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공저/이창신 역
-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공저/이창신 역
이 책은 세계에 관한 이야기고,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서커스로 시작하는가?
세상은 해를 거듭하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진다. 모든 면에서 해마다 나아지는 게 아니라, 대체로 그렇다. 더러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지만, 이제까지 놀라운 진전을 이루었다. 이것이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이다.
내가 검을 삼키는 이유는 청중에게 직관이 얼마나 엉터리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검을 삼키기가 불가능해 보이고, 앞서 제시한 세상에 관한 자료가 기존 생각과 크게 충돌하더라도, 그것은 가능한 일이자 사실임을 알려주고 싶다.
나는 여학생이 제시한 정의가 똑 부러져서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데이터를 갖고 그 정의를 점검할 수 있었다. 오해에 사로잡힌 사람을 설득할 때는 그의 의견을 데이터와 비교하는 방법이 매우 유용하다.
한마디로, 세상은 더 이상 예전처럼 둘로 나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다수가 중간에 속한다. 서양과 그 외,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부자와 빈자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간극을 암시하는 이쪽 또는 저쪽이라는 단순한 분류는 쓰지 않는 게 옳다.
그렇다면 부자와 빈자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는 오해는 왜 그토록 바뀌기 어려운 것일까? 내 생각에 인간에게는 이분법적 사고를 추구하는 강력하고 극적인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어떤 대상을 뚜렷이 구별되는 두 집단으로 나누려는 본능인데, 두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실체 없는 간극뿐이다.
누군가 내게(또는 내가 나 자신에게) 지금 과도하게 극적인 간극 이야기를 하거나, 간극 본능을 자극하려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신호가 세 가지 있다. 이를 각각 '평균 비교', '극단 비교',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이라 부르자.
오해를 없애려면 그 오해를 대체할 단순하고 좀 더 적절한 사고방식이 있어야 한다. 네 단계가 바로 그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 식의 생각은 대개 부정 본능 때문이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주목하는 본능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과거를 잘못 기억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사건을 선별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상황이 나쁜데 세상이 더 좋아진다고 말하면 냉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우리는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에 없는 과거의 비참함과 잔혹함을 자신에게든 자녀에게든 상기시키지 않으려 한다.
나는 가능성 옹호론자로서 이 모든 발전을 바라보고, 앞으로도 더 발전하리라는 확신과 바람을 갖고 있다. 낙천주의가 아니라 상황을 명확하고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며, 세계를 건설적이고 유용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상황이 점점 좋아진다고 말할 때는 결코 그런 뜻이 아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를 외면하자는 뜻이 아니라, 상황이 나쁠 수도 있고 동시에 좋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상황은 나쁘면서 동시에 나아지고 있기도 하고, 나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나쁘기도 하다. 세계의 현 상황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상황이 점점 좋아진다는 말을 들으면 '걱정 마, 안심해'라거나 '신경 안 써도 돼'라는 뜻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충실성은 지금 저 뉴스는 부정적인 면을 보도한다는 걸 알아보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보다 우리에게 전달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세상은 지독히 불공평하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 시작하든 소득이 2배 증가하면 여지없이 삶이 달라진다. 나는 소득을 비교할 때마다 이런 식의 2배 셈법을 이용하는데, 그것이 돈이 작동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지진, 소음, pH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직선이라고 단정하지 마라. 많은 추세가 직선보다는 S자곡선이나 미끄럼틀 곡선, 낙타 혹 곡선, 2배 증가 곡선으로 진행된다. 생후 6개월까지의 성장 속도를 이후에도 계속 유지하는 아이는 없으며, 그러리라 예상하는 부모도 없다.
이 주목 필터에 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등 10가지 본능 모양의 구멍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정보는 이 필터를 통과하지 못하지만, 극적인 여러 본능에 호소하는 정보는 구멍을 통과한다. 결국 극적 본능에 딱 맞는 정보만 주목하고 다른 정보는 무시해 버린다.
공포는 유용할 수 있다. 단, 실제로 위험한 것에 공포를 느낄 때라야 그렇다. 공포 본능은 세계를 이해하는 형편없는 지침이다. 공포는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은 것에 주목하게 하고, 실제로 매우 위험한 것은 외면하도록 한다.
사실충실성은 지금 우리가 공포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고,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반드시 가장 위허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폭력, 감금, 오염을 두려워하는 자연스러운 본능 탓에 우리는 그 위험성을 체계적으로 과대평가한다. 공포 본능을 억제하려면 위험성을 계산하라.
콩고와 탄자니아에서 선교하며 간호사로 일하다 내 멘토가 된 잉에게르드 로트의 말이 생각난다. 로트는 내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에서는 무엇이든 완벽하게 하려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더 좋은 곳에 쓸 자원을 훔치는 꼴이니까요."
수치보다 눈에 보이는 피해자 개개인에게 지나치게 주목하면 우리 자원을 문제의 일부에만 모두 쏟아부을 수 있고, 따라서 훨씬 적은 목숨을 구할 뿐이다. 이런 원칙은 부족한 자원을 어디에 쓸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경우에 모두 해당한다.
중요성을 오판하지 않으려면 수를 하나만 갖고 따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절대로 숫자 하나만 달랑 남겨두지 마라, 절대로! 하나의 수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믿으면 절대 안 된다. 수가 하나라면 항상 적어도 하나는 더 요구해야 한다. 그 수와 비교할 수가 필요하다.
인간의 목숨을 놓고 이런 셈을 하는 걸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셈을 하지 않는 것이 되레 부끄럽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의 수만 보면 내가 그걸 잘못 해석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하지만 수를 비교하고 나눠보면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뉴스에 수치가 달랑 하나만 나오면 내 머릿속에서는 항상 경보음이 울린다. 그 수를 무엇과 비교해야 할까? 그 수가 1년 전에는 어땠을까? 10년 전에는? 비교 가능한 나라나 지역은 어디일까? 어떤 수로 나눠야 할까? 이 수와 관련한 총합은 무엇일까? 1인당으로 환산하면 몇일까? 나는 이런 여러 가지 비율을 비교한 뒤라야 그것이 정말 중요한 수인지 판단할 수 있다.
사실충실성은 (크든 작든) 그 수가 인상적으로 보이지만 달랑 하나뿐이라는 걸 알아보는 것이고, 그 수를 관련 있는 다른 수와 비교하거나 다른 수로 나눴을 때 정반대 인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크기 본능을 억제하 려면 비율을 고려하라.
사실충실성은 지금 저 설명은 범주를 이용한다는 걸 알아보는 것이고, 그 범주가 오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일반화는 막을 수 없어서, 억지로 막으려 하지 않는 게 좋다. 대신 엉터리 일반화를 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반화 본능을 억제하려면 내 범주에 의문을 제기하라.
운명 본능을 억제하려면 더딘 변화를 불변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연간 변화가 1%에 그쳐도, 너무 적고 느리다는 이유로 무시해서는 절대 안 된다. 운명 본능을 억제하려면 더딘 변화도 변화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사실충실성은 (국민, 국가, 종교, 문화를 포함해) 많은 것이 변화가 느린 탓에 늘 똑같이 보일 수 있다는 걸 알아보는 것이고, 비록 사소하고 느린 변화라도 조금씩 쌓이면 큰 변화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생각에 허점은 없는지 꾸준히 점검해보라. 내 전문성의 한계를 늘 의식하라.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새로운 정보, 다른 분야의 새로운 정보에 호기심을 가져라. 그리고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하고만 이야기하거나, 내 생각과 일치하는 사레만 수집하기보다 내게 반박하는 사람이나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나와 다른 그들의 생각을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는 훌륭한 자원으로 생각하라.
나는 전문가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한계가 있다. 가장 분명한 첫 번째 한계는 그들이 자기 분야에서만 전문가라는 점이다. .... 수치에 밝다든가, 교육 수준이 높다든가, 심지어 노벨상을 받았다든가 해서 똑똑한 것과 세계적 사실에 관한 지식수준이 높은 것과는 무관하다. 전문가는 자기 분야에서만 전문가일 뿐이다.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가뿐 아니라 내가 만난 거의 모든 활동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후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자신이 몰두하는 문제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훌륭한 지식은 해결책을 찾는 전문가의 능력을 방해할 수 있다. 여러 해법이 모두 그 나름대로 특정 문제를 훌륭히 해결할 수 있겠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해법은 없다. 따라서 세계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치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삶의 이야기를 모두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치 없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지만, 수치만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도 없다.
단일 관점 본능을 억제하려면 망치가 아닌 연장통을 준비하라. 사실충실성은 단일관점이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걸 알아보는 것이고,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봐야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비난본능은 왜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찾으려는 본능이다. ...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누군가가 그걸 원해서 그리되었다고 믿고 싶고, 개인에게 그런 힘과 행위능력이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그러지 않으면 세계는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럽고, 무서울 테니까.
비난본능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중요성을 과장한다. 잘못한 쪽을 찾아내려는 이 본능은 진실을 찾아내는 능력,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방해한다. 비난 대상에 집착하느라 정말 주목해야 할 곳에 주목하지 못한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세계를 이해해야지 비난본능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
인간이 원래 그렇다. 우리에겐 비난할 사람이 필요하고 어떤 외국인 한 명이 그 병을 옮겼다면, 그 외국인이 속한 나라를 주저없이 통째로 비난하곤 한다. 자세한 조사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 자, 그럼 세계 발전에 기여했지만 찬양받지 못한 영웅을 위한 퍼레이드를 벌여보자. 그 영웅은 제도나 체계 같은 사회 기반, 그리고 기술이다.
사실충실성은 지금 희생양이 이용되고 있다는 걸 알아보는 것이고, 개인을 비난하다 보면 다른 이유에 주목하지 못해 앞으로 비슷한 문제의 재발을 방지하는 데 힘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비난본능을 억제하려면 희생양을 찾으려는 생각을 버려라.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누군가의 면상을 갈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다급함 본능은 위험이 임박했다고 느낄 때 즉각 행동하고 싶게 만든다. ... 두려움에 다급함이 더해지면 어리석고 극적인 결정을 내려,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이 생긴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다섯 가지는 전 세계를 휩쓰는 유행병, 금융 위기, 세계대전, 기후변화, 극도의 빈곤이다.
사실충실성은 지금 그 결정이 다급하게 느껴진다는 걸 알아보는 것이고, 다급히 결정해야 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다급함 본능을 억제하려면 하나씩 차근차근 행동하라.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실에 근거한 사고의 기본 틀(네 단계와 네 지역에서의 삶)을 가르치고, 사실과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법을 훈련시켜야 한다. 사람들의 소득수준이 올라가고 거의 모든 것이 개선되고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과거에는 삶이 어떠했는지 가르쳐, 발전이 없었다고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상에는 나쁜 일도 일어나지만 점점 개선되는 것도 많다는 생각을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문화적/종교적 고정관념은 세게를 이해하는 데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뉴스를 소비하는 법, 스트레스를 받거나 절망하지 않고 극적인 이야기를 알아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사람들이 흔히 수치로 어떻게 속임수를 쓰는지 가르쳐야 한다.
세계는 계속 변화해서 살아가는 내내 지식과 세계관을 꾸준히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나라마다 건강과 소득수준이 다르고, 대부분의 나라가 중간 수준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내 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고, 그것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가르쳐야 한다.
내 나라가 지금까지 발전해온 과정을 소득수준 변화와 함께 이해하고, 그 지식을 이용해 오늘날 다른 나라의 삶도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호기심이란 새로운 정보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한다. 아울러 내 세계관에 맞지 않는 사실을 끌어안고 그것이 내포한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실수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실수에서 호기심을 이끌어내자.