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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천 Oct 31. 2023

욕망의 뽀드락지②

오피스별곡 시리즈 13회차


 만약 K가 과거에 그런 얘길 했다면 그는 그 자리에서 동료들에게 맞아 죽었을지 모른다. “무슨 개소리, 헛소리냐”는 욕을 먹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K는 더 이상 과거의 쭉정이 찐따 K가 아니었다. 황당한 그의 얘기엔 이상하게 힘이 실려 있었고, 사람들을 그런 가당찮은 설명에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심지어는 다들 소주잔을 맞부딪히며 “맞아. 그런 일도 있긴 하지.” “그러게. 참 이상하지만 잘된 일이네.” “아무튼 축하해”라고 칭찬까지 하는 게 아닌가.      


 K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모두 그를 믿어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게 그의 비밀이고 능력이라는 것을. 그러나 누구한테도 그 진실을 말할 수 없고, 말한다 한들 누구도 믿어주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사실 K가 얼버무린 그날의 진실은 그의 취중발언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가 후일 뜻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직후 공개된 일기장에 담긴 그날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K가 그날 숙소로 혼자 돌아간 것은 맞다. 숙소로 죽으러 들어간 것도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죽음처럼 적막한 숙소로 들어가며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내가 여기서 죽어도 아마 아무도 모를 거야. 내일이면 다 잊히겠지. 괴로운 인생 그냥 여기서 끝내자”  

 그러나 K가 손목을 그을 칼을 찾아 부엌으로 가는 동안 그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길에 뭔가가 물컹하게 와 닿았던 것이다. 취해 쓰러져 자는 사무실 동료 A였다. A가 누구인가. 훤칠한 미남에다 최근 좋은 성과로 사내에서 가장 촉망받고 루키이고, 뭇 사내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인기남 아닌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멋진 노래와 춤 솜씨로 여직원들의 혼을 쏙 빼놓고 남자동료들까지 술로 녹여냈던 사내 인싸 스타다. 그러더니 소리도 없이 숙소에 들어와 잠시 쉬고 있는 것이다.  K는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될 순 없을까’ '죽었다 깨어나도 그럴 일은 없겠지' 'A는 좋겠다. 다 가져서' K는 갑자기 더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죽는 것조차 힘들고 귀찮게 느껴졌다. 신나게 놀다가 쉬고 있는 A와 비교하니 자신이 더 찌질하고 못나게 생각됐다. 모든게 다 의미없어 보였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바로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게 바로 A의 목덜미, 정확히는 그 목덜미 위에 나있는 작은 종기, 뽀드락지였다. 밤톨만 한 크기의 날씬한 종기. 언뜻 보면 모낭충이 피부를 뚫고 나온 모습의 귀여운 종기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뽀드락지가 보이다 말다 했다. 있는 듯 없는 듯했다. 가늘게 눈을 뜨면 형체가 보이는데 다시 크게 눈을 뜨고 보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지. K는 눈을 비볐다. 그리고 실눈을 떴다 부릅뜨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뽀드락지는 보였다 안보였다를 반복했다.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K는 술이 확 깨는 걸 느꼈다.        


 그는 오랜만에 뭔가가 안에서 스멀스멀 나오는 걸 감지했다. 궁금증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A의 기척을 살폈다. 세상 모르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A의 목덜미 쪽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뽀드락지를 만져봤다. 이상했다. 예상했던 느낌이 아니다. 잘 버무려 방금 만든 도토리묵처럼 탱글탱글했다. 더 이상한 것은 만지만 만질수록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만지다 튕겨봤다. 이상하게 뽀드락지가 그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다고나 할까. 그 움직임이 마치 자신에게 말을 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설마’      

 K는 덜컥 겁이 난다. 이제 마흔도 안돼 정신이 나갔나라는 걱정이 들었다. 힘든 하루 때문에 이제 헛것까지 보이나 싶었다. 아니면 꿈인가. 그래서 볼을 세게 한번 꼬집어 봤다. 아팠다. 이번엔 뺨을 때려봤다. 역시 아프다. 다시 뽀드락지를 만져봤다. 움직였다. 믿을 수 없었다. 다시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뭐가 있을까.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오줌을 눠봤다. 꿈이 아니었다. 고추 끝에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오줌발. 그중 한 갈래가 정확히 그의 바지 단에 묻었다. 평소 그대로였다. 바지를 털털 털며 그는 이상한 욕망에 휩싸였다.      


‘아 저 뽀드락지를 갖고 싶다’     

 자리로 돌아온 K는 이제 새벽처럼 멀쩡해졌다. 그는 A 씨 등 뒤로 곧추 앉았다. 그리고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A 목을 뚫어져라 꼬나봤다. 그 순간 누가 그 광경을 봤다면 K로부터 엄청난 살의殺意를 느꼈으리라. 죽여서라도 원하는 것을 꼭 갖고 싶다는 욕망을 말이다.      


‘저걸 당장 떼어내 말아’

‘뗀다면 어떻게 떼내지’

‘떼어서 나한테 붙일 수 있을까’

‘그다음은’     


 K는 머뭇거렸다.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나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마음속에선 무슨 수를 써서든 뽀드락지를 갖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지만 사실은 머뭇거리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완벽하게 먹이를 덤칠지 계산하며 기회를 엿보는 맹수들의 노림이라고나 할까. K는 그렇게 한참을 A 등 뒤에서 버티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뽀드락지는 교묘히 몸을 꼬며 출렁이기 시작했다. 어서 날 떼어내 가지라는 유혹의 몸짓처럼 말이다. 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두툼한 손을 뻗어 뽀드락지에 손을 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손이 뽀드락지에 닿자마자 그것이 생물처럼 껑충 뛰어 그의 손 위로 발딱 올라앉는 게 아닌가. 그리고 곧바로 손을 타고 번개같이 올라가 K의 목덜미에 가서 붙는 것이었다. 그것도 눈 깜빡할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놀랄 틈도 없었다. K는 뒤늦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간신히 심호흡으로 놀란 가슴을 가다듬을 때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뽀드락지가 그의 몸에 붙자마자 갑자기 전율 같은 흥분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기운이 솟구치며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게 아닌가. 그 순간 K는 문을 박차고 숙소를 나갔다. 



3편에서 계속



#오피스 #별곡 #뽀드락지 #모낭충 #조류독감 #쭉정이 #오줌발


삽화=이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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