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청춘 - 라오스'편이 나오기 전까지 라오스는 미지의 국가였다. 가는 방법도 쉽지 않다. 방콕에서 10시간 넘게 야간 버스를 타거나 한 줄에 4명이 탈 수 있는 작은 비행기를 타는 방법 두 가지뿐이었다. 당연히 나는 야간버스를 선택했습니다. 가난한 여행자에게 비행기는 언감생심이니까.
밤 10시쯤 방콕 카오산로드에서 라오스 비엔티안행 야간버스에 몸을 실었다. 몸이 시릴 정도의 에어컨 바람에 몸이 벌벌 떨리고 바람과 맞바꾼 건조한 공기에 입과 콧속이 메말라 간다. 좌석 앞에 놓인 담요를 덮었다. 이등병 때나 만져봤던 낡은 모포의 질감과 곰팡내, 언제 세탁했을지 모르는 군데군데 자국들은 수많은 여행객의 체취를 품고 있었다.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그러나 낡은 버스와 비포장도로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왼쪽으로 덜컹, 오른쪽으로 덜컹, 버스가 아니라 ATV를 탄 것 같다. 무의식과 의식 사이를 오가다 보니 새벽 동이 떠올랐다.
버스는 라오스 국경 앞에 내려다 놓았다. 비루한 행색으로 주변을 돌아보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강남대학교'라고 적힌 버스에 오른다. 우리나라의 낡은 셔틀버스가 여기에서는 최신식 버스이다. 비엔티안에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고 도미토리에서 잠을 청했다. 내일 새벽같이 루앙프라방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루앙프라방행 버스표도 구입하고 간단히 요기도 했다.
’이제 버스만 타면 되는구나.‘
아침부터 운세가 좋았다. 그것도 잠시, 멀리서 '탕! 탕! 탕!' 소리가 들렸다. 버스 주차장을 가로질러 한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달린다. 그 뒤로 한 무리가 쫓아간다. 그들의 손에는 'AK 소총'이 들려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총 말이다.
'21세기에 이게 무슨 상황이지?'
먼 타지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고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하얗게 질러버린 나는 기둥 뒤에 숨어 몸을 움츠렸다.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신의 할 일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듯이 루앙프라방행 버스가 들어왔다. 나는 버스 안에 들어가 몸을 숙인채 출발하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탄 버스는 어릴 적 탔던 80년대의 버스와 닮았다. 에어컨이 없어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선풍기가 되었고 어르신들은 창문 밖에 고개를 내밀고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2인승 좌석에 3명씩 타는 것은 기본이고 음식, 과일, 고기부터 강아지, 닭까지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렇게 7~8시간을 가야 한다. 도시를 벗어나니 비포장도로가 펼쳐졌고 구불구불한 고개를 따라 버스가 춤을 춘다. 밖을 쳐다보니 가파른 절벽이 뿐이다.
'나는 못 봤다. 여기는 절벽이 없다.'
눈을 감고 최면을 걸어본다..
버스를 탄지 3~4시간 정도 지난 듯했다. 고개를 따라 산 중턱에 올랐을 무렵 바위가 도로 앞을 막았다. 산사태가 났던 것이다. 버스는 멈추었다. 사람들은 밖으로 뛰쳐나온다. 어떤 이는 토악질을 하고 누구는 수풀로 들어가 쭈그려 앉는다. 나는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내가 여길 왜 왔지?'
'무슨 부귀영화를 얻겠다고 이 고생을 하는 거지?'
다행히 3~4시간이 지나 포크레인이 도착했다. 버스는 다시 루앙프라방으로 향했다. 해지기 전에 도착할 여정은 칠흑 같은 밤에 나를 떨구어 놓았다. 눈에 보이는 아무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 배낭을 팽개쳐 두고 침대에 누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창문 밖에는 여명이 펼쳐졌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탁발(불교에서 수행법 중 하나로, 집마다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는 행위)'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미 길가에는 공양물을 준비한 사람들로 긴 줄이 펼쳐졌다. 동이 조금씩 트기 시작하면서 100m 멀리 주황빛, 선홍빛의 승려들이 대나무 바구니를 들고 걸어온다. 신도들은 무릎을 꿇은 채 자신들이 준비한 것들을 공양한다. 어느 집은 밥을, 어느 집은 생선을, 어느 집은 야채와 과일을... 승려들은 성심을 다해 공양물을 바구니에 넣는다. 이렇게 받은 먹을거리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나누어 먹는다고 한다. 공양물 하나하나가 간절한 소망과 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다. 신도들은 합장하고 스님들은 온화한 미소로 답한다. 이보다 더 순수하고 경건한 아침이 있을까?
내 마음도 순백으로 물들어 갈 때쯤 '번쩍!, 번쩍!' 번개가 친다. 스님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여행자의 카메라 플래시였다. 불빛이 터지니 승님과 공양하는 이들이 깜짝 놀란다. 경건한 이곳의 전통과 문화를 하나의 '꺼리'로 치부하는 이방인들이 못마땅스러웠다. 미술관 속 작품에도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게 기본 예의이거늘, 루앙프라방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 화가 났다.
스님들이 길을 떠나고 신도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걸었다. 작은 마을이라 길을 잃어도 다시 돌아가면 되기에, 아니면 이곳의 사람들이 저를 데려다줄 것이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녹음을 간직한 이름 모를 나무들이 전해주는 맑은 내음을 맡았다. 각양각색의 새들이 울부짖는 언어를 배경음악 삼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황금빛 사원에 다다랐다. 왓 씨엥통(Wat Xiengthong)이다. 순간 울컥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고통, 슬픔, 울분과는 다른 의미의 눈물이었음은 자명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공간과 모습, 내음 같은 것들이 나의 마음을 울렸다. 루앙프라방에 있는 지금이 감사했다.
나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루앙프라방에서만 머물렀다.
살다 보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되게 하려고 과욕을 부리는 경우가 있다. 능력이 되지 않는 데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발버둥 치는 경우도 있고, 노력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하기도 한다. 정해진 절차가 있는데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는 유혹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런 마음들이 모이면 옳지 않은 일을 하게 된다. 시험 시간에 커닝하고, 편법으로 일을 해결하려고만 한다. 입신양명을 위해 나보다 뛰어난 이를 험담하거나 싹이 나지 않게 밟아버린다.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본인은 알고 있다. 결국 탈이 날 것이라는 것을... 당장은 편하고 좋겠지만 언젠가는 시퍼런 칼이 되어 내 심장에 꽂히게 될 것이다.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려고 억지를 쓰지 말자. 묵묵히 정도를 걸어가자. 그 과정과 여정이 처음에는 고단하고 '바보 같다.’, '고지식하다.'라고 비웃음을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심은 통한다. 시간이 흐르면 원칙과 순리를 따라간 내가 옳았다는 걸 증명해 줄 것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떳떳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