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풍초똥팔삼
처가 식구들과 화투를 치면 큰 형님은 저에게 화를 냅니다.
빨리 쳐라, 그렇게 섞으면 어떻게 하냐?, 할 줄 모르면 끼지 말아라, 룰도 모르면서 왜 하냐?...
저는 이런 핀잔을 들어가면서 화투를 칩니다.
룰을 배우고 기억해서 다음에는 꼭 써먹어야지 합니다.
초짜가 뭔지를 파악하고 다른 사람들의 패를 읽고 다음에 뭐가 나올 확률이 높은 지를 체크해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내 패가 성공할 확률을 체크해봅니다.
그렇게 핀잔 먹어가면서 화투를 칩니다.
회사일에도 매한가지 일 겁니다.
모두들 처음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험을 해봐야 이것이 나에게 맞는 일인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인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그렇게 시작하게 되죠.
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람 키워서 내보내는 일 몇 번 하면 신입을 뽑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렇게 신입의 자리는 줄어들고 경험이 있는 경력자의 자리만 남게 되죠.
일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아주 오래되었네요... 10년도 넘었으니..) 기획팀의 팀장으로 신입인력을 키우는 업무를 맡아서 한 적이 있습니다.
인큐베이팅이라는 이름으로 기획팀에서 일할 신입 인력(대학교 졸업생) 2명을 인턴으로 뽑아서 경쟁을 시키고 나중에 한 명만 정규직으로 뽑는 업무였습니다.
그때는 토요일 격주 휴무였습니다. (한주의 토요일은 놀고, 한주의 토요일은 근무하는 놀토가 즐겁던 그때)
하지만 인큐베이팅을 하던 나에게는 토요일은 항상 2명의 인턴과 함께 하는 근무 시간이었습니다.
한 주간의 업무를 진행하고 각자의 느낀 점을 얘기하고 부족한 부분을 습득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여 토요일에 모두 모여 얘기하는 자리는 '필수불가결'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명은 직장생활을 1년간 했던 친구였고 한 친구는 졸업 후 여타 일을 못하다가 들어온 동갑내기 인턴이었습니다.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주가 되어서 둘의 격차는 하늘과 땅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회사의 대표는 당연히 한 명을 뽑으라고 요청하였고 그 인력을 데리고 다음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해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둘 다 뽑기를 요청하였고 대표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어찌어찌하여 둘 다 뽑게 되었지만 1년간의 경력이 있던 친구는 1년도 안되어서 그만두고 다른 회사를 찾아 나갔고 그때 어렵게 인턴을 마무리하고 기획팀 신입으로 들어온 경험이 없던 친구는 아직도 그 회사를 다닙니다. 벌써 10년도 훨씬 넘었으니 지금은 기획팀의 팀장이고 실장이고 그럴 것입니다.
다들 처음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보이는 신입은 일을 잘 해내는 소위 일머리가 있는지를 보는 것보다는 자기 자리에서 얼마나 책임감을 갖고 하려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이 본인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재미있는 일인 건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그 시기에 저는 잘하는 인력보다는 나에게 이래 저래 질문을 하고 고치려 하고 재미있다고 얘기하려고 하는 그 친구가 회사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화투가 쩍 하고 소리 나며 딱딱 맞아 가는 재미를 느낍니다.
돈맛도 느껴보면서 (절대 도박은 아닙니다. 가족끼리 즐겁게 치는... )
오랫만에 모인 가족모임에 저는 이렇게 외칩니다.
못먹어도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