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싶으면 잠시 뚜껑을 덮어두고 시간을 보낸다.
나는 이 과정을 ‘숙성’이라고 부른다.
숙성을 기다리는 동안 별다른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주로 책을 보거나, 내 시간을 갖기도 하며, 때론 다른 글을 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 정해둔 기간이 도래하기 전까지 웬만해선 닫아둔 뚜껑을 다시 열어보지 않는다. 단 며칠만이라도 설익은 내 마음에 뜸이 들기를, 탁한 시야에 침전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숙성을 마친 글을 다시 열어보면 전과 사뭇 다름이 느껴진다.
십 수번을 거름망에 걸렀던 오타도 어디선가 나타나고 흡족했던 배치와 표현도 고심하게 된다.
숙성된 글을 재차 매만지다보면 이상하게도 부족함을 메꾸는 것보다 과함을 덜어내는 일이 더 잦다. 불필요한 문장을 지우고 도로위의 자갈처럼 볼록 튀어난 표현을 깎아낸다.
간결하고 담백하게 시작한 글을 덜어내고 덜어내도 사포질 할 모서리가 남아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글을 대하는 이러한 태도는 삶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완벽한 대처라고 여겨졌던 일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과하고 무거울 때가 많다.
대표적으로 술자리가 그렇다. 숙취로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전날 밤을 복기해보면, 나누지 못한 이야기의 아쉬움보다 다변으로 인한 말실수부터 걱정이 든다.
술은 몸을 뜨겁게 만들고, 뜨거운 것은 가볍고 감정의 휘발성을 높이며 꼭 어딘가에 화상자국을 남긴다.
뜨거운 것이 식고, 무거운 것이 가라앉으면 많은 것들이 달라 보인다.
글을 짓는 것도, 감정을 다스리는 일도 숙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