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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Oct 19. 2023

9. 사랑보다 전우애

#30년은 같이 살아야 생긴다는 그 전우애?

 더블린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우리가 최상의 팀워크를 보여주었다면 호주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전우애를 다질 수 있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한 최상의 시나리오는 더블린을 떠나기 전까지 호주에 일을 구하는 것이었다. S는 더블린을 떠나기 바로 직전까지 호주에 있는 몇몇의 회사와 인터뷰 기회를 가졌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호주 회사와의 인터뷰 시간은 아일랜드 시간으로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어떤 날은 새벽 1 시인 적도 있다.


 인터뷰가 잡힌 날마다 우리는 졸린 눈을 치켜뜨며 인터뷰 시간을 기다렸다. 몇 번의 Sleepless night에도 불구하고 인터뷰가 취업으로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웠다. 회사 입장에서도 화상 인터뷰라는 것이 흔치 않았던 그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화면상으로만 판단하고 고용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호주로 떠날 준비는 어떻게 돼가고 있냐는 가족들의 질문에 우리는 S가 이미 호주에 일을 구했다고 둘러대야 했다. 가족들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해두자.


 결국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최상의 시나리오는 달성하지 못한 채 호주에 도착했다. 그렇다고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전략가처럼 머리를 맞대고 전략 전술을 구축한 것이 이미 몇 달이었다. 우리에게는 플랜 B가 있었고, 플랜 C가 있었다. 이쯤의 실패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S, 아무래도 내가 커피숍에서 일한 경력이 있으니 호주에서 일을 구하는 것이 많이 어렵지는 않을 거야. 일단 나는 일부터 구할게. 돈을 많이 벌진 못해도 네가 좋은 일을 구할 때까지 재정적으로 서포트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모아놓은 돈도 있고."

 전략 전술 넘버 원. 여러 레스토랑과 커피숍 등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는 내가 일을 먼저 구해 일단 고정 수입을 만드는 것이었다. 호주에서는 열 걸음마다 하나씩 커피숍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로컬 커피숍이 많다.


 호주 사람들의 커피 입맛이 까다롭다고는 하지만 나도 나름 한국과 유럽에서 커피를 만들었던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나는 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온라인/오프라인으로 수많은 커피숍에 이력서(이미 더블린에서부터 준비해 놓은 이력서였다)를 넣었다. 낮에는 데이트 삼아 시드니 시내를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커피숍마다 출력한 이력서를 돌렸고, 저녁에는 온라인으로 이력서를 넣었다.


 결과는 성공! 나는 에어 비앤비에 짐을 다 풀기도 전에 시드니 중심가에 있는 커다란 은행 건물에 딸린 커피숍에 일을 구할 수 있었다. 시드니에 도착한 지 단 몇일 만이었다. 내가 바리스타로 일했던 것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이었다. 일도 꽤 만족스러웠다. 개인 카페가 아닌 F&B (푸드 앤 베버리지) 회사에 정식으로 고용된 것이라 급여도 나쁘지 않았고, 은행 건물 안에 있는 카페라 건물 내의 손님만 상대했기 때문에 일도 비교적 쉬웠다.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돈을 벌 수 있어 더블린에서 모아놓은 비상 자금을 쓰지 않게 되어 다행이었다.     


 전략 전술 넘버 투. S만큼은 반드시 우리에게 비자를 서포트해 줄 수 있는 좋은 회사를 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보다 신중하게 해야 하는 일이었다. S의 경력과 스킬을 높이 사 그를 고용하고 싶었던 회사들이 몇몇 있었지만 번번이 고꾸라진 이유는 비자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S를 고용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비자를 서포트해 줄 수 없다면 제아무리 훌륭한 회사라고 해도 오히려 우리 쪽에서 일을 사양해야 했다.


 S가 일을 구하던 한 달은 매일매일이 힘들고 초조했지만 또 매일매일 즐거웠다. 내가 일하던 커피숍은 세시 정도면 일이 끝났다. S가 시내에서 인터뷰가 있는 날이면 나는 일이 끝나자마자 그가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건물 계단 앞에서 그를 기다리곤 했다. 인터뷰를 막 끝내고 나온 S는 멀끔한 수트 차림이었고, 나는 커피와 우유 냄새가 잔뜩 나는 검은색 셔츠와 바지에 머리는 질끈 묶은 차림이었다. 그리도 우리는 늘 두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시드니에 온 지 꼭 한 달째 S는 우리 조건에 꼭 맞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법 상 한 곳에서 6개월 이상은 일을 할 수 없는데, 그의 회사는 6개월 안에 그에게 워킹 퍼밋 비자를 내주었다.


 구직자 주제에 '내 파트너의 비자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나는 이 회사와는 일하지 않겠다'는 S의 배짱 덕에 그의 회사는 나의 워킹 퍼밋 비자까지 지원해 주기로 했고, 우리는 같은 회사에서 추후 영구 비자까지 지원받았다. 물론 비자에 관련한 모든 비용은 100퍼센트 S의 회사에서 부담했다. 우리를 걱정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사람들은 우리에게 성공적인 이민의 비결이 뭐냐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전략 대 성공이다.


 대략 25년 30년은 살아야만 생긴다는 커플 간의 끈끈한 전우애가 우리에게는 조금 빨리 찾아왔다.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집도 절도 없는 낯선 곳에서 기댈 곳이라고는 서로 밖에 없었고 지킬 것이라고는 서로 뿐이었다. 믿을 것이라고는 서로 뿐이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우리는 함께 전략을 구축했고, 서로 연합했고, 같이 싸웠다. 호주에서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동거의 새로운 챕터를 열며 사랑에 뜨거운 전우애까지 더해지니 더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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