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찾아오는 삶의 의문을 해결하며 자랐다. 살아간다는 건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단 하나, 풀리지 않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의문이 삶을 지배했으니 평온하지만 평범하게 살지는 못 했다. 나의 두려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두려움은 인생 전반을 지배했다. 새로운 관계에 긴장하고, 급격한 접근에 물러났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헤어지는 경험이었다. 헤어질까 두려워지면 일도 관계도 시작을 거부하곤 했다.
나는 본디 그녀와 한 몸이었다. 그녀의 중심을 차지하고, 음식을 나눠 먹고, 안전한 보호막 안에서 둥실 유영하며 살았다. 세상에 나와 엄마를 찾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들을 낳길 바라는 장남이며, 종손인 아빠의 눈빛을 읽었을까. 아빠를 밀어내고 오직 엄마에게 붙어, 떨어지기라도 할까 기겁했다 한다. 빨래, 설거지, 그 옛날 재래식 화장실에 갈 때조차 엄마는 나를 업고 있었다.
나들이 가서 꽃반지를 만들어 주고, 퇴근 후 지친 몸으로도 인간 놀이기구가 되어 나와 동생을 번갈아 태워주던 사람은 아빠였는데. 생의 찰나와 같은 날의 일화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기억의 시작점부터 아빠는 다정했다. 기억에 없는 한 살의 나는 왜 아빠를 밀어냈을까. 아기 때 나의 태도에 아빠가 서운했다는 장난을 할 때면, "아빠가 아들을 원하고 고모들도 나를 싫어하니까 엄마만 찾은 거지." 라며 매정했던 나의 한 살을 옹호했다. 내 탓이 아니라며 앙칼지게 말해놓고는 까닭 없이 서러워지기도 했다.
기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관계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찾을지. 스스로를 나무라던 마음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어떤 계기가 있을지도 몰랐다. 원인을 찾고 싶었다.
인생 전반을 서울에서 사는 나의 출생지는 서울이 아닌 부산이다. 부모님은 사업을 위해 부산으로 이주하여 나를 낳았다. 1년도 안 되는 그 기간, 거래처의 부도로 사업은 뜻대로 안 되고 부모님은 힘든 시기를 보냈다. 부모님의 부산 이동으로 어쩔 수 없이 서울 고모댁으로 가신 할아버지는 내 이름을 지어주고, 장남이 낳은 아이를 간절히 보고 싶어 하셨지만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에야 우리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다. 받을 돈을 못 받고, 결국 사업이 망해서 다시 찾은 서울은 할아버지가 없는 타향이었으리라.
고모는 할아버지 살아생전에 아이 한 번 데려오지 않았다고 부모님을 원망하셨고, 나는 고모들 사이에 할아버지의 죽음을 투사하는 대상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사셨다. 그 시대는 아들이 부모를 모시는 것을 당연시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딸네 집에 머무는 것이 수치스러웠을 할아버지,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원칙을 부여했고, 아버지가 정한 때가 되자, 스스로 그 원칙에 자신을 맡겼다. 지병인 당뇨를 앓던 아버지는 어느 때부터 술을 놓지 못하고, 점점 말라갔다. 병원을 권유했지만 끝내 거부하시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다.
알코올 중독이 몇 개월 만에 사람을 망가뜨리는 허망함을 받아들일 수 없던 때, 아버지의 유품 속에서 병원 영수증과 질병 안내서 두 개가 나왔다. 두 개의 심장병 안내서에는 불규칙한 심장 박동, 언제 멈출지 모르는 심장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었다. 병원 영수증에 적힌 날짜는 아버지가 술을 잡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했다. 그때 알았다. 어려웠지만 말하지 않았고, 아팠지만 말하지 않았던 이유, 아버지는 오로지 그것을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원칙이었고, 그 결과는 엄마가 외출 후에 돌아와서 마주한 아버지의 주검이었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안다. 부모의 표정이나 말이 아닌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느낀다. 아이의 행동에 화가 치미는 걸 참고 상냥한 말로 다가가면 아이가 대신 분노한다. 분리된 상처가 있는 부모는 아이와 긴밀한 접촉을 두려워하기에 아이는 부모에게 더욱 매달린다.
관계, 헤어짐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내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상처 받은 부모는 자신도 모르게 같은 상처를 아이에게 대물림한다.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던 아버지의 행동은 오히려 고스란히 나에게 대물림되었다. 이제야 알게 된 아버지를 나의 글에 투영하려고 한다. 대물림된 상처를 내재한 내가 아버지에 대한 연민에 매달리는 것은 겹겹이 쌓인 상처를 끌어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는 마음, 이별의 슬픔이 형벌처럼 가슴을 조이던 시기를 지나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제야 아버지를 놓아드린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퍼.", "손 잡고 걸으니까 좋다." 눈물 고인 얼굴, 웃고 있는 얼굴 그대로, 나를 보며 묻고 있는 아이의 눈빛에 내 마음이 어떤지를 그대로 표현한다. 비록 온전히 치유하지 못하고 아이를 만났지만, 이별의 상처를 마주한 모습을 보였지만, 엄마가 상처를 꺼내 세상 밖으로 던져내는 과정을 아이는 보게 될 것이다. 두려움에 움츠렸던 엄마가 날개를 펴는 모습을 보는 것만이 두려움을 물려받은 아이의 상처를 소멸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