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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Oct 14. 2023

7. 더블린을 떠나는 여정

#나의 결심이 우리의 결심이 되는 순간

 그와 동거를 시작한 지 1년 6개월이 다 되어 갈 때 즈음, 나는 더블린에서의 생활이 점점 지루하고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더블린. 내가 너무나도 애정하는 도시였지만 나는 더블린에게서 그에 걸맞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비자 문제였다. 나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가 만료된 후 학생 비자로 비자를 두 번이나 연장했다. 첫 번째로 연장한 학생 비자는 S를 만나기 이전이었고, 정말 더블린에 더 있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더블린에 있은 지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서 나는 이미 다음 연도를 준비했었다. 나는 더블린에서의 생활을 진정으로 즐겼다. 내 하우스메이트들은 나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고, 영어도 더 잘하고 싶었다. 다음 학기를 위한 학비를 벌기 위해 일했고, 당시 사귀던 한국인 남자 친구에게도 이별을 통보했다.

 

 두 번째로 연장한 학생 비자는 그저 비자 연장을 목적으로 받은 비자였다. S와 함께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고, 학생 비자 이외의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적었다. 아일랜드에서는 '서로 너무나도 사랑함'만으로는 파트너십 비자를 받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연애/동거 기간에 대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 쳇. 연애 기간과 사랑의 깊이가 항상 비례하는 것만은 아닌데 말이다. (이에 비하면 호주는 파트너십 비자에 대해서 정말 관대하다)


 당시 브라질에서 온 내 친구 재키는 영어-포르투갈어 통역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녀가 주로 하는 일은 인도나 파키스탄에서 온 사람들이 가난한 포르투갈 처녀들에게 돈을 주고 하는 결혼식에서 통역을 해주는 일이었다.


 재키는 사람들은 비자를 얻기 위해 불법 결혼까지 하는데 동거까지 하고 있는 나는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까짓 거 동거도 하는데 결혼이 별거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비자 때문에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타지에서 외국인과 결혼 한 한국 사람들은 그들이 진정으로 사랑해서 결혼을 했던 안 했든 간에 어떠한 이득 때문에(예를 들면, 비자) 결혼을 했다는 구설수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참 웃기다. 모두들 결혼을 하는 게 자신에게 이득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거지, 등 떠밀려 결혼하는 경우가 오히려 흔치 않을 텐데.


 어쨌든 더블린에서의 마지막 1년은 심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법적으로 '학생'이었던 나는 주에 20시간 이상은 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은 S를 기다리며 지냈다. 종일 빈둥거리면 몸이야 편했지만 몸이 편할수록 마음은 불편했다.


 또! 이 열등감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S와 나는 이 동거에 있어 공평하지 못했다. 내가 S에게 줄 수 있는 것보다 S가 나에게 주었던 것이, 주는 것이, 줄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았다. 매달 내는 렌트와 각종 생활비는 대부분 S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었다. S는 살림도 요리도 나보다 훨씬 잘해 나는 그 부분에서도 S에게 훨씬 못 미쳤다. 나의 독립성은 저 어디 서랍 한편에 치워져 있었고, 많은 것을 S에게 의존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것에 대해 고민하면 친구들은 다들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썩 행복하지를 못했다. 


 비가 17일째 계속 내리던 우중중한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더블린에서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날 저녁, 나는 S에게 다짜고짜 선언했다.

"나는 더 이상 더블린에서 못 살겠어. 어디로든 떠나야겠어. 어떻게 해?" 


 절대 이별을 생각하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어디로 떠나고 싶은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제는 여기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S에게 내 마음을 솔직히 말해야만 했다.


"그래, 그러자. 나 벌써 더블린에 4년 째야. 여기가 질려가는 참이었어. 우리 떠나자." S가 대답했다.

 단번에 승낙하는 S의 태도에 내가 더 놀라버렸다. 역시 여러 곳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는 마치 옆동네로 이사 가는 것 마냥 오케이를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S는 더블린에 사는 것에 나보다 더 권태를 느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여러 나라에서 살아왔던 S는 '정착'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동거를 하면 나의 선택이 우리의 선택이 되는, 한 사람의 목표가 우리의 목표가 되는 순간을 종종 겪게 된다. 그런
 상황이 오면 서로는 서로에게 그저 '잘 맞는 연인 사이'를 뛰어넘는 존재가 된다. 


 어쨌든 이건 나의 결심이 우리의 결심으로 바뀌는 순간이었고 우리는 한 배를 타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순간 정말 하나가 된 느낌이었고, 우리의 결속력은 더없이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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