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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디오키드 Sep 18. 2021

가끔은 외롭다고 말해도 좋아

김현정 <나만 없는 집>


 형제, 자매 그리고 남매로 태어난 사람들은 한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엔 서로 남보다 많이 싸우고 미워하며 자랐다. 한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는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내면서 가장 큰 적이 되는 형제자매 관계는 정말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부모님이 누구는 해주고 자신은 안 해준다며 질투와 서운함에 서럽게 울어본 기억도 많을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그럴 때마다 혹시 내가 주워온 자식이 아닐까 하는 ‘소외감’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처럼 영화 <나만 없는 집>은 걸스카우트에 가입하고 싶어 하는 막내 세영이 가족들과의 갈등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모습을 90년대 배경과 함께 보여준다. 어린 세영은 자신이 원하는 걸스카우트에 가입하고 가족들에게 느끼는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


     

 

막내의 비애


     

 

 오프닝 시퀀스에서 아침밥을 먹는 세영과 달리 우유 한 잔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엄마와 아예 먹지도 않고 등교하는 언니 선영의 모습이 보인다. 세영이 가족들과는 무언가 조금 다른 느낌을 들게 해준다. 같은 옷을 입었다고 세영에게 짜증을 내는 선영의 모습으로 우리는 그녀들이 여느 자매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끼게 된다. 세영과 선영의 모습은 선영을 앙각으로 세영을 부감으로 보여주어 자매의 위계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둘의 키 차이와 프레임 안에서 표현되는 선영의 위압감과 세영의 위축된 모습은 이를 더 강조한다. 세영이 생활하는 모습을 움직이면서 찍기보다는 카메라를 고정하고 촬영하는 방식을 보여주는데 이는 우리가 막내로 살아가는 세영의 모습을 관찰하듯 느끼게 되어 그녀가 느끼는 ‘소외감’을 더욱 극대화해준다. 홀로 TV를 켜둔 채 전화기 앞에서 야근하는 엄마의 전화를 기다리거나 어두워진 창밖을 바라보는 세영의 모습은 무척이나 외롭고 안쓰러워 보인다.


     

 

언제나 언니보다 낮은 번호표


     

 

 항상 언니에게 모든 걸 양보하며 살던 막내 세영은 걸스카우트에 가입하고 싶어 한다. 언니가 오기 전에 몰래 언니의 걸스카우트 단복을 자신의 몸에 갖다 대보며 거울을 바라보는 모습은 세영이 언니처럼 걸스카우트가 되고 싶은 열망을 드러낸다. 학교에서 받은 걸스카우트 신청서에 자신 있게 사인하며 가입할 거라고 친구들 앞에서 호언장담한 것과는 달리 엄마는 안 된다는 말 한마디뿐이다. 가족들은 저마다 귀찮은 듯이 행동하며 세영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세영이 홀로 있는 모습을 프레임 인 프레임을 통하여 그녀가 마치 갇혀있는 듯한 느낌을 느끼게 해준다. 이를 통해서 세영이 겪고 있는 ‘소외감’을 시각적으로 드러내 준다. 걸스카우트 회비를 만들기 위해 세영은 준비물 사라고 받은 용돈을 쓰지 않고 그녀가 아끼는 상자 안에 담아두고 장롱 밑을 뒤지거나 저금통에 있는 돈을 젓가락으로 빼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걸스카우트를 홀로 가입하지 못하는 세영과 걸스카우트를 가입한 아이들을 대치하듯 배치하여 걸스카우트를 가입하지 못해 무리에서 떨어져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마저 ‘소외감’을 느끼는 세영의 상황을 보여준다. 왜 걸스카우트에 가입하지 않냐는 친구들의 사이로 보이는 세영. 아마도 그녀는 ‘소외감’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못한 부담감까지 안고 가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등교할 때는 조용하고 올라가 있던 철도건널목 차단기가 걸스카우트 가입을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하굣길에는 시끄러운 종소리와 함께 차단기도 내려가 있다. 원하던 걸스카우트 가입에 실패하자 슬픔과 실망스러움으로 가득한 세영의 감정을 대신한다. 차단기에 적혀있는 갇혔을 때 돌파하세요. 라는 문구는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세영이 고립된 상황에서 이겨내길 바라는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왜 나만 안돼?

     

 세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걸스카우트 가입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만다. 어두운 방문 너머로 엄마에게 조르며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어내는 선영과 그것을 허락해주는 모습을 세영은 하염없이 바라만 본다. 밝은 거실과 다르게 어두운 방은 선영의 부탁은 들어주는 엄마에게 느끼는 실망감과 동시에 ‘소외감’을 느끼는 세영이 마치 홀로 동굴에 덩그러니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녀가 택한 마지막 방법은 언니의 걸스카우트 옷을 훔쳐 입고 입단식에 가는 것이다. TV 속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놀던 세영은 입단식에서 만난 같은 옷을 입은 친구들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던 세영은 선영과 마주치게 된다. 자신의 옷을 훔쳐 입은 동생이 미운 선영과 양보를 하지도 않고 엄마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 같은 언니가 미운 세영. 둘은 결국 거친 욕설과 함께 몸싸움한다. 핸드헬드로 촬영된 몸싸움 장면은 그동안 감추었던 ‘소외감’으로 상처받은 세영의 감정이 폭발하는 모습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나도 있는 집?


 

 서로 안 볼 사람처럼 싸우고 세영이 찾아간 곳은 엄마의 일터다.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는 엄마와 세영은 마주한다. 엄마가 준 요구르트와 머리를 묶어주는 것에 위로를 느끼는 모습은 마냥 어린아이 같지만, 걸스카우트 회비를 내기 위해 엄마 지갑에 손댔지만 내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우는 모습은 너무 빨리 철이 든 것 같아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거실에 홀로 누워있는 세영 옆에 선영이 가방을 베게 삼아 눕는다. 항상 비대칭적으로 보여주었던 자매의 모습이 이때만큼은 대칭성을 띠며 수평적으로 변한다. 항상 상하 관계로 보여진 자매의 모습이 언니 선영이 세영 곁에 누우며 항상 높기만 했던 그녀가 세영과 눈높이를 맞추며 세영을 이해하려는 모습처럼 느껴진다. 물론 선영은 심부름을 시키고 홀로 나가버리는 일로 마무리되지만 자매의 가벼운 입맞춤은 그동안 세영이 느꼈던 ‘소외감’을 풀어나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추억이던 그때 그 시절


     

 

 영화 속 배경이 90년대인 만큼 미장센에서 디테일한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문지방이 높은 집의 모습이나 공기와 같은 장난감은 그때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을 살려주는 역할을 도와준다. 예전 걸스카우트 단복이나 TV 속 나오는 애니메이션 그리고 그때의 학교 시절의 모습들은 영화를 보는데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시대가 지나도 잘 변하지 않는 보편적 통념인 ‘가족’에 대해 전개되는 이야기는 관객을 쉽게 영화에 몰입되게 만든다. 형제, 자매 그리고 남매가 없어도 누구나 어린 시절 느껴본 적 있는 ‘소외감’이라는 감정을 세영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녀에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나만 없는 집>은 가족 안에서 막내가 겪는 ‘소외감’에 주목했다. 독특하게도 영화의 첫 컷과 마지막 컷은 동일하다. 하지만 우리는 세영의 삶을 체험했기에 두 컷이 굉장히 다르게 다가온다. 여전히 집에 홀로인 것은 변함없지만 엄마에게 받은 위로와 까칠하지만,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려 했던 선영의 모습을 통해 세영은 ‘소외감’을 차차 이겨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실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나 또한 집에서 막내로 자라왔기 때문에 세영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첫째이기 때문에 모든 책임감을 떠맡아야 하는 상황도 있다.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어린아이가 겪는 ‘소외감’은 우리의 생각보다 아이에겐 정말 큰 일일 수도 있다. 현재도 여전히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가족들과 함께 해결하며 성장해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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