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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가족 여행자들(태국 방콕)

by 소정

”자~ 오늘은 방콕 왕궁을 갈꺼야!“

”더워요. 얼마나 걸어야 해요?“

아침부터 덥다고 칭얼거리는 딸들과 실랑이다. ’아직 어려서 그런거겠지.‘ 위안하며 아이들을 달랜다.

’오늘도 힘든 하루겠구나.‘

여행을 온 건지 고행을 온 건지. 가족 여행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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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왕궁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다. 건너편에 한 남녀가 보였습니다. 금발 머리에 180cm를 넘어 보이는 훤칠한 키, 다부진 몸매를 지닌 그들은 카오산로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인이었다.

’어, 옆에 누가 또 있네?‘

연인의 옆에는 한 무리가 더 있었다. 남자아이 1명과 여자아이 2명이 연인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여자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남자는 한 마리의 수사자처럼 무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족이있다. 세 아이 중 첫째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내 키 정도의 건실한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자연스럽게 머리를 풀어 헤친 여자아이는 중학생 같다. 눈가에 장난기 가득한 막내 여자아이는 초등학교 1~2학년 같아 보였다.


남루한 행색이었다. 아빠의 빛바랜 노랜빛 티셔츠는 분명 초록빛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보랏빛 냉장고 바지는 군데군데 구멍 투성이다. 아들이 입은 하얀색 티셔츠는 표백제로 여러 번 빨아도 되돌아오지 않을 것 같이 누렇게 되었고, 둘째의 머리는 미용실에 언제 갔는지 모를 정도로 산발이다. 막내가 쥐고 있던 강아지 인형은 듬성듬성 털이 빠져 있었는데도 보물처럼 꽉 쥐고 있다. 애착인형임이 분명하다. 그들의 겉모습은 가난함이나 비루함보다 오래된 필름 카메라의 한 조각처럼 보였다. 세월의 향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골동품처럼, 오랜 여행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우라가 풍겼다.


'이 가족은 어떤 계기로 시작했을까?',

'세상을 떠돈지 얼마나 되었을까?’

'경제적 어려움은 없을까?',

'아이들이 힘들다고 하지 않았을까?‘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였고 무엇을 얻었을까?'

그들은 바라보면서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가족은 각자 감내할 만큼의 짐을 등에 지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50L 배낭이, 첫째와 둘째는 30L 배낭이, 막내는 책가방을 메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의 배낭 안이 궁금했다. 아마도 자신을 위한 것보다는 가족을 위한 물건이 먼저였을 것이다. 세면도구, 상비약품, 간편식 같은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게 부모 아닌가. 아이들의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옷가지, 일기장, 책 등을 담겨 있을 것 같다. 유독 첫째의 배낭이 무거워 보인다.

'첫째의 배낭 안에는 부모와 동생들의 짐을 나누어 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배낭의 크기가 한정되어 있기에 심사숙고한 후에 꼭 필요한 것만 담았을 것이다. 멋을 부리기 위해 여러 옷을 고르기보다 쉽게 세탁이 가능한 옷 한 두벌, 기초화장품 몇 한 두 개, 여러 번 정독할 수 있는 책 한 두 권.

우리 아이들이라면 어땠을까?

"아빠, 무거워요."

"내가 왜 이 가방을 들어야 해요?"

"아빠, 실바니안 인형, 태블릿 PC는 꼭 가져가야 해요!"

이런 말들이 먼저 떠 오른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배낭이 무겁다고 징징거리지 않는다. 부모에게 응석 부릴 나이인 막내도 자기 몫은 자기가 책임을 진다. 힘들다고 놓아 버리면 가족 중 누군가가 그 짐을 대신 짊어져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니 장기 여행중인 그들의 배낭은 일주일가량 여행을 즐기는 우리보다 가벼웠다. 짐이 많다는 것은 불안함과 불확실에 대한 반증임을 깨닫는다. 이 가족은 최소한의 짐이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한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리라.

'어린 자식들의 짐을 부모가 대신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매정한 부모 같아 보이기도 했다. 부모는 성인이고 자식들은 미성년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 부모는 자식의 짐을 들어주는 것 대신 끝까지 책임지도록 기다려주었다. 험난하고 잔인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자식들이 자기 삶 속에서 과욕을 버리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선택하라는 뜻이다. 그대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다. 가슴 속에 이타심을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기 배낭은 끝까지 책임지면서 얻게 되는 성취감을 심어 주고자 하는 의도다. 이것이 자식들에게 여행을 통해 심어주고자 하는 부모의 작은 씨앗들일 것이다.


줄줄이 서 있는 가족들을 보면서 참된 가족 여행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 자식들과 이런 여행을 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그리고...

2018년 가을, 우리 가족은 한 달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900km 종주 배낭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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