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이 아침 식탁에서 정리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신라방은 중국 산둥성 최대 폭력 조직 삼합회와 연계돼 있으며, 중국서 들여온 마약을 국내 16개 도시에 유통시키는 허브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박찬우가 지하호수 밑에서 찍은 메모장의 내용은 물건 배달 주소였다. 신라방과 거래하는 업체의 조직원 수백명이 이를 직접 배달하고 있으며 그 물량이 연간 수백억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라는 것이다. 검경에서 이런 내용의 조서들을 모두 포맷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고 했다.
골수회 멤버 21 명의 리스트도 밝혀졌다. 정애라가 확인한대로 신문사 사장과 검찰 지청장을 포함해 시장, 경찰서장, 국정원 지부장, 세무서장 등 주요 지역 관공서 수장들뿐 아니라 시민단체장들까지 망라하고 있었다. 김미영 사장이 이들을 정기적으로 뇌물로 매수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신라방 관련 사고가 나올 때마다 검경과 언론에서 조용했던 이유였다.
상대는 거대한 카르텔인게 분명해졌다. 중과부적이다. 그렇다고 이미 표적이 된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김수현은 이럴땐 병법 36계를 써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삼국지, 초한지뿐 아니라 손무의 손자병법, 강태공의 육도 등 중국 역사서와 병법을 수십 번 독파했다는 전략가다운 발상이다.
그의 전략은 세 가지. 만천과해(瞞天過海)와 타초경사(打草驚蛇), 차도살인(借刀殺人)*. 즉, 철저히 상대로 모습을 감추는 게릴라 전법을 사용하되, 가벼운 도발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본색을 드러내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타인의 손을 빌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이 싸움을 힘을 가진 폭력적 기득권 부패 세력과 신기술로 무장한 정의로운 젊은이들간 대결구도로 프레임을 몰고 간다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었다.
일단 거쳐부터 옮겨야 했다. 이미 구글 타임라인 등을 통해 최종 행선지가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 맹지현도 함께 움직여야 했다. 홀로 남았다가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 그리고 핸드폰도 이틀 이상 사용해선 안된다. 추적을 피하기 힘들다. 네 사람은 그 길로 1시간을 달려 낯선 시골 민가에 도착했다. 맹지현의 지인이 얼마 전 서울로 이사 가며 팔아 달라고 맡긴 집이었다.
거기서 그들은 2단계, 즉 타초경사로 넘어간다. 김수현은 박찬우가 찍은 동영상과 사진, 그리고 취합된 정보들로 10분짜리 동영상을 제작했다. 그다음 동영상을 새로 만든 계정을 이용해 중앙 방송사와 신문사들로 일제히 보내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트위터에도 올렸다. 회원이 수백만 명에 달하는 디시인사이드, 인벤, 일간베스트(일베), 보배드림, MLB파크, 여성시대(여시) 등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빠짐없이 업로드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수백, 수천 건의 댓글들이 붙더니 그날 저녁부터 ‘전국 대표 맛집 신라방에 이런 일이….’라는 식의 의혹 기사들이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소 온라인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낚시성 기사가 경쟁적으로 나고 있을 뿐 아직 메이저 언론사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상대가 공개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는 추리가 가능하다.
실제로 그랬다. 김미영이 동영상 관련 뉴스 보고를 받은 것은 김수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동영상을 올린 후 1시간 후였다. 왕 씨 형제는 ‘포커 페이스’인 김미영의 미간이 심하게 구겨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렇지 않아도 박찬우와 정애라의 창고 침입 사실과 정애라 처리 실패 사실을 뒤늦게 보고받고 침묵만 지키던 김미영이었다.
김미영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자칫하다가는 신라방뿐 아니라 가족들의 안위, 조직 사업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처음부터 아들에게 일을 맡긴 자신의 잘못이 컸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있다. 본사에는 보고가 안 돼 있다. 최종 보고 전에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면 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김미영은 종업원들부터 소집했다. “산 채로 잡아오세요. 내일 저녁까지.” 흥분하지 않은, 얼음같이 차가운 지시에 종업원들은 더 긴장한다. 지시 불이행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김미영은 곧바로 검·경과 언론사 골수회 멤버들에게도 전화를 돌린다.
그날 밤 저녁부터는 주요 언론사들에서 “도(度) 넘는 블랙 컨슈머들의 기업 흠집내기” “이렇게 모범 자영업자가 공격받아도 되나” 등의 반박 기사들이 쏟아졌다. 이튿날 아침엔 검찰과 경찰에서도 기업들을 괴롭히는 사실무근 협박과 공갈에 엄중 대응하겠다는 경고가 나왔다. 동시에 현직 검사와 기자의 살인사건 연루설을 주장하는 기사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박찬우 일당을 잡는 일은 여의치 않았다. 왕희성과 왕희우는 K시의 동쪽과 서쪽을 나눠 맡고, 주방장 푸첸은 통신과 온라인을 맡아 추적하기로 했다. 푸첸이 먼저 최종 거처를 알아냈다. 그러나 다음날 오전 왕 씨 형제가 과수원을 들이닥쳤을 때 발견한 것은 박찬우의 반파된 SUV 차량과 불탄 핸드폰 두 개뿐이었다.
박찬우쪽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의 반격이 예상보다 빠르고 거셌기 때문이다. 박찬우 정애라에게 애먼 살인 혐의까지 덮어씌우는 보도가 나온 이상, 아무리 시골이지만, 밖에 나가기도 어렵게 됐다. 다음 카드를 서둘러 쓰지 않을 수 없다.
왕 씨 형제와 푸첸이 박찬우와 정애라의 다음 행선지를 알아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K시와 인근을 뒤지고 있을 즈음, 김수현은 조용히 온라인에서 동료들을 소환했다. 어나니머스 그룹*. 비밀 해커 단체다.
그룹 멤버들은 ㅋㅋㅋ(김수현의 아이디) 의 간만 소환에 흥분했다. 거기다 그 이유가 그 핫한 신라방 사건이라니. 그들은 이미 사건 내막을 꿰고 있었고, 그 주모자가 ㅋㅋㅋ 라는데 환호했다. 역시 ㅋㅋㅋ 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ㅋㅋㅋ 는 조용히 타깃을 지목했다. 청와대. 거기에 동영상을 올리자고 했다. 짧고 굵게. 두 시간 만 올리고 빼자고 제안했다. 회의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공유하고, 각자 맡을 역할을 분담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들이 아니다.
반응은 거셌다. 청와대 해킹 사건은 방송과 신문에서 곧바로 대서 특별됐다. 외신들도 사건을 다뤘다. 이제 신라방 사건은 정부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이슈가 돼 버렸다.
김미영이 중국으로부터 쉬하이칭 삼합회 회장의 대로(大怒) 소식을 들은 것은 그날 밤 10시였다. 하루의 시간을 줄 것이며, 유사시를 대비해 본사에서 인력이 파견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본사로부터 어나니머스 그룹과 김수현에 대한 정보도 함께 들어왔다.
김미영은 그제야 최근 자신이 죽은 가족들의 꿈이 계속 꾸는 게 뭘 의미하는지 깨닫는다. 문제를 잘 해결한다면 자기 선에서 처벌을 끝낼 수 있지만, 제대로 안되면 가족 전체가 아니 신라방 전체가 무사할 수 없다. 김미영은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깨물었다. 남은 시간은 하루밖에 없다.
(1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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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천과해(瞞天過海)
병법 삼십육계 승전계(적을 압도하는 계략)중 제1계. 하늘을 가리고 바다를 건넌다는 뜻으로 상대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전략이다. 고의적인 실수로 상대방이 방심하도록 유도하거나, 상대의 허를 찌르기 위해 잠행한다는 뜻을 모두 포함한다.
*타초경사(打草驚蛇)
병법 삼십육계 공전계(적을 공격할 때 쓰는 전략)중 제1계. 풀을 때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가벼운 도발이나 간단한 미끼로 상대방의 본색을 드러내게 하는 전략이다. 가만있는 상대를 위협해 괜한 화를 자초한다는 부정적 의미로도 쓰인다.
*차도살인(借刀殺人)
병법 삼십육계 승전계중 제3계. 남의 칼로 사람을 해친다라는 뜻으로, 타인들끼리 싸우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전법이다.
*어나니머스 그룹
어나니머스(Anonymous)란 말 그대로 이름이 없는, 즉 익명의 해커 그룹을 의미한다. 그러나 단순한 해커가 아니다. 핵티비스티(Hacktivist=Hacker+Activist), 사회적 이슈에 적극 개입하는 행동가 그룹이다.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주로 정부기관이나 대기업, 종교단체의 인터넷 사이트 등을 디도스(DDoS) 공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사용하는 ‘가이 포크스’ 가면은 아나키즘을 상징한다. 고유의 웹사이트와 IRC(Internet Relay Chat:실시간 채팅 프로토콜) 채널을 두고 브레인스토밍을 한다. 명령보다 투표를 통해 작전을 짜고 함께 실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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