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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천 Oct 23. 2023

개썅 마이웨이①

오피스별곡 시리즈 11회차

  

그녀의 별명은 법규(f**k you) 할매. 50대 여자 차장이다. 나이는 엄마 뻘이지만, 나는 그녀를 꼭 할매라 부른다. 억지로라도 나이를 더 먹여 빨리 회사서 보내고 싶어서다. 정말 꼴보기 싫은 존재다. 왜 그렇게 미워하냐고? 어떻게 다 말하나. 이유가 한두 가지여야지. 좋다. 그래도 정리해 보겠다. 우선 목소리가 화통 삶아 먹은 것처럼 크다.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기분 내키는 대로 소리친다.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은 없다. 그래도 느낌상 아마 법규 할매의 목소리와 닮지 않았을까 싶다. 그 소릴 듣고 있자면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말투도 고압적이다. 매사가 지시하는 식이다. 거기다 뭐 해준 것도 없이 말 끝마다 이거 하라 저거 하라 요구하는 게 한도 끝도 없다. 본인이 직접 하면 될 일을 굳이 시킨다. 그리고 지적질. 인격 모독적 발언들. 하나부터 열까지 맘에 드는 게 일도 없다.      


 “**씨, 21대 총선이 몇 년도였지?” 

 “지난번 우리 회사 대한상의에서 100억 원 수출탑 받았잖아. 그때 누가 행사 다녀왔는지 좀 찾아봐.”

 “**씨, 자기는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대학 나온 건 맞아” 

 “대학 때 도대체 뭐 하고 다닌 거야.” 

 “**씨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야.”     


 뭐 항상 이런 식이다. 내가 네이년(네이버)이나 쳇지랄티(챗GPT)도 아니고, 더구나 자기 비위나 맞추는 기쁨조나 개인 비서도 아닌데 항상 이런 식으로 상대를 닦달한다. 꼰대도 이런 꼰대가 없다. 정말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어쩌다 이런 사람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게 됐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이러다 안 되겠다 싶었다. 몇 번 참다가 들이받았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조용히 얘기하고, 서로 성인들끼리 야자 반말 하지 말고, 간단한 것은 알아서 찾으시라고 말했다. 서로 존중하는 사무실 분위기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히스테릭 법규 할매의 책상 앞으로 가서 그렇게 대놓고 얘기했다. 부원들도 다 듣게. 히스테릭 법규 할매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 뭐라 말하고 싶은데 말을 못 하는 것 같았다. 기가 차서? 왓 에버!! 


 그런데 그다음에도 똑같았다. 똑같이 강압적으로 지시하고, 무시하고, 기분을 상하게 했다. 한번 더 얘기했다. 존대어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고압적 말투도 고쳐달라고 했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았다. 여전했다. 개전의 기미가 없었다. 그래서 깔끔히 포기했다. 이제는 말도 안 한다. 인사도 안 한다. 뭘 물어봐도 부탁해도 답을 안 한다. 개선불가 히스테릭 법규 할매가 하는 것처럼 똑같이 해준다. 개무시 작전이다. 부장 없을 때 만들어야 할 월요회의 자료도 알아서 하라고 한다. 직접 취합하시라 한다. 내가 하던 업무지만, 사실 누구나 해도 되는 일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개선불가 히스테릭 법규 할매를 위해 내 인생의 일초도 허비하고 싶지 않다. 

     

 개선불가 히스테릭 법규 할매의 반응은 그야말로 히스테리컬 하다. 인사도 안 하고 사람 말 무시한다고 난리 친다. 당연히 해야 할 자기 업무도 등한시한다고 큰소리다. 인사팀에 얘기해서 징계받게 하겠다고 지*발광을 한다. 사무실이 떠나가게 소리친다. 다 들으라는 식으로. 자기 말에 자기가 흥분해서 더 난리를 친다. 완전 자동 자가발전이다.(그래도 절대 내 면전에서는 하지 않는다. 내가 겁나서일까. 모르겠다) 난 이제 자가발전 개선불가 히스테릭 법규 할매가 뭘 어떻게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미친개는 무서워 피하는 게 아니다. 더러워서 피하는 법이다. 짖어라. 나는 내 길을 간다. I’m doing my way whatever you do.      


 희한한 게 있다. 자가발전 개선불가 히스테릭 법규 할매와 그렇게 틀어진 지 반년이 됐다. 그동안 그녀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유령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정말 그 자가발전 개선불가 히스테릭 법규 할매가 눈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다. 피하는 것일 수 있다. 높은 파티션 밑으로 가려져 있어,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회의 때도 대각선으로 앉지 않고 한쪽 편에 나란히 맨 끝에 앉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같이 밥을 먹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출퇴근 시간이 달라서 일 수 있다. 어쨌든 자가발전 개선불가 히스테릭 법규 할매가 안 보이기 시작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부원들도 나와 그녀 간의 텐션을 용인하는 분위기다. 부장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몇 번 중재하려고 화해를 시도했다가 포기한 것 같다. 폭발 직전의 활화산이지만, 자기 임기 때만 아니면 괜찮다는 식이다. NIMT(not in my term)라고나 할까. 그래서 일도 따로 시키고, 서로 상의할 일이 있을 때는 본인이 직접 중간에서 중개를 한다. 20대 남과 50대 녀 사이에 한 사무실에서 웃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다른 곳에서 쑥덕거리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난 이게 편하고 좋기만 하다.      


 자가발전 개선불가 히스테릭 법규 할매가 여기저기 다니며 나를 씹고 다니는 것을 안다. 서울의 시덥잖은 대학에서 업무와 전혀 무관한 전공을 했고, 일 처리는 개판이고, 열정은 일도 없는 개망나니, 개쌍 마이웨이라고 욕하고 다닌다고 한다. 개쌍 마이웨이? 사실 그런 단어는 자가발전 개선불가 히스테릭 법규 할매 때문에 처음 들었다. 그녀가 엠지 세대의 사고방식, 특히 내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며 시중에 나오는 말도 안 되는 무슨 책을 사서 읽었다고 했다. 거기에 나 같은 엠지들의 업무 스타일을 ‘개쌍 마이웨이’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 책까지 읽는 그 노력이 가상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책만 읽으면 뭐 하나. 그녀는 뭐가 진짜 문제인 지를 모른다. 자신의 태도가 문제라는 것을, 내가 그래서 자신을 뺀 다른 부원들에게는 그녀와 다르게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리고는 오직 나를 어떻게 하면 납작하게 뭉개줄까만 고심하는 듯했다. 자가발전 개선불가 히스테릭 법규 할매가 그러거나 말거나, 뭘 하거나 이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어차피 이 게임은 그녀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지몽매 자가발전 개선불가 히스테릭 법규 할매는 그걸 모른다. 본인이 얼마나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지. 나는 기다린다. 그녀를 덮칠 기회를. 

     

 얼마 전 이런 일이 있었다. 위층 부서에서 회식 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사실 불미스럽다기보다는 해프닝에 가깝다. 과장이 신입 직원 치마에 술을 쏟았다. 술자리에서 흔히 있는 실수였다. 과장은 취해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런 일은 많았고, 그래서 다들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과장이 진짜 실수를 범했다. 실실 웃으며 사과했던 것이다. 아마 별 뜻 없었을 것이다. 취해서, 혹은 ‘지가 내가 이런다고 뭘 어쩔 거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 술을 마셨다. 딴 날과 다르게 여직원에게 반말도 했다. 여직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달이 났다. 다음날 여직원이 노조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회사 회식자리에서 상사로부터 인격적 모욕을 당했다고 공식 신고했다. 아무리 노조지만 난감했다. 해당 과장은 평판이 좋았다. 후배들 잘 챙겨주고, 일도 잘하는 모범 간부였다. 전후 사정 얘기를 들어봐도 노조가 나설 일은 아니었다. 폭언이나 폭행도 없었고, 성희롱 발언도 아니었다. 그냥 기분 나쁜 정도다. 재발방지를 약속받는 선에서 마무리 짓는 게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여직원은 막무가내였다.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공개 사과와 징계를 요구했다. 노조 간부들은 재고를 요청했다. 여직원은 듣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노조 사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블라인드에 글이 올라왔다. 바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사원 700명인 회사에서 순식간에 200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신입직원의 술자리 일 뿐 아니라 그간 있었던 사내 성희롱, 직장 내 갑질 사례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마치 짜고 친 것처럼. 실제로 그랬다. 신입 직원은 블라인드 올리기 전 여직원 카톡방에서 사정 얘기를 털어놨다. 그랬더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며, 자신은 더 심한 경우도 많았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블라인드에 글이 올라가자 순식간에 댓글들이 따라붙었다. 마치 키보드 워리어, 댓글 부대가  뜬 것처럼 말이다. 술을 엎지른 해당 과장은 공식 사과문을 블라인드에 게재했다. 회사 인사위원회는 과장에게 ‘견책’ 징계를 내렸다. 과장은 경위서도 썼다. 신입 직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했고 두 사람은 이제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식으로 시시하게 응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번 물으면 단숨에 숨통을 끊어 놓을 것이다. 살려두면 후한이 된다. 무지몽매 자가발전 개선불가 히스테릭 법규 할매도 그런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것일까. 위층 사무실 일이 있고 나서 조용해졌다. 괜한 분란을 만들어 위층 꼴 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나의 결연한 표정을 보고 잔뜩 겁을 먹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솔직히 무지몽매 자가발전 개선불가 히스테릭 법규 할매가 뭘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이 없다. 사실 이 사무실은 그녀 말고도 엿 같은 게 너무 많다. 당장 갈 데가 없으니 다니지만 옮길 데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      



2편에서 계속



이미지=번개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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