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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보들의 도쿄 유람기 (일본 도쿄)

by 소정

군대에서 갓 제대한 나와 고등학교 시절 친구는 외국을 나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일본'으로 정했다. 고등학교 시절 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본 문화는 개방되지 않아 미지의 세계였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라고 할까? 일탈과 반항을 꿈꿨던 나에게 있어서 일본 문화는 매력적이었다. 동대문시장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복사판 일본 영화, 애니메이션 비디오테이프나 일본 음악CD를 구입했었다(흔히 해적판이라고도 했는데 그 당시에도 만원 정도 했으니 꽤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음지에서 산 테이프와 CD를 금이야 옥이야 하며 고이 모시고 다녔다. 아직도 '철도원', '러브레터' 포스터를 보거나 지금도 'Zard', 'X-japan', '아무로 나미에'의 노랫가락을 들으면 설레였던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나라는 정했으니 그다음은 지역이었다.

"일본 하면 도쿄지!“

1도 고민 없이 도쿄로 정했다. 둘 다 배낭여행은 둘째치고 외국 여행은 전무였기에 항공권과 숙박권을 묶어 파는 자유여행으로 떠났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후 주변이 온통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로 된 간판들이 눈에 띄였다

"드디어 일본이다!“

친구와 나는 감격에 휩싸였다. 그토록 동경(憧憬)하던 동경(東京)에 왔으니 출세한 기분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감격만 했다는 것이다. 평소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성격이 아닌 두 놈이 달랑 책가방 하나만 메고 타국에 왔으니 오죽하겠는가? 현타가 오기 시작작했다(그래도 복대는 차고 갔으니 최소한의 준비는 한 셈이다).

"자, 도착했는데 어디 가지?"

"그러게. 너는?"

"흐음... 나도 크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적막...

"우리 가이드북 챙겼나?"

"설마... 챙겼겠냐?"

또 적막...

'아... 그렇지. 그게 우리지...‘

서로 멍하니 쳐다봤다.

"시부야로 갈까?"

라는 친구의 말에

"그래.“


image01.png 시부야 하치코 동상

'시부야'로 출발했다. 지하철을 타러 역 안에 들어가 보니 노선도가 우리나라의 것과는 달랐다. 노선도가 미로 찾기 같았고, 국영 철도, 민간철도 등 철도 회사가 달라 어느 노선은 환승이 되고 어느 노선은 다시 역 밖으로 나와 다른 철도역으로 다시 들어가 타야 하는 등 각양각색이었다. 널뛰는 심박수를 가라앉힌 후 다시 노선도를 보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안 그러면 코 베인다.‘

스파이더맨이 튀어나올 것 같은 촘촘한 거미줄 노선도를 보면서 시부야 루트를 찾았다. 튀어나올 것 같은 두 눈을 부여잡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금이야 구글맵으로 지하철 노선도와 방향, 출발, 도착 시각까지 알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귀파게용 안테나가 달린 무전기 핸드폰이었으니 오로지 감으로 찾아 다녀야 했다. 그렇다고 넉살 좋게 일본인들에게 물어볼 용기도 없었으니 운에 맡기고 움직였다. '남한테 물어볼 바에 몸이 고생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가 우리의 사회성이었다. 다행히 지하철은 우리를 시부야역으로 인도하였다. 시부야역 밖으로 나와 사방팔방으로 열리는 교차로를 건넜다.

’영화에서나 보던 곳을 직접 왔다니.‘

영화 속 주인공(아니면 엑스트라 정도?)의 느낌에 취했다. 시부야역의 명물인 충견 하치코 동상 앞에서 서로의 어색한 독사진을 찍어주고 밥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밥이라... 밥집을 찾는 것도 큰 도전이었다. 숫기 없던 우리는 주문하는게 두려워 맛집 대신 프렌차이즈 덮밥집으로 갔다. 식권 자판기가 있어서 점원이랑 마주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야. 덮밥 맛있다."

"진짜... 생각보다 괜찮은데? 일본 가정식 백반의 느낌이야."

일본 가정식은 커녕 일본식 덮밥도 처음 먹어보는 우리는 서로에게 허세를 부렸다. 마음은 회전초밥, 전통 나베다. 맛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규동 맛이었다. 의 맛이죠.

배가 부르자 친구가

"야, 이제 어디 가냐?"

"아... 하라주쿠 갈까 ?"

"그래. 패션의 성지인 하라주쿠도 들려줘야겠지?”

하라주쿠로 목적지를 정했다. 시부야에서 하라주쿠까지는 걸어서 20~30분 거리라고 하기에 두 발을 믿기로 하였다. 제대한지 얼마 안되었기에 체력은 자신있었다. 커다란 도로 이정표를 살피며 걷는 데 점점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향했다. 벽에는 해골 그림들과 그라피티가 복잡하게 그려져 있었다. 왠지 한쪽 구석에서 특공 복을 입고 못이 박힌 야구방망이를 든 폭주족이 쭈그려 앉아 우리를 기다릴 것만 같았다.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는 거 아니야?'

무서웠다. 나는 친구에게,

"여기는 아닌 것 같아. 그치?“

친구도

"그런 것 같아. 다른 길로 가볼까?“

무서워서 그런게 아닌 것처럼 여유를 부렸지만 우리는 경보 이상의 속도 내고 있었다. 마치 경주마처럼 바닥을 튕기듯이 큰 도로를 향해 달렸다.


image02.png 하라주쿠 역

뜨거운 뙤약볕 아래, 티셔츠는 땀에 젖어 등에 달라붙고 갈증이 최대치일 때쯤 멀리서 무언가가 보였다. 나무 기둥 사이로 놓인 벽돌과 둥근 아치형 지붕이 예스러운 역사였다.

"아! 하라주쿠다!"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도 함께 풀렸습니다. '찾았다.'와 '살았다'의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하라주쿠를 구석구석을 구경하였다. 10~20대가 주를 이루는 하라주쿠다. 빨간 모히칸 머리에 빨간 가죽바지를 입고 은인지 쇳덩어리인지 모르는 팔지, 반지로 온몸을 치장한 이부터 베이지색 양산을 들고 유럽풍 공주 옷을 입고 레이스가 나풀나풀 흩날리는 여인까지 개성이 넘치고 넘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면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우리가 오히려 눈에 띌 정도였다. 이태원과는 다른 이곳만의 유니크한 패션과 사람들을 보면서 한없이 걸었다. 여행을 온 게 아니라 걷기대회를 온 듯한 느낌이다. 그러다 빈티지 숍이 보였다.

"여기 한 번 들어가 볼까?"

친구와 저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척 옷을 만지작거렸다. 물총새가 물고기를 사냥하듯이 재빠르게 택을 잡고 뒷면의 가격을 확인했다.

'역시... 일본은 비싸다.'

그래도 티셔츠 하나 정도는 사 입고 돌아와야 '나 도쿄 다녀왔어요~, 하라주쿠에서 옷 샀어요~.' 라고 자랑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옷, 저 옷을 살펴보았다. 갓 제대하여 군대 물도 다 빼지 못한 우리가 패션에 대해 무엇을 알았겠나? 결국 평범한 티셔츠 한 벌을 샀다. 그나마 평소 검정 아니면 남색만 고수했던 내가 초록색으로 고른 건 나름 파격적인 시도였다.

"그만 집에 갈까?"

"그... 그래."

그렇게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편의점 캔 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했다. 오다이바도, 아키하바라도, 지브리파크도 보지 않은 채 주구장창 걷다가 귀국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의욕만 앞섰던 것 같다. 여행에 대한 갈망이 있으나 자신감이 부족했다. 새로운 곳에 오니 소심하고 낯설어하는 내 성격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넉살 좋은 여행자들였다면 선술집에서 친구를 사귄다거나 편집숍에서 자신만의 패션을 뽐내기도 했을 것이다. 허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주변만 서성거렸다. 아쉬움이 많이 남은 첫 배낭여행이었다. 그래도 도쿄에서의 여행을 시작으로 가깝게는 홍콩, 중국. 멀리는 터키, 시리아까지 여러 곳을 누비고 다녔다. 경험의 누적될수록 조금씩 여행자의 때가 묻기 시작다. 안되는 말로 현지인과 서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현지인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사기를 당했을 때는 육두문자도 뱉을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의 순간들이 나를 성장시켜 준 것이다.

배낭을 멜지 말지 고민하는 분들이 계실까? 내 대답은

"주저하지 마세요. 일단 메세요! 그리고 떠나세요! 분명히 얻는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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