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별곡 시리즈 13회차
그날 이후 K와 A에 대한 평판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A는 하루아침에 조류독감에 걸린 닭처럼 변했다. 광휘는 사라지고 하루종일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반면 K는 말 그대로 햇살처럼 화사하게 변했다. 그의 눈빛은 윤슬처럼 반짝였고,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웃음은 봄눈을 녹이는 햇살처럼 따사롭고, 그의 손길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의 손끝처럼 우아했다.
그러나 가장 극적 변화는 K자신만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K에게 화장실은 죽기보다 싫은 곳이었다. 축 처진 그것에서부터 새 나오는 가느다란 오줌발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몸을 돌리고 가리는 게 습관이 됐다. 그런데 그날 이후 달라졌다. 오줌발이 어디 내보이고, 자랑하고 싶어 미칠 정도로 힘차게 솟구쳤다. 힘없이 숙인 물건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용솟음치는 로켓이라고 불릴 만했다. 그는 뒷짐을 지고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다. K는 동료들의 목소리만 들어도 뭘 원하는지, 무슨 생각하는지 파악해 정확히 대응했다. 그의 대답에 모든 사람이 원하는 답을 얻은 듯 만족스러운 표정이 됐다. 그전까지 뒤죽박죽 해결난망이었던 수많은 난제들을 K는 마술처럼 술술 풀어냈다. 그의 옆에만 있어도 그 기운에 일이 풀린다는 동료들이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선지자가 된 듯했다. 그가 배고픈 시간에 식사가 시작됐고, 그가 일을 처리하고 싶은 시간에 일이 들어왔다. 그가 원하는 쪽으로 대답이 나왔고, 그가 하고 싶은 쪽으로 일이 미리 진행됐다. 모든 게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마치 전능한 그분이 계속 그에게만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모두가 그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몇 달 새 그는 회사 대표로부터 공개석상에서 칭찬을 받은 후 승진했고, 연봉이 올랐다.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던 결혼 상담도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렸고, 그는 사교계의 기린아로 급부상했다. 돈과 일, 건강과 친구, 연예까지 막힘 없이 풀려 나갔다. 세상이 온통 장밋빛이고, 그 앞에는 꽃밭 길만 놓여 있는 듯했다.
그러나 성공이 확실해질수록 그의 고민도 더 이상 숨길 수 없음이 확실해져 갔다. 뽀드락지 때문이다. 그의 목 뒤에 난 뽀드락지는 이제 더 이상 조그만 모낭충 같은 귀여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날 이후 3년 만에 그가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억대 연봉을 받는 부사장 자리에 올랐을 때 뽀드락지는 이미 누구나 알아차릴 만큼 커져 있었다. 그리고 결혼 후 아이를 낳고 그의 재산이 수십억 원으로 불어 강남으로 이사 갔을 때는, 한때 북쪽을 호령했던 독재자의 그것처럼 크고 흉하게 변해 있었다.
그러나 K는 뽀드락지를 떼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뽀드락지는 성공의 보증수표였고, 그것 없이 성공이 계속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인생 전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둘 수도 없었다. 성공과 함께 뽀드락지도 커지면서 그 존재 자체가 그의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뽀드락지는 이제 성공과 욕심을 먹고 자라는 ‘괴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너무나 커져서 그대로 뒀다가는 생명까지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뭔가 결단이 필요한 때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결정을 미뤘다. 필요한 결단을 생각하면 할수록 뽀드락지에 대한 집착은 커져갔다. 뽀드락지 없이 잘해나갈 수 있을까. 과연 지금까지의 성공이 유지될 수 있을까. 그 후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는 뽀드락지가 갑자기 사라진 후 자신이 그동안 이룬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악몽에 시달리는 신세가 됐다.
4편에서 계속
삽화=이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