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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간을 저당 잡힌 대가, 월급(대만 타이베이)

by 소정

낯선 곳에서 그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아침의 일상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타이베이에서도 출근 시간에 맞추어 지하철을 탔다.


타이베이 지하철


만원 전철 안의 모습은 우리와 닮아 있었다.

양복을 전투복처럼 입고 바삐 움직이는 회사원,

정해진 개찰구를 따라 표정없이 기계적으로 걸어가는 이,

뺨이 벌게질 정도로 휴대폰을 고정한 채 메모하는 사람,

좁은 의자에 앉아 쪽잠을 자는 사람.


다들 영혼이 없어 보였다. 초점 없는 눈망울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한 마리의 소 같았다. 새파란 티셔츠에 하늘색 반바지를 입은 나는 유독 튀어 보였다. 마치 무채색 그림 속에 실수로 떨어뜨린 파란 물감 한 방울 같았다.


’다들 먹고 사느라 고생이네.‘


먹고 사는 문제, ’벌이‘가 떠올랐다. 우리는 '재벌 집 막내아들'이 아닌 이상 긴 인생을 영위하려면 벌이는 필수부가결한 존재다. 매달 한 번 통장에 찍히는 숫자에 웃고 우는 우리다. 가뜩이나 기대수명이 늘어가는 데 언제까지 돈을 벌어야 할까? 아니,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임금은 내 시간을 파는 대가’


하루는 24시간이다. 누구에게나 똑같다. 시간만큼 공평한 건 없는 것 같다.

하루에 8시간을 잔다고 하면 16시간이 남는다.

16시간 중 씻고, 먹고, 집안일 등 3시간을 쓰면 13시간이 남는다.

법정 근로 시간은 8시간이라고 하니(법정일 뿐인 건 우리는 다 안다) 8시간을 일하면 5시간이 남는다.

아! 출퇴근 시간도 있다. 5시간 중 출퇴근 2시간을 빼면 남은 시간은 3시간.


하루 중 온전한 내 시간은 3시간.

돈 버는 시간은 최소 10시간.

24시간 중 자의로 쓰는 시간보다 타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간이 3배가 넘는다.


남은 시간도 경쟁에 살아남으려고 어학 공부도 하고, 직무 개발도 해야 하고, 인맥도 쌓아야 하고, 회식도 해야하고...


우리는 나만의 시간은 하루에 1시간이나 될까?

씁쓸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깨어 있는 동안 인생의 많은 시간을 직장에 바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 시간만 바치? 열과 성을 바치고도 상사의 꾸지람, 악성 민원, 업무의 중압감, 심장이 멈출 것 같은 스트레스 등이 우리를 괴롭힌다.


결국, 임금이란 내 시간, 내 목숨, 내 인생을 돈으로 환산한 대가이지 않을까?


내 시간을 악마에게 바친 대가로 부귀영화를 얻었지만 결국 나락에 빠지고 마는 영화가 떠올랐다.


대만 보피랴오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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