온 구조대원들과 함께 3주 동안 뼈 빠지게 수영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찰수록 오히려 살아있음을 느꼈다. 허우적거리며 물을 마실수록 입 속엔 독기가 가득 찼다.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는 확신이 들었다. 현장에서 믿음직한 동료가 되자는 문장은 곧 최고의 구조대원이 되자는 문장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공채인 난 구조대원이 되기엔 모자랐다. 내 간절함은 냉정히 말해서 나 혼자만의 일이지, 다른 이가 봤을 때 구조대원이 될 수 있을 당위성을 제공해 주진 않았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고개를 끄덕거릴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인명구조사 시험을 준비했고 잘 마무리했다. 그리고 오늘 구조대원이 됐다.

삼십 년째 내 머리 손질을 맡아주는 미용사인 어머니는 오늘도 내 머리를 다듬어줬다. 구조대 첫 출근에 조금이라도 잘 보이라는 마음이었다. 어머니는 넌지시 물었다. "거기 위험한 건 아니가?" -출동이 좀 더 많아요. "어디 막 들어가고 그런 건 아니제?" -막 위험하게 들어가지 않아요. 대충 얼버무린 답변엔 촌스러운 자긍심이 묻어있었다. 난 철없이 설레기만 했다.

웅동 센터의 첫날이 떠오른다. 난 그때로, 아무것도 몰라 막막하던 그때로,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 듯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막막함은 매한가진데, 오늘의 막막함은 어찌 이리도 청량하고 두근거리는지 모를 일이다. 난 오늘 하루를 오려 가슴에 붙인다. 오늘을 두고 오래도록 추억하고, 깊이 그리워할 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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