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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니마을 Sep 24. 2021

수청마을에 고양이도 살아요

냥이 편

나는 '반반'이다. 이 집의 터줏대감이다. 물론 여기서 자지는 않는다. 내 딸과 아들이 이 집 앞마당을 차지하는 바람에 끼니때만 온다. 요즘 집사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

앞 뒤 마당에 조무래기들 한테 신경을 너무 많이 쓰는 지라 내가 오는 시간도 잘 모르고

한참을 불러야 나온다.

집사들은 나를 '반반'이라고 부른다. 얼굴이 반반해서 반반이가 아니고 머리에 색깔이 노란 털과 검은색 털이 반으로 나뉘어 있다고 반반이라고 한다. 좋은 이름도 많은데 영 내키지 않은 이름이다. 뭐 그래도 내가 먹고사는 것 하고는 별 상관없는 지라 그냥 둔다.


내가 이 집이 처음 지었을 때부터 근거지로 삼고 있다. 기본적인 끼니가 해결되기 때문에 동네 돌아다니는 애들이 오지 못하도록 관리를 나름 하고 지낸다. 4년 정도 되었는데 앞 뒤 마당이 넓고 해서 좋긴한테 나쁜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일 년에 3번 정도 몸을 풀어야 하는데 이 집은 그럴 만한 장소가 없다. 

보기보단 실속이 없다. 

지금은 작년 초에 낳은 내 딸 '코코'는 이제 지도 어미가 되어 아들 '반달'이 하고 같이 살고 있다.

그리고 올봄에 낳은 다섯 중에 '꼬리'가 뒷마당을 차지하고 '팬텀'과 '덜미'가 끼니때만 나처럼 왔다 간다. '코코'와 남매인 '비비'라는 아들놈은 요즘 수컷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한 번씩 나타난다.

이놈은 나타나면 나보다 더 우렁찬 목소리로 집사들을 불러댄다. 좀 피곤하다.

오른쪽 반반, 왼쪽 코도, 가운데 반달

날이 조금씩 시원해지는데 벌써 산달이 다가오는데 적당한 장소가 없다. 기회 있을 때마다 집사에게 적당한 장소를 만들어 달라고 떼를 써 보는데 알면서도 모른 채 하면서 생깐다. 곧 찬바람이 불 텐데 어디로 가나... 


나는 '코코'다. 좀 깍쟁이 같다고 집사들이 그런다. 

뭐 재롱은 '비비'가 잘 부리니 나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오늘도 '반달'이 보이지 않는다. 목이 터져라 부르니 슬그머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타난다.

요놈은 요즘 맘에 들지 않는다. 또 내가 싫어하는 뒷마당 '꼬리'와 놀다가 온 모양이다. 

나 혼자 앞뒤 마당을 다 썼는데 언제부터인가 지난봄에 태어난 동생 중에 하나인 '꼬리'란 녀석이 뒷마당을 떡하니 차지하고 앉았다. 

집사들은 지조도 없이 언제는 '비비'와 나만 좋다고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데리고 온 5남매 뒷바라지에 정신이 없다. 틈나는 대로 공갈, 협박, 밥그릇 빼앗기 등으로 쫓아내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데도 '꼬리'라는 애는 덩치도 작은 것이 집사들을 믿고 잘도 도망 다닌다. 2마리는 겁이 나서 완전히 도망을 갔는데, 

'팬텀'과 '덜미'는 나를 피해 끼니때만 되면 나타난다. 

집사들은 요즘 온통 그들에게 맘을 뺏겨서 우리 모자를 띄엄띄엄 본다. 

참 서운하다. 

또 샘이 나서 뒷마당 녀석들 밥그릇도 엎어보고 협박을 해 봤는데 집사들이 알고는 또 난리도 아니다.

앞마당에서 딱 만나는데, 나는 모른 척했다. 설마 쫓아내기야 하겠어.

나도 배 째라다.

코코와 비비

 

그리고 짜증 나게 엄마는 아직도 내가 어린애로 보이는지 밥 먹으러 오면 자기 먼저 먹어야 한다며 신경질이다. 나도 이제 엄마인데, 체면이 있지 애들 앞에서 쥐 잡듯이 각을 세운다. 

엄마는 올여름에는 기력이 없어서 더 이상 새끼를 못나을 것처럼 보이더니 어디서 보약을 먹고 왔는지 회춘을 한 듯하다. 덩치도 그대로이다. 

어 그리고 또 동생들을 가졌다. 

요즘 '반달'이 키우느라 동생 '비비'를 멀리 했더니 삐쳐서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심심할 때 같이 놀면 좋은데. 안보이니 아쉽네.


나는 떠오르는 차세대 주자, '꼬리'다. 내 지금은 힘이 없어서 그늘진 뒷마당 신세지만 머지않아 힘을 길러

앞마당으로 진출하리라. 그래서 요즘 '팬텀'과 함께 한 번씩 앞마당을 시찰하고 잔디밭을 거닐어 본다.

역시 햇볕이 잘 들고 넓어서 좋다. '코코'언니는 이 넓은 곳에 있으면서 왜 뒷마당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는지 모르겠다. 역시 있는 놈이 더하다더니.

전략적으로 언니 아들인 '반달'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옛날보다는 성질이 좀 죽은 것 같기도 하다. 

꼬리

내 이름이 '꼬리'인 이유는 처음 우리 형제가 좀 많았다. 집사들이 이름 짓느라 고심하더니 그냥 닥치는 대로 이름을 지었다. 내 꼬리가 끝이 꺾어졌다고 그냥 '꼬리'란다. 좀 어이가 없다. 언니와 오빠는 이름이 '코코'와 '비비'라 이름이 나름 예쁘고 멋있는데. 

그래도 '덜미'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덜미'는 어릴 때 담벼락 사이에 들어가 집사들이 강제로 덜미를 잡혀서 대롱대롱 매달린 채 잡혀온 적이 있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냥 '덜미'가 이름이 되었다.

'코코' 언니한테 가장 많이 당한다. 팬텀은 언니한테 몇 번 맞짱을 떠서 이제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

요즘 낙은 뒷마당 배추밭을 휘저으면서 다니는 일이다. 

팬텀

여기저기 응가하기도 좋고 그랬는데, 집사들이 우리 응가 치우느라 힘들었는지 배추밭을 노루망으로 다 덮었다. 

어, 놀 곳을 다 막았다. 그래도 틈새를 한 두 군데 발견해서 필사기로 응가를 했다.

집사한테 또 꿀밤을 먹었다.

꿀밤은 순간이고 즐거움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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