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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븐 Sep 17. 2021

선택

오늘도 나는 선택한다

단 1유로의 차이가 결정을 좌우했던 첫 유럽여행 당시 저렴하게 끼니를 때우기 위해 들렀던 마트 안 푸드코트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주문한 후 많은 생각을 했다.


여행 떠나오기 한 달 전 퇴사한 회사에서 ‘다들 오늘 점심은 쌀국수로 통일?!’이라 외치시던 상사의 말에 군말 없이 좋아하지도 않는 요리를 먹으러 들른 베트남 음식 전문점에서 바쁜 점심시간 먹지 못하는 고수를 빼 달라는 이야기가 누가 될까 하지 못했던 나에게 유럽 마트 직원이 건낸 ‘빵은 뭐로 할래?’, ‘토핑은 뭐로 할래?’, ‘드레싱은 뭐로 할래?’, ‘잘라 줄까?’란 온갖 선택지는 가혹하게까지 느껴졌다.


어렵사리 주문을 마치고 샌드위치를 한입 두입 베어먹으며 생각했다.

‘나에게 충분한 선택이 주어진 적이 있었나?’, ‘나는 정말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있었구나’, ‘선택에 대한 책임을 그저 타인에게 전가하며 살았구나.’


충분한 선택이 주어지지 않았단 생각을 한 것은 김밥천국에 밥을 먹으러 갔을 때를 떠올려보았을 때 적혀있는 메뉴를 고르는 선택이 전부였지 된장찌개에 좋아하지 않는 애호박을 빼달라는 선택을 할 순 없었다.

학창시절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야자를 하고 싶지 않아도 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주도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부족했기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할 수가 없게 되고 그저 타인에게 나의 선택권을 쥐어주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줄곧 나의 선택에 대해 누군가를 혹은 이 세상을 탓하곤 했었다.


샌드위치를 다 먹자마자 결심했다.

앞으로는 나에게 좀 더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주체적으로 신중한 선택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본인이 질 것이라.


그 후로 가게 된 모로코 여행 중 묵은 호스텔에서 사귄 친구들의 여행 제안을 거절하고 카사블랑카행 버스를 탄 것, 한국에 돌아와 국내 취업 대신 해외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한 것, 더블린에서 성추행을 하던 직장 동료를 고소한 것, 결혼 대신 또 다른 해외 취업을 선택한 것, 멜버른에서 코로나 때문에 발목 잡혀 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한국에 돌아와 내 가게를 차린 것, 오늘 글을 쓰기 위해 어떤 플랫폼이 좋은지 찾아보다 브런치를 선택한 것 등등…

샌드위치를 소화시킨 덕분에 오늘날까지 내가 할 수 있었던 후회 없는 선택들이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선택지가 생길 것이고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다른 한쪽에 대한 후회와 선택한 쪽의 결과를 따라야 하는 책임감도 생길 것이다.

후회 없는 삶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래도 후회 없는 선택을 했다 말할 수 있도록 그때의 다짐을 다시 떠올려보며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좀 더 나를 온전하게 만들자며 내 자신을 한번 더 타일러본다.


(사진은 2014년 봄 다녀온 모로코에 사하라 사막, 나는 아직도 그때 본 사람이 어린 왕자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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