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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천 Oct 24. 2023

개썅 마이웨이②끝

오피스별곡 시리즈 11회차

무지몽매 자가발전 개선불가 히스테릭 법규 할매의 존재만큼 불만인 게 휴가 문제다. 휴가는 법적으로 보장된 근로자의 권리다. 법정휴가 일수만큼 알아서 가면 된다. 그런데 눈치를 준다. 부장은 승인하면서 꼭 한 마디씩 붙인다. 휴가 때 어디 가냐고. 꼭 지금 가야 하냐고. 난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런 걸 왜 물어보나. 자기가 휴가를 주는 것도 아니면서. 그래서 휴가 때 미리 얘기하지 않는다. 전자결재 올리고 끝이다. 승인하지 않으려면 부장이 이유를 찾아야 한다. 부장도 휴가 문제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     


 휴가도 하루 단위로 쓰지 않는다. 열흘 남짓한 휴가를 그렇게 쓰면 금방 다 쓸 수밖에 없다. 금요일 오후 반차를 내거나 2~3시간 시차를 쓰는 식으로 소화한다. 가장 효과적인 휴가 사용법이다. 주말 끼고 여행을 가거나 캠핑 갈 때 몇 시간만 일찍 출발해도 시간이 훨씬 절약된다. 2~3시간만 시차를 써도 하루를 통으로 쓰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휴가를 쓰면 10여 일 불과한 휴가를 두 세 배로 늘려 쓸 수 있다. 이것도 미리 승인받을 필요 없다. 어차피 법에 허용돼 있는 것인데 부장이 뭐라 할 것인가. 오후에 일 있어서 좀 일찍 나가봐야 한다고 전자 결재를 올린다. 안된 적이 없다. 서너 번 해봤는데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금요일 오후 4시에 자리를 일어나려는데 같은 사무실 사수인 B 대리가 월요일 제출해야 할 보고서는 어떻게 됐느냐고 물어봤다. 아직 자료 정리가 안 됐다고 했다. 그렇게 급하게 할 수 없는 일이고, 다음 주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그렇게 많은 일을 막내에게 맡기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급한 일이라면 미리 감당할 수 있는 몫만큼 나눴어야 할 일이다. 길길이 뛰는 B대를 놔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B 대리가 알아서 하든 말든 그것은 그의 일이다.      


 휴가를 놓고 동기들과 다툰 적이 있다. 몇 부서 막내들에게 공동 임무가 떨어졌다. 새로 출시하는 제품에 대한 시장 조사를 함께 해서 해결책까지 같이 내라는 임무였다. 2주일 안에 끝내야 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내가 맡은 부분이 좀 쳐졌다. 마감 직후 떠나야 하는 여행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많았다. 준비가 제대로 안 됐다. 마감 이틀 전 모임이 있었다. 동기들은 내가 맡은 부분이 미흡하니 주말까지 준비하자고 했다. 거절했다. 주말 비행기 표와 숙소까지 다 끊어놓은 상태였다. 이제와 어떻게 하란 말인가. 공동 임무니 부족한 부분은 휴가 안 가는 동기들이 맡아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동기들이 길길이 뛰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느냐, 저 밖에 모른다, 동료애가 없다, 네가 ‘개쌍 마이웨이’, ‘나씨나길(나는 씨팔 나의 길을 간다) 무대뽀’ 라는 소릴 듣는 이유를 알겠다, 앞으로 서로 상종하지 말자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어차피 오래 다닐 회사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 휴가 못 가면 지들이 보상해 줄 일도 아니지 않나. 그리고 동료애?  웃기는 얘기다.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눴더니 약점이 되는 세상이다. 신입사원 연수 때를 생각해 보라. 서로 한 번이라도 더 주목받으려고 물밑에서 경쟁하고 서로 헐뜯던 사이 아니던가. 상대의 실수에 은근히 기뻐하고, 상대의 성공을 질투하던 게 바로 엊그제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물론 아니다. 일이 끝나면 자신의 공을 내세우려 또 물고 뜯고 할 것이다. 누가 누구보고 동료애를 얘기하나. 속 보이는 짓들이다. 개쌍 마이웨이? 나씨나길? 피장파장 대동소이 도긴개긴이다. 지들도 나와 하나 다를 게 없는 인간들이면서. 금요일 오후 이 메일로 그동안 정리된 것만 던져놓고 여행을 떠났다.     


 법규 할매부터 동기들까지 정말 맘에 안든다.  부장도 마찬가지다. 아등바등 사는 꼴이라니. 한번 사는 인생 왜 그런 식으로 사는 지 알 수 없다.  부장 나이 57세. 정년이 몇 년 안 남았다. 누가 봐도 임원 승진은 물 건너갔다. 줄도 없고, 성과도 빈약하고, 거기다 아부 실력도 형편없다. 만년 부장으로 종 칠게 뻔하다. 그런데도 회사 생활에 목을 맨다. 새벽 6시 반이면 출근해 퇴근은 9시를 넘기기 일쑤다. 취미 생활도 딱히 없는 것 같고,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한다. 전형적인 샐러리맨이다. 주말에도 회사 일을 달고 사는 모양이다. 가끔 밥을 같이 먹을 때 보면 회사 얘기뿐이다. 불쌍한 인생이다.      


 사장도 마찬가지다. 비전 희망 등을 입에 달고 살지만 생각해 보라. 월급쟁이 사장에게 무슨 비전이 있겠나. 본인도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직원들에게 주인의식, 능동·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지라고 닦달한다. 한마디로 위선이고 말도 안 되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비전과 주인 의식 가지고 살면 사장이 평생 먹여 살려줄 건가. 아무리 주인의식 가지고 일해도 조금만 회사 어려워지면 구조조정이다, 명예퇴직이다 해서 사람 자르는 게 회사다. 특히 계약직 사원들은 어떤가. 나야 운 좋게 정규직이지만, 그 사람들은 똑같은 일을 해도 월급이 20~30% 적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에게도 주인의식 얘기를 한다. 주인의식 얘기를 하려면 차별을 말든지, 차별을 하려면 주인의식 얘기를 하지 말든지.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양심이 없다. 거기다 회사 형편 좀만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쫓아내는 게 그들이다. 이러니 계약직들에게 무슨 비전과 주인의식, 희망이 있겠나. 그런데도 지속적으로 충성과 희생을 요구한다. 회사에서는 나 같은 엠지 세대가 이기적이라고 한다. 자신 밖에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흉보는 꼴이고, 허청 기둥이 뒷간 기둥보고 뭐라 하는 격이다.      


 회사든, 간부들이든, 선배들이든 좀 솔직해져야 한다. 말로는 애사심, 동료애, 책임감 등을 강조하지만 그들 자신들은 어떤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한다. 내가 아는 간부 10명 중 7~8명은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 과장 차장 중 여기저기 이력서 안 넣은 사람이 드물 정도다. 돈 1000만 원만 더 준다면 당장이라도 짐 쌀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입만 열면 애사심과 충성이다. 동료애와 이타심? 연말 인사고과 시즌이 되면 서로 일 잘했다고 공부터 내세운다. 서로 헐뜯고 공을 가로채는 것은 비일비재다. 가끔 사무실에서 남의 책상 뒤지다 적발되는 경우까지 있다. 술자리에서 서로 헐뜯고, 주먹다짐하는 것도 그렇고, 감사부서나 노조에 투서 넣은 것도 일상이다. 그런 회사 사람들이 뻔뻔하게 애사심, 동료애를 논한다.      


 나는 최소한 솔직하다. 그들과 다르다. 못하는 것은 못한다고 한다. 못하는 것을 할 줄 안다고 얘기했다가 일을 망치지는 않는다. 이규경 시인도 말하지 않았나.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야 해.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못해요 ’라고. 나는 용기 있게 얘기할 뿐이다. 못하면서 할 줄 안다고 속이고, 일을 망치는 선배 꼰대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욕한다. 엠지 세대는 이기적이라고. 그러나 나는 규정을 지킬 뿐이다. 회사에서 정한 시간 칼같이 맞춰 출퇴근한다. 유연근무제도 이용해 먼저 온 날은 먼저 퇴근하고(그게 오후 3시일지라도), 퇴근 전까지 일한 시간은 야근수당을 신청한다. 회사에서 정한 규칙을 이용하는데 뭐가 잘못인가. 휴가 가라고 독촉하면서 휴가 신청하면 눈치 주고, 남은 휴가 일수에 대해 보상 안하는 회사가 문제 아닌가. 규정을 밥 먹듯이 어기고 불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간부들과 회사가 먼저 반성할 일이다. 난 회사가 나에게 해주는 만큼 해줄 것이다. 나한테 잘해주면 나도 열심히 하고, 나를 건들면 나도 가만 안 있을 것이다. 위계질서? 애사심? 다 똥 같은 소리다. 회사부터 잘해야 직원들도 회사 일에 성의를 보이는 것이다. 


 누군가는 충고한다. 그래도 미래를 봐야 한다고. 당장 눈앞의 이익만 좇으면 안 된다고. 그것도 웃기는 얘기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에 무슨 몇 년 후인가. 그렇게 착하고 잘 웃는 옆 부서 L부장이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사정 알면서 몇 년 후를 얘기하는가. L 부장에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겠나. 그런 충고를 하는 사람들은 당장 내일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      


 접시 위 음식은 맛있는 순서대로 먹고, 좋은 차는 바로 사야 한다. 지금 즐기고 누리지 않으면 다 무슨 소용인가. 돈 모아놓았다가 죽으면 다 누구 좋은 일이 되나. 미래는 미래의 일이다. 그때는 그때 다시 대책을 세우면 된다. 걱정 그만들 하시라. 미래 걱정하다 날 샌다. 세상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제발 좀 힘들게 살지 말자. 서로 쓸데없니 간섭하지 말고, 자기 일이나 잘하자. 꼴 같잖게 애사심 동료애 타령 그만하고. 제발.           



끝.  



이미지=번개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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