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경 합동조사단이 인질극 소식을 전해 듣고 현장에 도착하기 전 신라방 쪽에서 엄청난 폭발이 터졌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머리털 나고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땅이 꺼지는 듯한 울림과 굉음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신라방 반경 800m 내 모든 건물 창문이 그때 진동으로 파손될 정도로 엄청난 위력의 폭발이었다.
조사단과 방송국 기자들이 거의 비슷한 시간에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남은 것은 폐허뿐이었다. 신라방의 화려한 건물도, 건물을 둘러싼 벽도, 울창한 측백나무들도, 그 아름다운 회화나무도, 창고도, 우물로 모두 잿더미로 변한 뒤였다. 폭격을 맞은 듯한 처참한 잔해와 수십구의 시체들만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참혹한 현장 모습은 그대로 TV 생중계를 통해 전국에 전달됐다. 그렇게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 맛집이자 해외서도 주목하는 신라방은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들리는 얘기들은 선뜻 믿기 힘들 정도다. 그날 새벽 인천 공항을 통해 신원 불분명의 중국인 5명이 입국해 K시 쪽으로 이동했고, 폭발 20분 전에 그들이 탄 차량이 신라방에 멈췄다는 것이다. 인근 CCTV를 보면, 그들이 신라방으로 들어간 후 엄청난 폭발이 있었고, 한 명도 잔해에서 살아 나온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폭발 직후 서해 공해상으로 쾌속정 한 대가 빠르게 빠져나가는 모습이 조업 중인 어부들에 의해 목격됐고, 거기엔 시체 속에서 찾지 못한 중국인 5명과 왕 씨 형제 중 동생 왕희우가 타고 있었다는 미확인 정보도 들려왔다.
언론들은 신라방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가장 관심을 끈 부분이 신라방이 폭파된 이유와 거기에 중국 삼합회가 어떤 역할을 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언론들은 전국 대표 맛집의 마약 밀수 의혹과 중국 폭력조직과의 연계설 등에 대해 갖가지 시나리오들을 써 내려갔다.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는 이런 것이었다.
당초 중국인 해결사 5명이 한국에 온 이유는 청와대 해킹 사건 등으로 조직 사업을 노출시킨 김미영 사장과 큰 아들 왕희성을 손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 당국으로부터 신라방 사건의 깔끔한 뒤처리를 요구받은 삼합회 회장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아예 한국 사업 전체를 접는 쪽으로 막판에 방향을 틀었다는 설명이다.
거기까지는 대체로 의견들이 비슷했으나 그다음은 서로 추정이 서로 갈린다. 김미영 사장이 모든 문제에 책임을 지고 자폭을 결행했다는 설과 중국서 온 해결사들이 삼합회 회장의 전화를 받고 현장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폭탄을 설치해 일을 끝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신라방은 사장과 가족들, 그리고 종업원, 건물까지 모두 일소(一宵)하는 쪽으로 마무리가 된 것이다.
폭발 후 K시 인근 해상 부유물 위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박찬우 검사와 정애라 기자, 그녀의 부친 정기남 C화학 회장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더 애매하다. 삼합회 회장이 김미영과 조직원들만 처리하고, 한국인 인질들은 살려 주라고 지시했다는 소문도 있고, 김미영 사장이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본인이 모든 책임을 질테니 인질들은 살려 주자고 해결사들을 설득했다는 설이 엇갈린다. 그러나 살아남은 본인들도 당시 기억이 없어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는 데다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중국인들도 행방이 묘연해 진실은 안갯속에 파묻혀 버린 것과 다름없다.
신라방 폭파 사건 후 K시엔 커다란 변화가 몰려왔다. 우선 김미영 리스트에 올라 있는 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조사를 받고 구속되거나, 좌천되면서 물갈이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일부 인사는 금품 수수와 함께 불미스러운 종류의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까지 밝혀지며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정애라와 박찬우에게도 일신의 변화가 많았다. 정애라는 회사에 휴직계를 제출했다. 사장이 구속되고, 일부 간부들까지 뇌물 수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더 이상 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언론사를 떠날 생각은 없다. 중앙 방송사들과 몇몇 종편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나쁘지 않은 기회다. 그러나 당분간은 병원에 있는 부친을 돌보며 휴식 시간을 갖고 싶다.
모친은 박찬우 검사와의 결혼을 재촉한다. 당분간 시간을 달라고 했다. 무엇보다 그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없다. 프러포즈를 받은 것도 아니고. 가만 그러고 보니 어제저녁 술자리에서 그가 기습 키스를 한 것 같다. 머리를 끌어안고 뭐라고 얘기한 것 같기도 하다. 그게 무슨 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오금 저리는 멘트 그만두라며 그의 가슴팍을 때렸다. 박찬우가 그대로 식당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둘은 뭐가 그리 우스웠던지 한참을 낄낄대고 웃었다. 오늘 저녁 또 보기로 했으니 무슨 얘기였는지 물어볼까. 그를 생각할 때마다 웃음이 난다. 기분이 좋다. 세상에서 가장 얘기하기 편한 술친구이자 가장 든든한 보디가드다. 박찬우가 오늘 만약 프러포즈를 한다면 한 번에 받아야 할까, 아니면 빙긋이 웃기만 할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남자다.
박찬우는 어느새 스타가 됐다. 초년 검사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마약 사건을 해결한 것은 검찰 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검찰총장의 표장에 이어 특진까지 했다. 거기다 언론들의 끊임없는 인터뷰 요청과 정치권의 러브콜까지. 하늘을 떠다니는 기분이 아마 이런 것일까. 일도 잘되고 있고 정애라와의 연애도 순조롭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 있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중국 삼합회의 동향이 걱정된다. 이대로 물러설 조직이 아니다. 언젠가는 보복에 나설 것이다. 정애라에게 프러포즈를 미루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애라가 안전하지 않다면 어떤 결정도 미룰 수밖에 없다. 오늘은 그런 내 마음을 꼭 전해주고 싶다.
김수현이 느끼는 불안감은 박찬우보다 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삼합회는 일단 내달 한·중 정상회담 때까지 는 자중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한국 사업의 실패를 잊지 않을 터다. 최근 들려오는 얘기도 그렇다. 신라방 사건 이후 전 세계 네티즌 사이에선 해결의 주역 해커 ㅋㅋㅋ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그 덕분에 중국에도 많은 동료들이 생겼다. 그들이 전하는 바, 삼합회가 살아남은 왕희우에게 특명을 내렸고, 왕희우는 죽음으로 명령을 받겠다며 그 준비를 위해 잠적했다는 것이다. 신라방의 최후는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을 잉태한 미완의 결말이었다는 얘기였으니....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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