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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Nov 29. 2022

편지와 선물

첫 번째 편지를 쓴 건 강릉에서였다. 강릉 앞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카페의 문을 열자 막 내린 커피 향이 훅 덮쳐 왔다. 싱싱한 원두에서 풍기는 커피 향은 코 끝에서 전신으로 퍼졌다. 온몸으로 감각한 커피 향에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엽서를 구매해 편지를 쓰면 그곳이 어. 디. 든 수신인에게 편지를 전달해 주겠다는 약속이 시선을 끌었다. J와 나는 거의 동시에 한 사람을 떠올렸고, 우린 직사각형의 엽서에 진심이 담긴 마음을 빼곡히 채웠다. 그것이 N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였다. 당시, 한국에 있었던 N에게 비엔의 집 주소를 물었고 편지가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낯선 주소를 기입하고는 N에게는 비밀에 부쳤다. 뜬금없이 주소를 물어오는 우리에게 N은 그 이유를 재차 물었지만 우리는 깔깔거리며 그에게 정확한 집주소나 부르라고 윽박만 질러댔다. 절대 틀려서는 안 돼요! 편지가 국경을 넘어 N의 손바닥 위에 도착할 거라는 기대에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의심 없는 생생함과 날 것의 감정- 이를테면 동경의 대상을 남몰래 짝사랑하는 여고생의 순수한 마음 같은 것이 당시, 우리의 마음에 흘렀다.


그로부터 1년 뒤, J와 나는 같은 장소 같은 자리에서 동일한 주소로 한번 더 편지를 보냈다. 이번엔 꼭 N에게 닿길 바라며.


  "혹시 편지 왔다는 연락 같은 거 못 받았어요?"

  "몰라! 전화가 오긴 왔는데 이상한 전환 줄 알고 소리만 지르고 끊었네"


그 다운 행동에 J와 나는 눈을 마주치며 웃었지만... 나는 이따금씩 닿지 못한 편지에 대해 생각했다. 여기저기 휩쓸리다 발에 밟히거나, 찾아오지 않은 수신인을 기다리다 결국엔 버려 졌을지도 모를 일에 대해서. 납작하고 작은 엽서에 담긴 그 큰 마음에 대해서. 그러니까 '마음'이라는 것을 꺼내 보일 수 있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는 일에 대해서.


한국에서 맞은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케이크를 사고, 많이 걷고 물에 닿을 일이 많은 그를 위한 신발을 고르고 어느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우린 어색하게 그의 탄신일을 축하했다. 안 지 1년을 겨우 넘긴 인연- 그는 우리의 친절과 애정을 낯설어하면서도 무심한 듯 보이려 노력하는 듯했다. 패키지여행으로 온 손님들이 베푸는 친절과 관심. 무턱대고 보내는 마음에 그는 몸 둘 바를 몰랐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J와 나는 한두 번이 아닌 마음을 편지 혹은 선물에 담아 그가 어디에 있든 끈질기게 보냈다.


라오스에 있는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우린 또, 일을 벌였다.   

그는 커다란 상자를 사무실에서 받아 들고, 툭 문자를 보내왔다.

  "야, 무슨 난민 보내냐?"

  "그니까요, 필요한 거 말하라니까 몰라서 난민 상자가 됐잖아요!!!"

이런, 사랑스러운 사람들.


한국에서 보낸 상자에는 각종 생필품, 마른안주, 비상약 등과 생일 편지와 자잘 자잘한 메모들이 가득했다. 매 번 형체가 있는 물건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더 크게, 오버해서 보냈다. 물건보다는, 그 안에 담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눈치채길 바랐다. 그게 '사랑'이라면 그 사랑의 모양이 어떤 모양인지 알 수가 없어 그저 나는 그가 필요할 것 같은 물건에 모양 없는 마음을 그득 담았다. 작은 포스트잇에 적힌 J의 정갈하고 고운 글씨를 보고 N은 비로소 감동을 받은 거 같았다. 전하고 싶었던 '신호'를 알아차릴 때 선물은 비로소 빛나지.


  "고맙고, 아까워서 쓰지를 못하겠어"


N에게 준 선물 중 가장 고생스러웠던 선물은 '밥솥'이었다. 그에게 줄 밥솥을 가지고 인천에서 방콕을 거쳐 비엔으로 가던 날이었다. 밥솥이 비행기에서 오르고 내리는 과정에서 혹여나 깨질까 노심초사하며 밥솥의 안위를 걱정했다. 무사한 밥솥을 끌어안고 안도하면서도 J와 나를 귀찮게 하는 저 밥솥을 노려보기 일쑤였다. 방콕 호텔 구석에 놓여 있는 밥솥을 밥통이라고 놀려가며 어쩌다 여기까지 따라온 건지 우스워 픽픽거렸다. 밥솥은 무사히 N의 집에 도착하여 칙칙 소리와 함께 흰 수증기를 힘차게 뿜으며 고슬고슬한 첫 밥을 지어 놓았을 테다.  


한국에 있는 날 보다 비엔에 있는 날이 더 많았던 그에게 선물과 편지를 보내는 일은 사실, 상당히 귀찮은 일이기도 했다. 귀찮음을 몰아내며 한사코 마음을 담은 선물을 보낸 이유는 아리송한 우리의 인연에 힘을 싣고 이름을 붙이고 정의를 내려야 하는 관계를 넘어서고 싶어서였다. 물건보다 늘 더디게 도착하는 진심 때문에 전전긍긍했지만 진심은 결국에 닿아 작은 인연을 말없이 더 끈끈하게 했다.



알람이 울린다.

J는 늘 떠나기 전 N에게 물었다.

'오늘부터 하루하루 필요한 거 있으면 알려 주세요'

여전히 애정하는 곳에 있는 애정 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우리의 '특급' 마음이다.


어쩌면 일생 한 번뿐일지 모를... 무작정 마음을 쏟게만 하는 사람과 장소가 모두에게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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