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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껌딱지 Dec 19. 2023

엄마가 된 후 1 - 못난이 상자

내 마음속에 생긴 못난이 상자

2022년 12월 나는 엄마가 되었다.


사실 엄청난 기대를 앉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임신과 출산을 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과 나의 2세가 보고 싶었고 준비를 시작한 지 100일 안에 고맙게 찾아온 아이였다.


고마움도 잠시

임신 32주까지 종류별 입덧과 코로나, 임신중독, 고혈압, 그리고 하혈을 경험하며

남편과 나는 출산 직후까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배뭉침도 심해

30주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어떤 자세로도 잠을 자기 어려웠다.


어서 빨리 내어나 주길 바라며 치킨을 먹고 잠든 밤,

밤 10시부터 시작된 진통은 새벽 5시를 넘게 이어졌고 남편과 나는 부랴부랴

짐을 챙겨 산부인과로 향했다.  입원수속을 밟고 기본처치를 하고 무통주사를 달자마자

양수가 터졌고 그렇게 10시 30분 짱아가 태어났다.


온갖 축복 속에서 2박 3일간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13박 14일 동안 산후조리원생활을 시작했다. 무려 400만 원이 넘은 고가의 조리원이었다.

따뜻한 방, 처음 써보는 가전제품들, 회당 20만 원 하는 산후 마사지를 받으며 2일 정도는

행복했다.  아이도 건강했고 밥도 맛있었고 출산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려던 찰나


모유의 압박과 초유를 먹여야 한다는 일명 초유라이팅 (초유+가스라이팅)이 시작되었다.


'초유를 먹여야 감기를 안 하지'

'모유를 먹여야 아기가 건강하지'


시아버지,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친정아버지 할 것 없이 나의 가슴과 모유의 안부를 물었고

그때부터 내 마음에 못난이 상자가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평소 거절을 못하는 성정에 반박한 번 하지 못하고 힐난과 질책을 묵묵히 들어야만 했다.

나긋난 어조와 아름다운 단어로 포장된 '엄마가 해야 할 당연한 일 - 모유'라는 의무를 들으며

'내가 이러려고 아기를 낳았나.....' 싶었다.


조리원 입소한 지 3일 만에 나는 우리 아기를 낳은 것을 후회하는 못난이 상자가 생겼다.

그 못난이 상자는 점점 커져서 원망의 대상이 '우리 아기'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널 낳아서... 나의 존엄이 무시되고 있구나'라는 못난 생각.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못난이 상자에 내가 잡혀 먹힐 무렵 옆에 있던 남편이 말했다.


'단유약 처방받자, 나는 지금 네가 더 소중해'


모유는 돌지만 거의 양이 없었고, 새벽마다 울면서 유축하던 모습을 보던 남편은

시어머니와 언성 높은 통화를 끝낸 후 나를 안아주었다.

친정에서도 언니와 동생이 친정엄마에게 '모유' 이야기 꺼내지 말라며

'모유'를 강조하는 친정엄마를 나무랐고 그렇게 커져가던 못난이 상자는 성장을 멈췄다.


엄마가 된  후

나의 첫 번째 못난이 상자는 단유와 함께 어딘가로 사라졌다.


다행이었다.  '우리 아기'를 다시 사랑할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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