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방의 비밀⑫ 월형(刖刑)

by 이리천

청와대 해킹의 파장은 컸다. 김미영을 벼랑 끝으로 몰았고, 동시에 청와대를 포함한 검찰, 경찰, 국정원 등 모든 정부기관들로 하여금 사태를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일석이조의 묘수요, 장기의 양수겸장(兩手兼將), 체스의 더블 체크(double check) 같은 결정타라고나 할까.


김미영만큼 급해진 게 청와대와 외교부였다. 청와대 인터넷 보안망이 해킹당한 것도 큰 문제였지만 당장 다음 달 있을 3년 만의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핵폭탄급 사건이 터진 것이다. 어렵게 성사된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중국발(發) 마약 밀매와 살인 사건이라니. 절대 오래 끌어서는 안 되는 ‘발등의 불’이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해킹 직후 즉각 관계 장관회의를 소집했다. 외교부와 행정안전부와 국정원,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 관련 부서장들이 모두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청와대로 불려 들어왔다. 어수선한 회의 분위기. 참석자들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마약 밀매와 살인, 그리고 검·경·국정원 등 지방 사정기관장들의 연루 의혹까지.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동안 한 번도 비스무레한 보고조차 없었다. 모두 목이 걸린 문제임을 직감한다. 서 실장은 “오늘은 대통령께 사건 개요만 간략히 보고할 테니 내일 오후까지 자세한 내용을 보고할 수 있게 준비해달라”라고 못을 박는다. 한·중 정상회담에 부담이 되게 사태를 키워서는 안 된다는 당부와 함께. 국정원과 검·경 등 주요 부서 야간 당직자들의 전화에 불이 울린 것은, 회의 참석자들이 미처 회의실을 빠져나가기도 전이었다.

그 시각, 김미영도 재빠르게 움직인다. 김수현 일당을 산 채로 잡아서 중국으로 보내야 한다. 방법이 없다. 인질을 이용할 수밖에. 타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정애라 가족이다. 조직원 20여 명을 모은다. 일부를 정애라의 부모가 사는 집으로, 일부를 정애라의 아버지 정기남 회장이 있을 만한 곳으로 보낸다. 정애라의 엄마나 언니가 있을 곳도 빼놓지 말고 샅샅이 훑으라고 지시한다.


정기남 회장이 저녁 자리를 마치고 나오던 중 사복 차림의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검은 봉고차량으로 내다 꽂힌 것은 그로부터 2시간이 채 안돼 서다. 인구 30만 명도 안 되는 소도시에서 사실 재력가들이 갈 만한 곳이 많지 않은 탓이다. 정 회장은 이 일이 며칠째 연락이 끊긴 둘째 딸 정애라와 연관돼 있음을 직감한다. 미심쩍은 생각에 아내와 큰 딸을 잠시 바람 쐬라며 유럽으로 보낸 게 그나마 다행이다.




김수현과 박찬우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댓글 관련 알림을 받은 것과, 쉬하이칭 중국 삼합회 회장이 중국 공안당국으로 전화를 받은 것은 거의 동시에 가까웠다.


김수현은 벼랑 끝에 몰린 김미영 사장이 어떤 식으로든 보복에 나설 것이고, 그 경우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연락해 올 것임을 예상했다. 그래서 살인이나 보복에 관한 댓글이 떴을 때 자동으로 알리는 프로그램을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심었다. 아니나 다를까. 알림음이 울렸다. 간체자와 숫자로 된 암호 같은 메시지와 정기남 회장의 피투성이 얼굴 사진. 정기남을 살리고 싶으면 내일 오후 12시까지 신라방으로 오라는 메시지다.


미처 정애라의 가족이 인질로 잡힐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하지 못했다. 변명의 여지없는 명백한 실수다. 김미영이 K시에서 보복하려면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란 걸 뒤늦게 깨닫는다. 미리 대피를 시켰어야 했다. 박찬우는 울부짖는 정애라를 다독이며 예상 밖의 사태 전개에 어떻게 대처할지 난감해한다.


김수현과 박찬우만큼 쉬하이칭 삼합회 회장 역시 난감한 처지로 몰리고 있었다. 중국 국무위원이자 공안부장인 자오커즈(趙克志)가 직접 전화를 해 온 것이다. 자오는 350만 명의 중국 공안과 무장경찰을 통솔하는 중국 공산당의 실세다. 그가 직접 전화를 한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없던 일이다. 중국 당국이 이번 신라방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준다. 자오 부장은 삼합회가 절대 중국 공산당과 정부 일에 누가 돼서는 안 된다고 조용히 말했다. 한국 쪽 일을 알아서 깔끔하게 잘 처리하라는 지시나 다름없다.


쉬 회장은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심호흡을 한다. 그 역시 청와대 해킹으로 삼합회가 한국에서 주목받게 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하던 차였다. 70년 가까이 신라방을 통해 한국 사업을 성공적으로 끌어왔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그동안 한 번도 이상 보고가 없었는데 말이다. 쉬 회장은 그제야 요즘 아프리카와 중동 사업에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쉬 회장은 다시 전화기를 잡는다.




다음날 오전 10시.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박찬우와 정애라는 신라방으로 향한다. 김수현과 맹지현은 남기로 했다. 박찬우에 몸에 숨긴 카메라(단추 구멍으로 촬영하는 몸캠)로 촬영된 영상을 온라인으로 생방송키로 했다.


다시 돌아온 신라방. 박찬우와 정애라는 차에서 내리며 심호흡을 한다. 왕희성이 조직원들과 함께 그들을 맞는다. 왕희성으로부터 살기를 느낀다. 어두운 지하 동굴. 김미영과 10여 명의 조직원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정기남 회장. 피투성이 얼굴에 낮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온다. 정애라가 비명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간다. 자세히 보니 발뒤꿈치가 잘려 있다. 월형(刖刑). 평생 불구로 만들어버리는 조직의 오래된 보복법이다.

적막을 깨는 건 오직 절규와 신음소리뿐. 그때 김미영이 박찬우에게 묻는다.

“이유가 뭐냐. 너를 살려줬는데 왜 다시 와서 이 난리인 거냐.”(김미영)

“오랜동안 내가 꾼 악몽의 이유가 궁금했어요. 아줌마가 갑자기 변한 이유를, 창고는 무엇이고, 우물은 왜 있고, 내 유년시절은 왜 갑자기 변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박찬우)

“너의 그 호기심 때문에 네 친구들도, 신라방도, 나도 이제 모두 끝이야. 선택을 해라. 네가 죽던지, 아니면 김수현까지 세 사람 모두 죽던지. 네 발로 와서 이 사달을 냈으니 네가 선택할 수밖에.”(김미영)

“이제 다 끝입니다. 포기하시지요. 세상이 모두 신라방과 아주머니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다 보고 있을 겁니다. 더 이상의 살인과 폭력, 불법은 무의미합니다.”(박찬우)


왕희성은 뭔가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박찬우에 달려들어 몸을 수색한다. 단추 구멍에서 나온 가느다란 선이 허리 품에 숨겨놓은 작은 장비로 연결돼 있다. 카메라다. 왕희성이 박찬우의 목을 가격해 단숨에 기절시킨다. 뒤통수를 맞은 정애라도 더 이상 울지 못하고 쓰러진다.


김미영도 일이 완전히 틀어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 처리할 수밖에 없다. 카메라를 통해 생중계됐다면 곧 경찰이나 검찰이 들이닥칠 것이다. 박찬우 정애라 정기남 먼저 처리하고 여길 떠야 한다. 김수현은 나중 일이다. 그들이 막 작업을 하려던 찰나, 현장을 들이닥친 또 다른 방문객이 있었으니...


(1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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