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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그래 Jun 19. 2024

기분 좋은 놀라움

손(手)이 손(客)에게 (1)

If you come at four o'clock in the afternoon, then at three o'clock I shall begin to happy.
from the little prince (Le petit prince)


 11월의 늦은께. 느닷없이 눈이 왔다. 눈이 올 것이란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한 시간 전부터 기뻤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쁨이 지금의 불안을 덮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아 그랬다면. 그럴 수만 있었다면! 


애니: 오늘 약속을 취소해야겠어. 내가 시간을 못 맞출 것 같아. 미안.

그래: 아 진짜? 아.. 나 오늘 너 꼭 만나야 하는데...

애니: 왜 무슨 일인데?

그래: 알.. 겠어. 너야말로 무슨 일인데?

애니: 고객이랑 같이 식사하기로 했어. 너도 알잖아. 이번 건 중요한 거. 그리고 혹시 알아? 오늘 밤에 눈이 올지도.

그래: 그럴 리가 없잖아... 그냥 만나기 싫으면 싫다고 해라.

애니: 왜 이래? 나 감 좋은 여자야. 그나저나 오늘 눈 오면 진짜 대박. 호호.

그래: 나 진심 상처받았다. 물어내!

애니: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알겠어 알겠어. 곧 보자. 내가 밥살게!

그때 멀리서 "애니씨 가시죠!"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아 쫌! 됐고. 그럼 미팅 잘해라. 잘돼서 부자 돼서 배 터지게 잘 먹고 잘 살아라.

애니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뒤 전화를 끊고 고객을 향해 달려간다.


 그 해의 첫눈을 같이 맞으면 함께 있는 사람과 사랑이 이뤄진다고 굳게 믿는 그녀(애니)는 그래의 이상형이지만 그래는 애니의 이상형이 아니다. 그래는 바람맞은 날엔 북적이는 성수동이 최고라 생각하며 지하철 2호선에 오른다. 그리곤 뚝섬역에서 내릴까 성수역에서 내릴까 망설이다 결국은 뚝섬역에서 내린다. 그래는 걸으면서 생각한다. 


'또 제자리군.'     


 그래는 성수동을 좋아한다. 성수동에 제자리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있었던 것이 이번 주엔 없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그래는 팝업이라는 시대의 트렌드에 의문을 갖는다. '아니 도대체 만들어 놓고 왜 없애는 것인지? 지난번에 왔던 곳인지 아닌지 이렇게 헷갈려서야.'라고 구시렁거리던 찰나, 그래의 눈에 붉은 벽돌의 건물이 들어온다. 


'아, 아는 건물이다.'


그래가 지난주에도 애니한테 차인 뒤 왔던 그곳이다. 포인트 오브 뷰. 줄여서 포오뷰라는데 그래는 귀엽게 굴려진 '오'발음이 명랑해서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 포. 오. 뷰.


그래는 소리 내어 말하다가 금새 머쓱해진다. 실웃음도 나왔다. 


'나란 사람, 이 상황에서 웃는 걸 보니 제대로 미쳤나 보다.' 


 그래가 반대편 건물 쪽에서 포오뷰를 바라 보니 지난주에 방문했던 1층에는 유난히 사람이 많다. 그래서 그래는 2층에 올라가기로 결심한다. 좌우로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직활강을 하듯 길을 건너와 건물 안에 들어선 그래. 한결 조용해진 그 공간에서 그래는 계단을 향해 위로 한 걸음씩 발을 옮긴다. 그런데 발을 옮길 때마다 잔잔향 향이 밀려온다. 


'아니 그럴 리가?'


이 향기는. 그래가 기억하는  향기다.


To be continued... 


*사진 속 제품: 희녹 핸드밤과 포오뷰 Dome Paper W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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